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의 칼에 칼로 맞서지 않은 두 청년 - 성 보리스와 성 글렙
성 보리스와 성 글렙은 10세기 말 키예프 루스(9~13세기 동슬라브족의 국가이자 공국들의 연합체)를 다스리던 블라디미르 1세의 아들들로 태어났다. 이 지역에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여 국교로 삼은 블라디미르 왕은 영토를 나누어 아들들에게 저마다 통치하게 했다. 그리하여 보리스는 물론이고 미성년자이던 글렙까지도 일정한 지역을 맡아 다스리게 되었다. 그런데 블라디미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자 두 형제의 이복형인 장남은 아버지의 뜻과는 달리 나라를 독차지하고자 형제들을 모두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군대를 이끌고 원정에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에 보리스는 이와 같은 음모를 알게 되었다. 부하들은 이 기회에 도리어 형을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하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보리스는 “형제에게 칼을 겨눌 수는 없다.”라고 말하며 군대를 해산했다. 그러고는 광야로 물러가서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던 중에 형의 명령을 받고 닥친 암살자들에게 저항 없이 살해되었다. 이어서 형은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편지를 보내 글렙을 유인했다. 아버지가 이미 죽은 줄 몰랐던 글렙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 서둘러서 아버지의 도시인 키예프(또는 키이우,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수도)로 가는 배에 올랐고, 배 위에서 아버지의 죽음과 보리스의 피살 소식을 전해 들었다. 글렙 역시 보리스처럼 복수하려 하거나 도망치지 않고 그 대신에 눈물로 기도했다. 그러던 중에 이미 형의 사주를 받은, 타고 가던 배의 조리사에게 살해되었다.
다른 형제들도 이런 식으로 죽어 갔다. 그러나 형제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야로슬라프가 4년 뒤에 군대를 이끌고 키이우로 진격해서 형을 쫓아냈다. 그러고는 보리스와 글렙의 시신을 수습해서 키이우 인근 비쇼로드의 성 바실리오 성당에 안치했다. 그때부터 두 형제의 무덤에서는 수많은 치유 기적이 일어났다. 그로부터 50년쯤 뒤에 두 형제의 유해는 같은 도시에 새로 세워진 ‘성 보리스와 성 글렙 성당’으로 옮겨 모셔졌다.
그리고 두 형제는 시성되기 전부터 키예프 루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기 시작했다. 나아가, 11세기 후반에 아버지인 성 블라디미르 1세와 증조모인 성녀 올가보다 먼저 러시아 정교회의 첫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그리고 18세기 초부터는 가톨릭교회에서도 공경을 받는다.
어찌 보면 이 두 형제는 신앙을 지키거나 증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죽음은 원수를 사랑하고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마저도 돌려대어 주라는 그리스도교적인 비폭력 평화 이념을 완벽하게 실천한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자발적으로 고난을 당한 사람’이라는 칭호와 함께 순교자로 기려진다.
교회 미술에서 두 성인은 칼 또는 창을 뽑아서 맞서지 않고 그저 손에 든 채 서 있는 젊은이(또는 왕자)로 묘사된다.
고래 등에서 미사 드리는 사제 – 항해자 성 브렌다노
6세기에 아일랜드에는 가톨릭교회의 영적인 성장을 이끌고, 나아가 복음 선포에도 힘썼던 성인들, 이른바 ‘아일랜드의 12사도’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바다로 나서기를 마다하지 않은 항해자 성 브렌다노가 있다. 브렌다노는 어려서 수녀원과 수도원에서 양육되고 교육받았다. 그리고 26세에 사제품을 받았다.
당시 아일랜드의 가톨릭교회는 교구를 중심으로 하는 오늘날의 모습과는 다르게 수도원을 중심으로 구성되고 운영되었다. 브렌다노 역시 사제가 되어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필요한 곳에 수도원들을 세웠다. 그런 가운데 섬나라인 아일랜드의 특성에 맞춰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섬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데 눈길을 돌렸다. 이러한 항해 여정은 웨일스와 스코틀랜드, 그리고 프랑스 북서부 해안의 브르타뉴로 이어졌다.
그런 다음에 그는 아일랜드 남서부의 어느 산기슭에 수도원을 지었다. 그의 이름을 따서 브랜든 산이라고 불리게 된 곳이다. 아마도 이곳이 그의 유명한 항해 여행, 곧 그와 16명의 수도자들(또는 14명의 수도자들과 3명의 불신자들)이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축복받은 이들의 섬’(또는 ‘성 브렌다노의 섬’)이라는 낙원이자 약속의 땅을 찾으러 가는 7년에 걸친 여정의 출발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이 여정이 사실은 콜럼버스에 앞서 신대륙에 다녀온 탐험이었다는 설이 차츰 신빙성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가 프랑스에서 아일랜드로 돌아오기 전 이루어진 이 여행과 관련해서 그가 목격했다는 기이한 이야기들이 전해 온다. 초목으로 뒤덮인 ‘축복받은 이들의 섬’ 이야기, 일행이 섬인 줄 알고 상륙해서 미사를 드린 곳이 사실은 섬이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큰 바다 괴물(고래)의 등이었다는 이야기, 거룩한 찬미가를 부르는 새들로 뒤덮였다는 ‘새들의 섬’ 이야기, 바다 위로 솟은 불타는 섬(화산일 것으로 추정)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브렌다노는 이 여행에서 돌아온 뒤로도 아일랜드와 웨일스 등지를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수도원과 교회를 세우며 사도적 열정의 흔적들을 많이 남겼다. 그리고 수녀원장이던 동생을 방문하러 떠난 길에 선종했다(577년경).
성 브렌다노는 선원이나 항해사와 같이 배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 직업이나 취미 활동으로 잠수하는 사람, 여행자 그리고 미국 해군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는다.
교회 미술에서 항해자 성 브렌다노는 고래의 등에서 또는 물고기들이 모여든 바다 위의 배에서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 작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수도자들 중 한 사람 등으로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