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이탈리아 유학 생활을 시작하며 시에나 신학교에 머물던 때가 있었습니다.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지내던 시절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시에나에서 보낸 시간은 제 신앙 안에 참 많은 흔적을 남겨 주었습니다.
시에나는 중세 때부터 스스로를 ‘동정 마리아의 도시’(Civitas Virginis) 라고 여길 만큼 성모님을 도시의 특별한 보호자로 공경해 왔습니다. 시에나 주교좌 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Assunta)도 ‘성모님의 승천’에 봉헌되었고, 큰 전쟁이 있을 때마다 성모님께 보호를 청해 위기를 극복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시에나에서 제가 특별히 기억하는 성모님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14세기 시에나를 대표하는 화가 암브로죠 로렌체티(Ambrogio Lorenzetti, 1290-1348)가 그린 ‘수유하는 성모’(Madonna del Latte)입니다.
처음 이 성화를 보았을 때 조금 낯설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성모상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시거나, 천상의 모후로서 장엄하게 표현된 모습이 많은데, 이 그림 속 성모님은 너무나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에서 성모님은 배고파하는 아기를 품에 안고 자기 젖을 먹이고 계십니다. 하지만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오히려 그 평범함이 깊은 묵상을 불러일으키지요.
그림을 보다 보면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셨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었겠구나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육신을 잠시 빌리신 분이 아니라 실제로 한 여인의 몸에서 태어나셨고, 그 품에 안겨 젖을 먹으며 자라셨을 것입니다. 성모님은 아기가 울면 품에 안아 주고, 먹이고, 씻기고, 재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삶 안에서 하느님의 아드님을 사랑하셨겠지요.
저는 이 ‘성화’(聖畫)를 떠올릴 때마다 일상의 ‘성화’(聖化)라는 말을 생각하게 됩니다. 거룩함은 반드시 특별한 장소나 특별한 일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을 사랑으로 하는 것, 내 앞에 있는 사람을 돌보는 것,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 주는 것, 어쩌면 그런 평범한 삶 안에서 성화는 시작됩니다.
시에나 신학교에서 저는 신학생들의 영성 지도를 맡고 계셨던 참으로 인자하신 로렌조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제가 그분을 찾아뵀던 2014년은 신부님이 사제품을 받으신 지 정확히 5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1964년에 사제품을 받으셨으니 반세기를 사제로 살아오신 셈이지요. 어느 날 신부님께서는 어학 공부를 하던 저에게 오랫동안 써 오신 묵상들을 모은 작은 책자 한 권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성모님을 사랑하신 분이셨고, 이번 호에서는 그 묵상 책의 한 대목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어 보려 합니다.
외국에는 성모님의 축일에 성모상을 모시고 거리를 행렬하는 아름다운 풍습이 있습니다. 로렌조 신부님은 어느 행렬이 끝난 뒤, 한 독실한 신자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성모님께서도 행렬에 참석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언뜻 들으면 조금 엉뚱하게 들릴 수도 있는 질문이지만, 신부님은 이 물음이 오래도록 마음을 울렸다고 고백하십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58항에서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도 신앙의 나그넷길을 걸으셨고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아드님과 당신의 결합을 충실히 견지하셨다.”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성모님의 삶 자체가 하나의 순례였습니다. ‘순례’(pellegrinaggio)라는 말은 본래 ‘들판을 가로지르는 걸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걸음은 관광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진정한 신앙의 여정이지요. 로렌조 신부님의 묵상을 따라가다 보면, 성모님의 삶 속에서 우리의 신앙을 비추어볼 수 있는 아홉 가지 아름다운 순례의 순간을 만나게 됩니다.
첫째는 나자렛에서 아인 카림으로 향하는 수태고지와 방문입니다(루카 1장). 하느님의 뜻 앞에 당황하면서도 “보소서,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며 온전히 순응하신 성모님은, 그 기쁨을 품고 산악 지방으로 서둘러 달려가 친척과 기쁨을 함께 나누셨습니다. 둘째는 나자렛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여정입니다(루카 2장). 머무를 방조차 없어 말구유에 만족해야 했던 그 가난 속에서도, 성모님은 잠잠히 하느님의 섭리를 받아들이셨습니다. 셋째는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의 피신과 나자렛으로의 돌아오는 여정이며(마태 2장), 넷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를 잃어버렸던 번민과 묵상입니다(루카 2장). 다섯째는 예수님의 “누가 내 어머니냐”라는 말씀 앞에서 상처받으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최우선으로 두었던 순종이며(마르 3장), 여섯째는 골고타 언덕으로 향하는 십자가 아래의 비극 속에서도 모성애로 아들의 제사를 동반하신 자비의 발걸음입니다(요한 19장). 일곱째는 사도들과 함께 머물며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을 기다리던 일치의 순간이며(사도 1장), 여덟째는 하느님 품에 안기신 영광스러운 종착점입니다(묵시 12장). 그리고 마지막 아홉째는 지금도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다가오시며 신앙의 여정을 동행하시는 ‘순례자 마리아’의 모습입니다.
이 순례의 장면들을 바라보다 보면 우리의 일상도 새롭게 보입니다. 우리에게는 나자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걸어갈 일이 없을 것이고, 이집트로 피신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매일 걸어야 할 길이 있지요. 가정이 나의 나자렛이고, 내가 일하는 곳이 나의 베들레헴이며, 어려움을 견디는 순간이 때로는 나의 이집트가 됩니다. 고통받는 누군가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 서 있어야 하는 순간에는 그곳이 나의 골고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레지오 단원 여러분, 우리의 신앙도 결국 하나의 긴 순례입니다. 성모님께서 우리보다 먼저 걸으셨던 길을 따라 오늘 하루를 하느님께 맡기며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이지요.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기다리고, 조금 더 귀 기울이면 됩니다.
어떤 날에는 하느님의 뜻이 선명하게 보이지만, 어떤 날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요. 하지만 성모님도 모든 것을 알고 걸으신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셨고, 마침내 그 신앙의 순례는 하느님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그렇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성모님과 함께하는 순례는 멀리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지금 내가 살아가는 바로 이 자리에서 사랑으로 하루를 살아내는 데서 이미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림 <수유하는 성모> 암브로죠 로렌체티(ca. 1325 - ca. 13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