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원교구 안산 반월성당(주임신부 상종수 알렉산더) 천주의 모친 꾸리아(단장 이기준 스테파노) 직속 창조주의 어머니 Pr.의 입단 43년 차 박명님 파비올라 단원을 찾았다. 그녀는 하느님을 모를 때와 알아볼 때의 삶이 180도 변화된 삶을 살아왔단다.
그녀는 꽃다운 스무 살에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해, 부유한 시댁에서 호화롭게 여유와 사치를 누리며 살았으나, 가정사가 불안해 심한 정신적 압박으로 스물여덟 나이에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었다. 이때 레지오 단장이며 구역장이던 아들의 친구 엄마가 신자들과 함께 방문해 묵주기도를 해주실 때,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하고 늘어져 있던 사람이 일어나 앉아 물을 달라고 해서 벌컥벌컥 들이켰고, 눈물 콧물 흘리며 느낀 것이 ‘나를 살리실 분은 이분이구나!’ 했다고. 그 이후로 조금씩 회복하며 한연흠 다니엘 신부님의 교리반에 들어갔고 1983년 6월 9일 스물아홉에 과천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받은 후 두 달이 지난 1983년 8월 레지오에 입단했으나 남편의 눈치를 보느라 제대로 출석을 못 해 예비단원으로만 거의 1년을 보냈다고 한다. 또 반장도 맡게 되었는데 세례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기도도 못 하고 일을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때마침 파티마의 성모님 순회 방문 기도가 있어, 가서 기도하는 중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께서 성모님 가슴에서 보이며 말씀이 들리길 ‘사랑하는 나의 딸아! 너는 고통받은 많은 이들을 위한 나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네가 고통받았던 것과 같이 고통받는 이들을 도와주어라.’ 하는 깊은 체험을 했다. 그래서 나를 살리신 분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세속의 모든 것을 끊어 버릴 결심을 단단히 했다.
겪었던 고통을 밑거름으로 열정적 선교 활동
사치스럽던 나를 버리기 위해 사치품들을 모두 다른 이에게 주었고, 여학교 친구들도 멀리하고, 심지어 키우던 화초에 물 주는 시간도 아까워 남에게 주고 기도에 전념하기로 했다. 이후 성령께서 함께 계심을 체험하며 냉담한 이들의 회두를 위해 교적을 뒤져 찾아다녔고, 마음의 문을 열어 줄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기도했다. 그해 냉담자 20명을 회두시켰다. 그들이 겪는 고통이 그가 겪었던 고통과 닮았고, 그가 새로이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며 기쁨을 누리듯이 냉담자들도 새 삶을 누리기를 바랐기에 온 맘을 다하여 기도하며 찾아다녔다.
남편 사업 때문에 1996년 장호원으로 이사해서는 무당이 되려고 신내림을 받으려는 사람을 레지오 단원과 함께 찾아가 9일 기도하며 신줏단지와 부적 등을 불태우고 입교시키는 등 열정에 가득 찬 활동을 했다. 구역장과 선교분과장이 되어 이사 당시 열 가구 정도 냉담하던 집안을 모두 회두시켰고, 그곳에서 다시 떠나올 때는 57개 반으로 늘어났다.

2002년 안산 상록수성당으로 이사와 6년간 꾸리아 단장을 하였고, 교리교사로 18년을 봉사하며 소년과 청년 레지오를 이끌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사명감을 가지고 활동하니 이들이 자라 현재 본당을 든든히 지키는 청장년이 되었다. 2025년 12월, 그때 소년 레지오 출신 한 명이 사제 서품을 받았고, 올해 부제품을 받을 신학생이 한 명 있다. 성인 Pr.도 젊은 사람들을 영입하여 봉사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려 노력한다. 그는 살아온 경험으로 아픔과 치유의 방법을 알기에 가정 상담을 많이 해준다. 그 상담 대상자들이 성당에서 큰 일꾼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감사하고 보람된 일이다.
그는 2020년 안산 반월성당으로 이사 와서 5년째 선교분과장을 맡고 있고, 현재 창조주의 어머니 Pr. 단장이다. 그가 가는 모든 곳은 선교 대상지로, 묵묵히 나눔 활동을 한다. 이런 활동으로 이사 갔던 성당마다 선교상을 받았다.
친정 동생과 사돈까지 입교시키며 성가정 이뤄
가장 보람된 일은 불교를 믿던 친정 동생들은 물론이고 사돈까지 입교시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과 6남매 맏이인 그녀가 병약하신 부모를 대신해 맏이의 역할을 다하며, 모두 우애 있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일은 남편의 변화였다. 그의 세례 5년 후 세례받은 남편은 성당에서 봉사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활동을 뒷바라지했다. 젊은 시절 그에게 마음고생시켰지만, 세례 후에는 더없이 화목한 집안이 되었다. 1남 1녀의 자녀에서 6명의 손주를 보았다. 이들이 성가정을 이루며 사는 것이 그에게는 큰 기쁨이다. 일 년 전 남편이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6개월을 앓다가 하느님께 돌아갔다. 처음에는 힘들었으나 그 빈자리를 주님과 함께하는 기도의 삶으로 채워갔다. 행복이다.
그는 단원들에게 “교본을 중요시하고 교본에 따라 더욱 깊은 성모 신심을 갖고, 예수님과 성모님께 대한 신뢰심을 굳게 가지라”라고 말하며 “성모님 사랑을 전파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그런 마음이 열리기를 바라며, 우리의 무기인 묵주기도를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박 파비올라 자매는 조금 더 젊다면, 교회의 미래인 소년과 청년 레지오 키우기에 힘을 쏟고 싶다며 아쉬움을 나타낸다. 누군가가 이어가길 바랄 뿐이다.
양쪽 무릎 수술을 한 그녀가 회복한 후 더욱 활발한 활동을 기대해 본다.
<사진 설명(위로부터)>
- 박명님 파비올라
- 창조주의 어머니 Pr. 주보 배부
- 바다의 별 소년 Pr. 단원들과(좌) 로사리오의 모후 Pr. 단원들과 신학교 신부님 방문(우)
- 아파트 입주시 커피와 리플릿 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