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터전_제주교구 중앙주교좌성당(3)
‘샛별’ 신성학원의
탄생과 성장
안창흡 프란치스코 제주 Re.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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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여학교의 역사는 흔히 1909년 정식 설립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러나 2009년 발간된 ‘신성백년사(晨星百年史)’의 기록을 살펴보면, 신성여학교의 뿌리는 그보다 훨씬 앞선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축교안(1901) 직후 라크루 신부가 펼친 성영회의 구제 활동과 신자·예비신자 자녀들을 위한 돌봄과 교육이 훗날 ‘제주도 여학교’로 이어졌고, 이것이 신성여학교 탄생의 밑거름이 되었다.
신축교안 이후 깊은 상처를 안고 있었던 제주 지역에서 제주본당 2대 주임 라크루 신부는 성영회를 통해 희생된 신자와 예비신자의 자녀들을 돌보고, 그들의 생계뿐 아니라 신앙과 교육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신성여학교의 출발은 바로 이러한 돌봄의 연장선상에서 교안의 상처를 치유하고 무너진 공동체를 다시 일으키는 차원의 아이들을 위한 교육에서 비롯되었다.
‘신성백년사’는 1902년경부터 ‘제주도 여학교’라는 이름의 소규모 교육이 시작된 것으로 기록한다. 당시의 여학교는 오늘날과 같은 정규 학교라기보다 선교와 교리교육을 위한 학당에 가까웠다. 그러나 여아들에게 한글과 한문을 비롯한 기초적인 배움을 제공하고, 천주교 신앙을 가르쳤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1903년 3월 라크루 신부의 연말 보고에 ‘성사: 학교 1, 학생 9명’이라는 기록 역시 이러한 초기 교육 활동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1901년 12월부터 아이들을 받아들였다는 기록을 고려하면 정식 학교 인가에 앞서 이미 일정한 형태의 여성 교육이 진행되고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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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제주에서는 ‘남존여비’ 사회적 인식이 강했고 여아에게 체계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일도 흔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라크루 신부가 여아들을 위한 교육에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은 단순한 교리교육을 넘어 새로운 교육적 가능성을 열어놓은 일이었다. 초기 ‘제주도 여학교’는 규모가 작고 교육환경도 충분하지 않았지만, 제주 여성들이 배움의 세계로 들어가는 하나의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신축교안의 상처 치유하고 아이들을 위한 교육 공간 마련
1903년 여학당 책임자 사임 후 1904년에 공소에도 교사를 파견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는 기록에서 초기 여학교의 교육이 제주읍에만 머물지 않고 교우촌과 공소 중심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훗날 신성여학교의 제1회 졸업생 고수선 역시 신성여학교에 입학하기 전 가파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우고 동몽선습을 익혔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당시 제주 여성교육이 서양식 학교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서당교육과 새로운 가톨릭 교육이 공존하면서 여성들의 배움에 대한 길을 넓혀가고 있었음이 확인된다.
이러한 준비와 경험을 바탕으로 신성여학교 설립은 1909년 본격화되었다. 라크루 신부는 학교 운영을 위해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 수녀 파견을 요청했고, 같은 해 10월 18일 ‘사립 신성여학교’가 정식으로 인가되면서 제주 여성교육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신성(晨星)’은 새벽하늘에 빛나는 별이라는 뜻이며, 길 잃은 이들을 인도하는 성모 마리아의 별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학교 이름에는 어둠 속에서 새로운 길을 밝혀 주고자 했던 교육과 복음화의 뜻이 함께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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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본격적인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으면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들이 교육에 참여했고, 신성여학교는 교리와 신앙을 가르치는 공간을 넘어 여학생들에게 새로운 지식과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교육기관으로 발전했다. 제주 본당 인근 삼도리 지역에 자리 잡은 학교는 본당과 함께 성장하면서 복음화와 교육이 만나는 공간이 되었고, 훗날 이 일대는 제주 가톨릭의 중요한 교육·선교 공간으로 자리하게 된다. 이제 곧 중앙주교좌성당(주임 김석주 베드로)을 중심으로 하는 성역화 사업도 곧 시작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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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성 인재 성장의 요람
초기 작은 학당에서 출발한 신성여학교는 신성여자중학원 개원(1946.9.3), 학교법인 신성학원(이사장 현 하롤드 대주교) 설립 인가(1965.11.5), 중·고등학교 분리(1969.9.25) 등의 제주교구 역사 기록에서 보듯이 1960년대에 이르러 근대적인 교육기관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는 신성이 단순한 선교 기관을 넘어 제주 사회의 변화에 부응하는 교육의 역할을 확대해 왔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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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신성의 역사는 제주 여성 인재의 성장과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제1회 졸업생 가운데 독립운동가로 이름을 남긴 최정숙·강평국·고수선의 존재는 신성여학교가 제주 여성들에게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대를 바라보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힘을 길러주는 공간이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신축교안 이후 상처받은 아이들을 돌보는 데서 시작된 작은 교육의 씨앗이 훗날 제주 사회의 변화를 이끌 여성들을 길러낸 것이다. ‘경천애인(敬天愛人)’ 교훈 아래 ‘바른 심성을 지닌 제주 여성들을 육성해 온 요람으로서 푸르다.         
<사진설명(위로부터)>
- 신성학원이 시작된 터전
- 신성여중학원 학생들(좌) 초급반 수업시간(우)
- 봉제 시간(좌) 라크루 신부의 송별 기념 촬영(우)
- 성모의 밤(좌) 신성학원 창립 100주년 기념(우)
- 현재 영평동 신성여자중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