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성모 성지
이탈리아 시라쿠사
(성모상 성지)
눈물의 성모
최하경 대건안드레아 서울대교구 도곡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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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모상의 역사
20260915112408_1416834043.jpg1953년 8월 29일, 시라쿠사의 상 조르조 거리 11번지에 위치한 안젤로 이안누소와 안토니나 루치아 주스토 부부의 집에서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이 집에 모셔져 있던 성모상에서 눈물을 흘리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당시 안토니나는 임신 초기부터 시력 저하를 겪고 있었는데, 8월 29일 새벽 3시경에는 시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그러다 오전 8시 30분경 시력이 정상으로 회복되었고 그 순간 침대 머리맡에 모셔져 있던 무염시태 성모상에서 눈물이 나와 뺨을 타고 흘러 침대로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였다. 성모상은 그해 3월 21일 결혼식 때 시누이로부터 선물 받은 것으로, 높이 약 28cm의 에나멜 석고로 제작된 성모 성심이 그려진 흉상이었다. 
성모상은 9월 1일까지 58회 이상 눈물을 흘렸으며, 이 신비로운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가 많은 사람들이 이안누소의 집으로 찾아왔다. 사람들은 실제로 눈물을 흘리는 성모상을 보았으며, 손으로 만져보고, 눈물을 맛보기까지 하였다. 한 목격자는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나는 성모상의 오른쪽 눈에 고인 눈물과 그 눈물이 뺨을 타고 턱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어요. 너무 감동하여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습니다.”
본당 신부 돈 주세페 브루노는 즉시 교구의 허락을 받아 미켈레 카솔라 박사를 의장으로 하는 의학 위원회를 구성하였고, 9월 1일 위원회는 이안누소의 집으로 찾아갔다. 위원회는 성모님의 눈에서 나온 액체 약 1cc를 채취하고 현미경 분석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액체에서는 단백질과 요산염이 검출되었으며, 이는 사람의 눈물에서 발견되는 성분과 동일하였다. 이에 따라 해당 액체는 사람의 눈물로 분류되었고, 다른 물질과 어떠한 화학 반응도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시라쿠사 출신의 영화감독인 니콜라 과리노는 약 300프레임에 걸쳐 성모님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촬영하는데 성공하였다. 촬영된 사진과 영상을 검토한 결과 이 현상은 자연적·과학적 원인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1953년 11월 중순까지 약 300명에게서 눈물의 성모를 통한 치유의 기적이 보고되었다. 의학 위원회는 이 치유 사례들을 문서로 정리하였으며, 그 내용에 따르면 임신 중이던 안토니나는 이후 시력 이상이 재발하지 않았고 전반적인 건강 상태가 현저히 호전되었다. 또한 직장 장애 진단을 받았던 두 살 아이는 눈물의 성모께 전구를 청한 후 장애 증상이 사라졌으며, 오른팔 마비를 앓고 있던 또 다른 두 살 아이는 성모상에서 축복받은 면화를 바른 후 두 팔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뇌혈전증으로 언어 기능을 상실했던 38세 여성 카테리나는 목소리를 회복하였다. 이 밖에도 수많은 신체적 치유와 더불어 깊은 회개와 신앙 회복을 포함한 영적 치유가 보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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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2월 12일 시칠리아 주교단은 팔레르모에 모여 눈물의 성모와 관련한 보고를 받은 후 만장일치로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눈물의 성모가 우리 모두를 의미있는 참회와 무염시태 성모께 대한 신심, 그리고 성모 성심에 대한 공경으로 이끌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기적을 기념하고 영원히 이어갈 성지가 신속하게 마련되기를 희망한다.”
