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모님은 언제나 내 편이고 나를 사랑하신다.” 이것은 오랜 신앙생활을 돌아보며 제가 마음 깊이 깨닫게 된 고백입니다. 돌이켜보면 제 신앙의 여정에는 제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성모님의 손길이 늘 함께했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중학교까지 다녔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마을 교회의 새벽 종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고, 일요일이면 친구들과 주일학교에서, 부활절과 성탄절이면 교회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어린 시절에 뿌려진 신앙의 씨앗은 훗날 제가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전주로 진학하면서 저는 뜻밖에도 해성고등학교에 배정되었습니다. 교회의 목사님께서는 천주교 학교라며 무척 아쉬워하셨고, 저 역시 조금 무거운 마음으로 입학식 날 교문을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교문 입구의 성모 마리아상이 저를 반겨 주었고, 입학식 장소 앞에는 두 팔을 활짝 벌리신 예수님상이 계셨습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쁘고 설레기까지 했습니다.
주교님께서 집전하시는 입학 미사에서 처음 접한 천주교 미사는 제 마음에 깊은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이후 종교 수업을 통해 천주교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을 하나씩 바로 알게 되었고, 결국 천주교로 개종하여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았습니다. 돌이켜보면 해성고등학교에 배정된 것은 하느님께서 저를 가톨릭 신앙으로 부르시기 위해 마련하신 길이었고, 그 길의 첫머리에서 성모님께서 먼저 저를 맞아 주셨던 것 같습니다.
1997년 송천동으로 이사하면서 송천본당에 다니게 되었고, 본당 형제님의 권유로 레지오에 입단했습니다. 레지오는 제 신앙생활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평일 미사에 참여하고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성모님의 따뜻한 모성애를 조금씩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성모님의 모든 길은 결국 예수님께로 향한다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손을 잡고 예수님께로 인도해 주시는 어머니이십니다.
아내와 자녀, 부모님에게 이어진 신앙의 은총
저는 불교 집안에서 자라온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서로의 종교를 존중하기로 했기에 저는 아내에게 신앙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미사와 묵주기도 때마다 가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성모님, 제 가족들이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렇게 2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아내가 저도 모르게 스스로 성당을 찾아가 예비자 교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2010년 9월 11일, 아내 윤금숙 카타리나는 세례를 받았고, 우리 부부는 혼인성사를 통해 성가정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 일을 통해 저는 내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에, 내가 생각한 방법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방법으로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1남 2녀를 두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어렸을 때 외국에서 생활했고, 대학도 서울에서 다녀 함께 지낸 시간이 많지 않아, 신앙을 제대로 전해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제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길을 마련하고 계셨습니다.
큰딸은 신심 깊은 천주교 가정의 사위를 만나 2019년 혼인성사를 받았고, 2024년에는 이예슬 엘리사벳으로 세례를 받고, 같은 해 외손녀 유현하 유스티나도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아직 주님의 품 안에 들어오지 못한 아들과 둘째 딸도 있지만 저는 조급해하지 않고 묵묵히 기도하며 기다리려 합니다. 언젠가 성모님께서 그들의 손도 잡아 예수님께로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구순의 어머니에게도 놀라운 은총이 찾아왔습니다. 죽음의 위기에서 대세를 받은 어머니는 건강이 조금 회복된 뒤 성당에 가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미사에 참례하기 시작했고, 신부님께 보례를 받은 후 성체도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노환과 치매로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께서는 이상하게도 주일만 되면 미사 가는 것을 손꼽아 기다리시며 성체를 모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체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보약이다.”
그 말씀을 들을 때마다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한 저보다 어머니의 믿음이 더 순수하고 간절하게 느껴집니다. 사람의 눈에는 구순이라는 나이가 늦어 보이지만 하느님께는 늦은 때가 없다는 것을 어머니를 통해 배웠습니다.

다시 예수님께로 이끌어 주신 성모님
저도 한때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 냉담에 가까운 생활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임종을 앞둔 아버지께서 성모님의 전구로 대세를 받는 은총을 얻었고,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며 저 역시 다시 신앙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성모님께서는 제가 멀어졌다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제가 다시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셨고, 다시 주님께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성모님의 굳건한 용사로 성모님께서 제게 가르쳐 주신 가장 큰 덕목은 겸손과 기도, 그리고 순명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제 저도 성모님의 이 마음을 닮아 살아가고 싶습니다. 한 손에는 묵주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복음을 들고 성모님께서 걸으신 길을 따라가고 싶습니다.
제가 길을 잃을 때마다 성모님께서는 예수님께로 방향을 돌려주셨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제 손을 잡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마지막 순간까지 성모님께서 저와 제 가족의 손을 잡고 예수님께로 인도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사진 설명(위로부터)>
- 이정근 요한다미세노
- 아내 세례식
- 큰딸 혼인성사(좌) 어머니 영성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