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와 마음읽기
보고 듣고 말하는 행위
(가짜뉴스)
신경숙 데레사 독서치료전문가

코로나19 시절 유행했던 정보 중에 ‘코로나19는 호흡기 감염병이다.’ ‘어떤 치료제가 효과 있는지 연구가 필요하다.’ ‘특정 음식이나 물질을 먹으면 코로나19를 예방할 수 있다.’ ‘코로나19는 특정 세력이 의도적으로 만들어 냈다.’ ‘백신에는 사람을 추적하는 마이크로칩이 들어 있다.’ 등이 있다. 온갖 커뮤니티를 통하여 퍼진 이 정보들은 그 당시 우리들을 매우 혼란스럽게 하였다. 사실과 아직 연구 중인 것에 잘못된 정보가 뒤섞이고, 음모론과 조작으로 변질된 내용들이 공유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정보의 진실과 상관없이 이런 것들은 코로나 백신 접종을 주저하거나 거부하는 등, 일상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었고, 이런 개인적 선택은 결국 공중보건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것이 정보의 힘이며 허위 정보도 예외는 아니다. 
1993년 텍사스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인 다니엘 T. 길버트는 두 명의 교수와 함께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거짓과 진실을 혼동하는지 알아보는 실험을 하고, 이것을 ‘당신이 읽은 것을 믿지 않을 수 없다’라는 논문으로 발표하였다. 실험은 참가자들에게 두 개의 강도 사건에 대한 수사보고서를 보여주고 판사가 되어 각 사건의 형량을 결정하게 하는 것이었다. 
보고서는 A강도는 낯선 사람에게 차를 얻어 타고 강도질하였고, B강도는 편의점에서 강도질하였다는 것으로, 둘의 범행 수법은 달랐지만 사전 검토를 거쳐 법률적으로 유사한 수준으로 각색하였다. 그리고 그 보고서에 거짓 내용을 넣었는데, 한 보고서에는 ‘강도가 총을 가지고 있었다’라는 등의 악의적인 내용을, 다른 보고서에는 ‘굶고 있는 자녀를 위해 절도 했다’는 다소 호감을 주는 내용을 넣었다. 그리고 실험 시작 전에 참가자들에게 보고서 내용 중 검은색 글씨는 진실이고 빨간색 글씨는 거짓이라고 알려주고 읽게 하였다. 
과연 실험 참가자들은 보고서의 거짓 내용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거짓 내용은 이미 빨간색 글씨로 드러나 있으니 말이다. 결과는 보고서를 읽을 때 집중 방해 여부에 따라 달랐다. 즉 아무런 방해 없이 보고서를 읽은 참가자들은 두 사건에 대해 각각 6년 정도의 비슷한 형량을 주었다. 반면에 집중에 방해받은 경우는 호감을 일으키는 허위 내용이 담긴 보고서의 강도에게는 평균 6년 형을, 악의적인 허위 내용이 기재된 보고서의 강도에게는 평균 11년 형을 선고했다. 이는 집중에 방해받았던 실험 참가자들이 거짓 내용에 더 영향을 받았음을 나타낸다.

들어온 정보를 일단 사실로 받아들이기에 가짜뉴스에 취약
이를 연구진은 “인지 과부하(뇌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보다 더 많은 정보가 들어와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보고서를 읽을 때 시간적 압박을 느끼면서 거짓 정보를 믿고 결정을 내린 것”이라 설명했다. 또 연구진은 우리들의 정보에 대한 믿음 생성 과정은 일반적 생각과는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즉 먼저 이해하고 사실인지 판단하여 맞으면 믿는다는 순서가 아니라, 일단 정보를 믿는 것이 먼저이고 그 이후에 검증하여 맞지 않으면 믿음을 철회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정보가 들어오면 일단 사실로 받아들여 가짜뉴스에 대해서도 검증 전에 믿음을 갖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가짜뉴스와 허위 정보에 취약한 이유이다. 특히 우리는 피곤하거나, 바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자신도 모르게 본 대로, 들은 대로 비판 없이 믿어버릴 확률이 높다.
C자매는 50대 초반에 영세하면서 고등학교 동창인 D자매를 만나 친하게 되었다. 그러다 D자매는 남편과의 갈등 중에 입교한 C자매에게 활기를 주고자 입단을 권유하였다. 외향적 성향의 C자매는 개인적 어려움에도 즐겁게 단원 생활을 했고 1년 만에 꾸리아 회계로 선출되었다. 그 당시 D자매의 남편이 꾸리아 단장이었는데 얼마 후 C자매와 D자매의 남편이 단체 모임에서 유달리 서로 챙겨주고, 둘만 만나는 모습이 몇몇 신자들 눈에 띄었다. 결국 소문이 돌면서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고 급기야 D자매의 귀에 들어갔다. 불륜으로 확신한 D자매는 몇 명 자매와 함께 C자매 집에 쳐들어갔고 이로 인해 서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받았다. 삼 년이 지난 지금, C자매는 병을 얻어 이사했고, D자매는 별거 중이며 셋 다 냉담 중이라고 한다. 이야기를 전하는 자매는 말한다. “돌아보면 소문이 퍼지면서 추측이 확신이 되어 D자매의 귀에 들어간 듯해요. 거기다 몇 사람이 함께 C자매를 찾아간 게 최고의 악수(惡手)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소문이 일었던 당시 C자매는 이혼하여 힘든 상태였어요. 저를 포함하여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 지혜롭지 못한 말과 행동으로 그들과 하느님을 갈라놓은 결과가 되었습니다.”

뒷담화를 하고 싶으면 나를 살펴봐야
‘악마의 편집’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주로 영상물에 쓰이는 인터넷 용어로, 원래의 상황을 나쁜 의미로 오해하게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내보내는 편집 방식을 뜻한다. 이것이 악마적인 이유는 사실을 보여주면서도 정보의 일부만 제공하여 맥락을 왜곡하는 거짓이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사람에 대한 평판 훼손과 더불어 보는 사람들의 판단을 조종한다. 그렇다면 뒷담화는 어떨까? 흔히 상대방이 없는 자리에서 그 사람의 특정 부분만 꺼내어 이야기하는 것을 뒷담화라고 한다면, 뒷담화 역시 악마의 편집과 닮아있다. 뒷담화는 대체로 당사자가 들었다면 불쾌하거나 명예가 손상될 수 있는 이야기이고, 그 사람 전체를 보여주지 않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지 않는가! 
사실 우리 대부분은 의도적으로 사실이 아닌 내용을 만들어 말하거나, 사실을 과장하거나 일부만 잘라서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는 것과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사실처럼 전달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후자는 정보가 왜곡되기 쉽고, 이 왜곡된 정보가 확산되어 내가 속한 공동체를 오염시키는 시발점이 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특히 정보는 내용보다도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에 따라 정보에 대한 믿음의 정도가 달라지니 믿음의 공동체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남을 판단하고 싶을 때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 사람의 신을 신고 1마일을 걸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욕하지 마라’라는 인디언 속담을 떠올려보라. 나는 그의 모든 사정을 알지 못한다. 뒷담화를 하고 싶은가? 그때는 나를 살펴보아야 한다. 남을 깎아내려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사실 보고 듣고 말하는 행위를 절제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교본에 ‘사도직 정신은 우리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주인이 되어 우리들의 생각과 말과 행실을 모두 다스’(116쪽)린다고 되어 있음도 기억할 일이다.

“성모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는 언어 예술가의 표현처럼 아름다웠다.”(교본 1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