영성의 샘1
희생, 하느님의 가장 명료한
뜻을 찾아서
오경택 안셀모 신부 춘천교구 복음화국장, 춘천 Re. 담당사제

“나를 따라오너라(마태 4,19; 마르 1,17).” 
이는 예수님의 매우 독특한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음을 공부해야 한다고, 그에 대해 묵상하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단지, 그분은 “내 뒤를 따라오라.”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우리는 그분의 명에 따라 그분을 잘 따르기 위해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매우 고맙게도, 예수님을 우리보다 앞서 체험하고 따랐던 신앙의 선조들께서 우리가 그분을 잘 따를 수 있도록 ‘예수님의 행적’을 우리에게 전해주십니다. 그분들 가운데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이 바로 바오로 사도입니다. 무엇보다, 그분은 자신이 분명하게 예수님을 체험했다고 전합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분명히 밝혀 둡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 복음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갈라 1,11-12)
예수님을 체험한 바오로는 우리들이 오류 없이 예수님을 체험하고 뒤따를 수 있도록 가능하면 예수님의 삶을 명료하게 정리하여 우리에게 전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 노력의 열매들이 그의 서간문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습니다. 
조금 과장되어 이야기하면, 바오로는 자신의 서간문 안에서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만 예수님을 전합니다. 그에 따르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만 체험될 수 있으며, 오로지 그 죽음을 통해서만 부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와 십자가는 같은 이름이며 같은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바오로는 예수님의 부활보다 오히려 그분의 십자가를 더 중점적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나도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뛰어난 말이나 지혜로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려고 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1코린 2,1-2) 
결국, 바오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전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그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예수님의 피와 그분의 희생”이라는 의미를 강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로마 3,25),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기 때문입니다.”(1코린 5,7)

희생은 나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는 공생과 구원의 길
바오로에 따르면,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은 우리 구원을 위한 그분의 희생이었습니다. 그분의 (십자가) 희생으로 우리가 구원되고, 우리가 살았으니,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의 삶은 반드시 희생적 삶이어야만 한다’라는 것이 사실 바오로 사도가 전하는 예수님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요사이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강론과 강의안에서 “희생”이라는 어휘가 매우 드물게 언급되는 듯하고, 당연히 그 의미 역시 간과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교회 내에서 어느 누구도 희생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는 가성비와 효율성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적은 힘과 노력으로 많은 열매를 맺고, 멀리 도달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자신의 생을 소진시키는 희생은 아마도 가장 비효율적인 삶의 방식일 수 있습니다. 도약과 발전을 위해 희생된 이들과 희생된 자연에 대해서 드물게 이야기되곤 하지만, 정작 희생의 덕 자체를 구현하고 살아가는 길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전하는 예수님은 십자가의 예수, 희생의 예수입니다. 레지오가 나아가고자 하는 성모 마리아의 정신 역시 희생이 그 중심에 자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누군가를 대신하여, 나의 삶을 내어놓은 크고 작은 그 희생의 여정은 결국, 나를 살리고 우리를 살리는 공생의 길, 구원의 길이 될 것입니다. 
희생을 통해 내가 죽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그것은 결국 내가 사는 길이도 합니다. 그것이 부활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희생의 길은 성체의 기적처럼 생을 쪼개어 이웃과 나누며, 나도 살고 너도 사는 공생의 길이라 할 수 있고, 공동체적인 여정을 걸어가는 교회의 시노드 여정에서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할 길이 아닌가 성찰해 봅니다.

“이것이 오늘 저희가 당신께 바치는 희생 제물이 되어 당신을 온전히 따를 수 있게 하소서.”(다니 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