이 성명에 따라 눈물을 흘렸던 방은 그대로 보존하고 방 밖에 제단을 설치하는 방안이 채택되었다. 1954년 7월 29일 해당 집을 매입하여 소박한 경당으로 개조하였고, 같은 해 8월 29일부터 미사가 봉헌되기 시작하였다. 이어 12월 8일, 대주교의 칙령에 따라 이 경당은 공식적으로 ‘성모 성지’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다. 1994년 새로운 눈물의 성당이 봉헌된 이후, 경당으로 사용되던 집은 2008년 3월 9일 엄숙한 미사후 반환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이 집은 순례자들에게 개방되어 있으며, 당시 제단이 놓였던 거실과 성모상이 있었던 침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

2) 시라쿠사 눈물의 성모 성지
수많은 순례객을 맞이하기 위해 새로운 성지가 필요하였다. 이에 시라쿠사 눈물의 성모 성지는 대규모 성당을 중심으로 주 성전과 16개의 경당, 지하 크립트, 박물관, 안내 데스크, 사무실 등 순례를 위한 시설을 갖춘 종합 성지로 조성되었다. 성당 건립을 위해 17개 국가 약 100명의 건축가가 참가한 국제 설계 공모전이 개최되었다. 그 결과 프랑스 건축가 미셸 앙드로와 피에르 파라의 설계안이 채택되었고, 1988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1994년 11월에 성당이 봉헌되었다. 성당은 지름 71.7m의 원형 평면의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전체 높이는 약 103m에 이른다. 외관은 원형 평면 위에 세워진 원추형·피라미드형 구조로, 기존 성당 건축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형태를 보여 준다. 이 성당에 대해 하늘에서 땅에 떨어지는 성모님의 눈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성모님의 천막, 예수 그리스도라는 항구로 이끄는 성모님 등대 등 다양한 상징적 해석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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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의 정상에는 높이 약 3m, 무게 약 600kg의 청동 성모상이 세워져 있다. 경당에 모셔져 있던 눈물의 성모상은 1968년 성당의 지하 크립트로 옮겨졌으며, 1994년 성당 봉헌식 이후에는 1층 주 성전 제단의 제단벽으로 옮겨져 모셔졌다. 이는 눈물의 성모 공경이 공적인 교회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면서 성모 신심이 확장되었음을 상징한다. 성당 내부에는 원형 평면에서 16개의 돌출된 공간이 배치되어 있으며, 이곳에 성 요셉 경당, 파드레 비오경당, 성체 경당 등을 포함한 16개의 경당이 마련되어 있다. 지하층의 크립트 또한 원형 평면으로 되어 있으며, 주 제단에 놓인 성물함에는 1953년 눈물의 기적 당시 채취한 성모님의 눈물이 보관되어 있다.

3) 교황과 눈물의 성모 성지
1954년 10월 17일, 교황 비오 12세는 라디오 메시지를 통해 성모님의 눈물이 인간의 죄와 고통에 대한 어머니의 슬픔을 나타내며, 그 눈물은 ‘기도하라, 회개하라, 하느님께 돌아오라’라는 호소라고 설명했다. 또한 성모님은 여전히 교회의 어머니로서 자녀들을 위해 울고 있으며, 그들을 그리스도께 이끄는 사명을 계속 수행하고 있음을 알려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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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11월 2일, 크라쿠프 대주교 카롤 보이틸라(훗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 기간 로마에 체류하던 중 시라쿠사 눈물의 성당을 방문하여 눈물의 성모에 대한 깊은 개인적 애정과 신심을 드러내었다. 그는 교황이 된 후 1994년 11월 5일, 새로 건립된 시라쿠사 눈물의 성모 성당의 봉헌식에 직접 참석하여 성당을 축성하였다. 이 봉헌식은 성지가 이탈리아를 넘어 전 세계 가톨릭 신자에게 널리 알려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사진 설명(위로부터)>
- 눈물의 성모 성당(바실리카)
- 눈물의 성모상
- 성모상이 있었던 안토니나의 침실(좌) 성모상을 보기 위해 이안누소의 집에 모인 사람들(우)
- 구조미가 드러나는 성전의 상부(좌) 성당의 내부(제단을 향하여) 제단벽에 모셔진 눈물의 성모상(우)
- 성당 봉헌식에 참석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