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그리고 연명의료법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까요. 한편으로는 죽음이 누구도 가 본 적 없는 낯선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을 홀로, 아무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걸어야 할 것 같은 막연한 외로움이 우리를 움츠러들게 합니다. 그러나 더 실제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켜본 ‘타인의 끔찍한 죽음’입니다. 중환자실에서 수많은 호스와 기계 장치에 둘러싸여, 의식도 없이 숨만 이어 가는 임종을 목격한 기억이 깊은 공포로 남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교통사고 같은 일상의 불확실성은 좀처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유독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서만 얼어붙는 것입니다.
신앙의 눈으로 보면 죽음은 사뭇 다르게 다가옵니다. 가톨릭 신앙 안에서 죽음은 소멸이나 절망이 아니라, 지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천상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날, 곧 ‘천상 탄생’(Dies Natalis)입니다. 교회가 성인들의 축일을 세상에 태어난 날이 아니라 세상을 떠난 선종일로 기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은 무조건 밀어 두고 외면할 대상이 아니라 온전히 직시해야 할 삶의 일부이며, 이를 올바로 성찰할 때 질문은 ‘죽음이 두렵다’에서 ‘오늘 하루와 곁의 가족과 어떻게 더 의미 있게 살 것인가’로 바뀝니다. 죽음을 공부하는 일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를 배우는 일입니다.
이 물음은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임종 과정에서 치료 효과 없이 생명만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미리 밝혀 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2025년 8월에 이미 3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오늘, 삶을 어떻게 잘 마무리할 것인가는 우리 모두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신앙인에게 이 준비는 한층 더 깊은 뜻을 지닙니다. 죽음을 올바로 성찰할 때 우리는 오늘 하루를 선물로 받아들이고, 곁에 있는 이들에게 더 다정해지며, 미뤄 두었던 화해와 감사를 앞당기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을 공부하는 일은 곧 사랑을 공부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 준비의 첫걸음으로, 우리 사회가 마련한 연명의료 제도를 차근차근 들여다보겠습니다.
1. 이 법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제도의 뿌리에는 2009년의 이른바 ‘김 할머니 사건’이 있습니다. 회복이 어려운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계속 달아 두어야 하는가를 두고 가족과 병원이 법정에서 다투었고, 대법원은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중단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결실로 2016년 2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줄여서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어 2018년 2월 4일부터 시행되었습니다. 이 법에는 ‘존엄사’나 ‘안락사’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 표현이 죽음을 지나치게 미화할 수 있기에, 법은 신중하게 ‘연명의료 중단’이라는 표현을 택했습니다.
그전까지 우리 사회는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꺼렸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비로소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를 제도의 틀 안에서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그 오랜 고민의 결실인 셈입니다.
2. ‘연명의료’란 무엇이며, 무엇이 아닌가
법이 말하는 연명의료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시행하는,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기간만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입니다.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인공호흡기 착용, 항암제 투여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임종 과정’이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를 하더라도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악화되어 사망이 임박한 상태’를 뜻하며, 단순히 나이가 많거나 말기 상태인 것과는 분명히 구별됩니다. 그래서 교통사고 등으로 위급해졌지만 응급 치료로 회복될 수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은 연명의료 중단의 대상이 전혀 아닙니다.
이 법의 목적은 회복 불가능한 임종기 환자에게 무의미한 치료 집착을 멈추어, 불필요하고 인위적인 고통을 더하지 않게 하는 데 있습니다. 예컨대 이미 임종 과정에 들어선 환자에게 무리하게 가하는 심폐소생술은 심장을 잠시 다시 뛰게 할 수는 있어도, 갈비뼈가 부러져 폐를 찌르는 등 극심한 고통만 더할 수 있습니다. 법은 이런 개입을 배제하고 평온한 자연사를 도우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꼭 기억할 것은, 연명의료를 하지 않더라도 통증을 덜어 주는 처치와 영양분·물·산소의 단순한 공급은 반드시 계속된다는 점입니다. 환자를 굶기거나 방치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3. 연명의료 중단은 안락사가 아닙니다
덧붙이면, 연명의료를 중단할지 여부는 결코 한 사람의 판단이나 서류 한 장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담당의사와 전문의가 함께 환자가 임종 과정에 있다고 판단해야 하고, 여기에 환자 본인의 뜻이 확인되어야 합니다. 곧 이 제도는 의학적 판단과 환자의 뜻이 맞물릴 때만 작동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안락사는 약물 등으로 죽음을 직접 일으키는 행위이고, 의사조력자살은 의사가 그 수단을 제공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둘 다 불법입니다. 반면 연명의료 결정은 이미 임종 과정에 들어선 환자에게서, 죽음을 앞당기지도 인위적으로 늦추지도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임종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죽음의 원인은 처치의 중단이 아니라 이미 깊어진 질병 그 자체입니다. 이 제도의 출발점은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죽음을 인위적으로 방해하지 않는 것’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있습니다.
이 구분을 이해하면, 연명의료 중단이 곧 ‘치료의 포기’가 아니라는 점이 분명해집니다. 오히려 그것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 기계적 개입을 내려놓고, 환자가 사람다운 돌봄 속에서 평온하게 마지막을 맞이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죽음을 억지로 늦추려는 집착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환자와 가족은 서로를 바라보고 작별을 준비할 여백을 얻습니다. 이처럼 연명의료법은 생명을 함부로 거두는 법이 아니라, 회복이 불가능한 마지막 순간에 인위적 고통을 덜고 사람다운 마무리를 지키려는 법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그 뜻을 담는 구체적 문서를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