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훈화
부활 제5주간-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이창영 바오로 신부
20260422102933_1325268183.jpg

이창영 바오로 신부는 1991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로마 교황청 라테라노대학교 윤리신학 석․박사,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가톨릭신문사 사장, 매일신문사 사장, 만촌1동성당 주임 신부와 가톨릭 요양원 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전례협력 사제로 활동 중이다.
-------------------------------------
부활 제5주간(5월 3-9일)
“내 감정에 솔직한 기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어떤 일이나 고통 앞에서 몸부림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 하소연하는 것입니다. 고통 앞에서 마음의 여유도 없는데 그저 억지로 하느님께 감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그냥 있는 그대로 자신의 감정을 하느님 앞에 솔직히 다 쏟아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들은 고통 앞에서 바로 이렇게 하느님께 원망도 하고, 하소연도 하였습니다. 솔직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원망도 하고, 하소연도 하는 것이 진실한 기도입니다.
우리 신앙인의 모범이신 성모 마리아께서도 처음부터 하느님께 감사의 노래를 부르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하고, 점점 더 배가 불러오면서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이고, ‘내가 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하시면서 하느님을 잠시나마 원망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고민과 고통을 하느님께 하소연하고 기도하면서, 친척 엘리사벳의 집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생각, 원망, 하소연, 도움, 감사의 마음 등등 이 모든 마음을 하느님 앞에 솔직하게다 쏟아내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주변의 친한 사람에게 우리가 가진 고민을 털어놓으면 힘도 얻고 위로도 받듯이 하느님께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으면 후련하면서 용기도 얻을 수 있지만, 하느님께 솔직하게 다 털어놓으면 인간적인 힘을 넘어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얻게 됩니다.
많은 고민과 아픔을 딛고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부르신 성모님처럼 우리도 많은 고민과 아픔을 먼저 하느님께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위로와 힘을 주시고, 그래서 우리도 성모님처럼 감사와 찬양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제 말씀에 귀를 기울이소서. 제 탄식을 살펴 들어 주소서. 저의 임금님, 저의 하느님. 제가 외치는 소리를 귀여겨들으소서. 당신께 기도드립니다.”(시편 5, 2-3)   
---------------------------------------------
부활 제6주간(5월 10-16일)
“봄철 꽃들로부터 배웁시다!”

벌써 5월입니다. 계절의 여왕이자 성모성월인 5월입니다. 산과 들에는 각양각색의 꽃들과 풀, 나무들이 자신만이 간직한 고유한 자태를 뽐내며 마음껏 향기를 내 뿜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풀과 나무들은 저마다 자기다운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똑같은 모습, 똑같은 향기가 아닌 독특한 자기만의 모습으로, 독특한 자기만의 향기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다른 꽃들을, 다른 나무들을 부러워하지도 않고 시기하고 질투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꽃들을, 다른 나무들을 닮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마음껏 드러내면서 자연과 눈부신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렇게 풀과 나무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을 드러내면서 생명의 신비를 꽃피우고 있습니다. 결국 자기 자신만이 간직한 고유한 특성을 자신들의 분수에 맞게 열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장미는 장미답게 피면 되는 것이고, 민들레는 민들레답게, 코스모스는 코스모스답게 피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꽃들은 결코 다른 꽃들을 멸시하거나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꽃들과 비교하는 순간, 남들과 비교하는 그 순간부터 불행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도리를 이 봄철에 꽃들로부터 배워야 하겠습니다.
자신을 억지로 꾸며서 아름다움을 뽐내려는 꽃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억지로 꾸며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래 모습 그대로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자신만이 지닌 특성의 아름다움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이 봄철의 꽃들처럼 자신만이 가진 아름다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향기를 내뿜어 봅시다!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 그것들은 애쓰지도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다.”(마태 6,28-29)
--------------------------------------------
주님 승천 대축일(5월 17-23일)
“예수님의 승천과 우리의 신앙”

