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현 세례자 요한 신부는 인천교구 소속이며 현재 인천가톨릭대학교에서 영성지도를 맡고 있다.
--------------------------------------
연중 제27주간(10월 4-10일)
제22장 레지오의 기도문
“레지오 마리애의 모든 회합에서는 다음과 같은 순서에 따라 기도를 바쳐야 한다. 단, 개인적으로 바칠 때에는 이 순서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 협조단원은 이 기도문 모두를 매일 바쳐야 한다.”(레지오 교본 202쪽) 레지오 창설자 프랭크 더프는 젊은 시절 하느님의 존재와 삶의 의미가 사라진 듯한 영적 어둠을 체험한 뒤, 믿음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임을 깨달았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깨달음이 있었기에 그는 레지오의 마침 기도문에 굳센 믿음을 청하는 기도를 넣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느님께서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기도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는 것 같고, 기도와 활동이 무의미하게 여겨집니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 약해지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집니다. 성 이냐시오는 이처럼 영혼이 어둡고 혼란스러우며, 냉담과 슬픔에 빠져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것처럼 느끼는 상태를 ‘영적 실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실제로 우리를 떠나신 것은 아닙니다. 구름에 가려 태양이 보이지 않아도 태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이때 해야 하는 기도를 매일 바치는 것은 영적 실망에 저항하는 구체적인 믿음의 행위가 됩니다. 기도하고 싶은 날에 기도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때에도 정해진 기도를 바치는 것은 “주님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주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라는 선택입니다.
레지오 단원이 매일 까떼나를 바치고 회합에서 시작 기도와 마침 기도를 바치는 것도 단순히 규칙을 지키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느낌보다 하느님의 약속을 더 신뢰하며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일입니다. 영적 실망은 “기도해도 소용없다.”라고 속삭입니다. 그때 우리는 기도를 포기하기보다 오히려 믿음을 청해야 합니다. 마음은 메마르더라도 몸으로 기도의 자리에 앉고, 입으로 기도문을 바치며 자신을 다시 하느님께 맡겨야 합니다. 기도가 잘되지 않는 날에도 까떼나를 바칩시다. 그 작은 충실함이 영적 실망에 맞서 우리를 하느님 곁에 머물게 해 줄 것입니다.
-----------------------------------------------
연중 제28주간(10월 11-17일)
제23장 레지오 기도문은 변경하지 못한다
월요일 아침이면 해장국을 먹으러 가는데, 그 길에 오랫동안 공사가 중단된 교회 건물을 지나게 됩니다. 목사 편과 장로 편으로 갈라져 다투다가 공사를 계속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아마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왜 저렇게 싸울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교회의 분열은 공동체 안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에 대한 불신을 심고 하느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수난을 앞두고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이 하나 되는 모습 자체가 예수님께서 하느님에게서 오셨음을 세상에 보여 주는 표지가 되기 때문입니다.
레지오 역시 일치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전 세계 단원들은 언어와 문화가 달라도 같은 기도문을 바칩니다. 이는 단순한 형식의 통일이 아니라, 모든 단원이 성모님의 깃발 아래 하나의 정신과 사명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일치는 모두가 자기 뜻을 이루는 상태가 아닙니다. 공동체를 위하여 각자가 자기 생각과 선호를 조금씩 내려놓을 때 이루어집니다. 아일랜드는 레지오가 시작된 나라이지만, 아일랜드 사람들이 특별히 사랑하는 수호성인인 성 파트리치오조차 공식 기도문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전 세계 레지오의 일치를 위하여 내려놓은 것입니다.
공동체의 분열은 내 의견이 반드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마음과 내가 더 옳다는 고집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일치는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내 방식만을 고집하지 않으며, 공동체의 결정을 존중하는 작은 희생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공동체의 일치를 위하여 내 것 하나를 내려놓아 봅시다. 내가 옳다는 주장, 인정받고 싶은 마음, 상대방이 먼저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고 한 걸음 먼저 다가갑시다. 그렇게 하나가 되는 모습을 통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복음의 힘을 세상에 드러냅시다.
----------------------------------------------
연중 제29주간(10월 18-24일)
제24장 레지오의 수호 성인들, 성 요셉
“예수님과 성모님도 늘 요셉 성인에 대해 마음을 쓰셨고, 성인이 두 분을 모시느라 쏟은 온갖 정성스러운 노력에 대하여 성인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계셨다.”(교본 209쪽)
우리는 자신이 한 일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랍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한 일도 내가 이룬 것처럼 말하고 싶고, 봉사의 결과에 내 이름을 남기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지만, 그 마음이 커지면 함께한 이들의 수고를 잊고 하느님의 자리까지 차지하려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하느님의 일을 드러냈습니다. 마태오는 자신을 ‘세리’라고 밝혔고, 요한은 자기 이름 대신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라고 적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자신을 가장 작은 사도이며 죄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지 않았지만,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을 자기 공로로 돌리지도 않았습니다.
성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서에는 그가 한 말이 한마디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는 나자렛에서 목수로 일하며 예수님과 성모님을 묵묵히 돌보았습니다. 자신의 이름과 명성을 세우기보다 예수님께서 자라실 가정을 마련했습니다. 요셉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구세주의 이름을 가장 먼저 부르는 영예를 맡기셨습니다. 그는 천사의 명령에 따라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었습니다.
레지오 활동도 대부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환자를 방문하고, 냉담자를 찾아가며,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활동의 결실이 보이지 않고 감사의 말조차 듣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사람 안에 계신 예수님을 사랑으로 돌보았다면, 그 활동은 하느님 앞에서 결코 작지 않습니다.
성 요셉처럼 내 이름을 높이기보다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나게 합시다. 오늘도 주님께서 편리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도구가 되도록,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내 공로를 내세우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맡겨진 활동에 묵묵히 충실합시다.
----------------------------------------------
연중 제30주간(10월 25-31일)
2. 사도 성 요한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가 서 있었다.”(요한 19,25-26) 한 달 피정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며 계속 여쭈었습니다. “주님, 왜 꼭 죽으셔야 합니까? 조금 더 오래 사시면서 더 많은 사람을 가르치고 더 많은 기적을 일으키시면 좋지 않습니까?” 예수님의 길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분을 따라 걸었습니다. 마침내 십자가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 곁에는 많은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군중도,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도, 대부분의 제자도 떠나고 그분의 어머니와 사랑하신 제자만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초라하고 소박해 보이는 자리에서 “다 이루어졌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가 생각해 온 성공이 예수님의 성공과 매우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마음 안에는 더 좋은 자리에서 일하고 싶은 욕심, 더 많은 본당을 다니며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따라다니는 것을 성공으로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곁에 남은 성모님과 사랑받는 제자를 바라보자, 내가 바라던 성공들이 조금씩 힘을 잃었습니다.
예수님의 성공은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맡기신 길을 끝까지 걸으시고, 마지막까지 사랑하시는 데 있었습니다. 요한의 충실함도 예수님을 구해 드리거나 상황을 바꾸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자리에서도 성모님과 함께 십자가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레지오 활동도 마찬가지입니다. 냉담자가 돌아오지 않고 병자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며, 우리의 수고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은 많은 결실을 만들어 내는 것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맡기신 사람 곁에 사랑으로 머무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쓰시는 대로 쓰십시오.” 우리가 바라는 자리와 성과를 내려놓고, 주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끝까지 사랑하며 머뭅시다. 그것이 십자가 곁을 지킨 요한의 충실함이며, 주님께서 바라시는 참된 성공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