초대 교회는 예수 부활 대축일 후 50일 동안을 예수님의 부활을 경축하는 기간으로 지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기간에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파스카 축제’ 기간으로 지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파스카 사건을 여러 개별 사건으로 나누어 기념하기 시작했고, 이때 생겨난 것이 ‘주님 승천 대축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이후 주님 승천 대축일은 부활 대축일 이후 다가오는 여섯 번째 목요일 즉 40일째 되는 날에 기념하는 것이 공식화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천주교회는 사목적인 이유로 주님 승천 대축일을 부활 제7주일로 옮겨 지내고 있습니다.
주님 승천 대축일은 무엇보다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지상에서의 삶을 다 마치시고 하늘에 올라가셔서, 하느님 아버지 오른편에 앉으신 것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한마디로 주님 승천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본고향인 하늘로 올라가신 날을 경축하는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흔히 고향 하면 자신의 육신이 태어난 곳만을 생각합니다. 자신이 어릴 적 자랐던 곳, 그곳만을 고향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 영혼의 본고향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도, 그리워하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육신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이 되돌아가야 할 영원한 안식처, 곧 우리의 본고향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본고향은 결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그저 타향살이에 불과할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본고향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셔서 계시는 곳,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승천은 바로 우리에 대한 희망의 보증이요 확신이며, 우리와의 끊임없는 새로운 만남의 연속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바쁘고 고달픈 세상살이에 지쳐서 땅만 쳐다보고 살지 말고, 가끔 저 높은 하늘도 쳐다보고 살아갑시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한바탕 크게 웃어봅시다! 우리가 쳐다보는 저 하늘, 우리가 돌아가야 할 저 하늘이 바로 우리의 본고향이라는 사실도 잊지 맙시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
성령 강림 대축일(5월 24-30일)
“닫힌 곳을 열린 곳으로!”

우리는 가끔 “기(氣)가 막힌다!”, “기(氣)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라는 말을 종종 씁니다. 답답하고 뭔가 잘 안될 때, 비정상적이고 일이 꼬여 나갈 때 우리는 “기가 막힌다!”,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라는 말을 쓰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참으로 ‘기(氣)’가 막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희망의 전부였던 예수님께서 비참하게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죽음이 두려워 다락방 속에 꼭꼭 숨어 있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숨어 있던 다락방, 깜깜하고 닫혀 있는 다락 방. 이것은 바로 ‘기가 막힌 상태’를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깜깜하고 닫혀 있는 공간, 기가 막힌 다락방으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성령은 기가 막힌 다락방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바람과 같이, 불혀와 같이 오신 성령은 닫힌 다락방의 문을 활짝 열었고, 기가 막힌 제자들의 기를 확 뚫어 놓았습니다. 막힌 굴뚝이 확 뚫린 것처럼 제자들은 기가 살아 용감하게 세상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기가 막힌 세상, 닫혀 있는 세상을 기가 흐르는 세상으로, 열린 세상으로 만들기 위하여 세상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오늘도 성령께서는 닫힌 우리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기 위해, 기가 막혀 답답하고 병든 우리들의 삶을 기가 잘 통하는, 건강하고 기쁜 삶으로 만들기 위하여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닫힌 세상을 열린 세상으로 만들기 위하여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닫힌 마음의 문이 열릴 때, 탐욕스러운 이기심으로 닫혀 있는 우리의 마음이 열릴 때 비로소 우리는 이웃을 바라보고, 이웃을 향해 사랑의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참으로 열린 사람, 기가 잘 흐르는 건강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를 막고 있는 억압과 폭력, 반생명적인 지배 권력의 욕심이 무너지고 열릴 때 세상은 참으로 자유와 평화와 해방의 열린 세상이 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오시어 닫힌 우리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기가 막힌 우리들의 병든 삶에 사랑과 정의와 평화의 불길을 놓아 막힌 기를 뚫고 건강하게, 용감하게 세상으로 나가게 합니다. 열린 세상, 건강하게 해방된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5월 31일-6월 6일)    
“삼위일체의 신비는 사랑의 신비”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닮은 인간을 만들자.”(창세 1,26) 하느님은 분명 당신 자신을 두고 ‘우리’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즉, 하느님은 홀로 외톨이로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라는 관계를 맺고 계시는 분, ‘나와 너’라는 사랑의 관계 속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30절에서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라고 말씀하셨으며, 성령을 파견하실 때에도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분이 나를 증언할 것이다.”(요한 15,26)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하느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함께 사랑의 만남, 사랑의 친교 속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맺고 계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 그분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시는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모습으로, 하느님을 닮게 창조되었습니다. 따라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는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신비가 아니라 우리가 구체적인 삶 안에서 실현해야 할 최고의 가치이고, 우리 모두가 창조된 본래의 아름다움을 회복하여 보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길, 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길, 곧 구원의 길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의 관계, 사랑의 삶을 살지 못할 때 우리는 우리의 본래의 아름다움을 상실하며 비인간화되고 나아가서는 비극을 초래하게 됩니다. 이렇게 될 때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의 신비는 영원히 알아들을 수 없는 미지의 신비로 남아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8)
자! 우리 모두 천천히 십자성호를 그어봅시다. 우리가 성호경을 긋는다는 것은 첫째, 내가 믿는 하느님은 삼위일체의 하느님이시며, 둘째,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당신의 모습으로 나를 만드셨으며, 셋째, 나도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그 사랑의 신비를 삶으로 살아가겠다고 외치는 공적인 신앙고백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호경을 그을 때마다 이러한 사실을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길, 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길, 구원의 길, 그것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신비 곧 사랑의 신비를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