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주교구 옥천성당(주임신부 이재민 세례자 요한) 바다의 별 Cu.(단장 이장훈 가타리나) 직속 구세주의 모후 Pr.에서 부단장으로 봉사하는 박복임 벨라뎃다 자매는 강원도 동해시에서 태어났다. 1955년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세례를 받았고, 이후 벨라뎃다 자매에게 성당에 다니는 일은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가 되었다.
벨라뎃다 자매의 아버지는 강원도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의사였다. 엄격하면서도 사랑이 깊은 아버지는 딸이 의사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벨라뎃다 자매는 피를 보면 어지러울 만큼 의료 일을 두려워했다. 결국 아버지의 기대와 달리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1962년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내던 그 시절, 그의 마음속에는 또 하나의 꿈이 있었다. 바로 수녀가 되는 것이었다.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하지 못한 인연이 찾아왔다. 주변의 소개로 한 남자가 결혼을 청해 온 것이다. 하지만 벨라뎃다 자매는 당시의 솔직한 마음을 말했다.
“저는 사실 수녀가 되려고 마음먹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인연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여러 번의 만남 끝에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고, 자매는 조용히 하느님께 기도했다.
“주님, 제가 수녀가 되지 못하고 가정을 이루게 된다면, 자녀를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그 기도는 훗날 현실이 되었다. 벨라뎃다 자매의 큰아들은 성장하여 신학교에 들어갔고, 결국 사제가 되었다. 지금도 사목 현장에서 신부로 살아가고 있다.
결혼 후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다. 교직 생활과 함께 농사일까지 감당해야 했다. 집에는 포도나무 수백 그루와 딸기밭이 있었고, 봄이면 누에를 키우기도 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밤늦도록 농사일을 해야 했다.
어떤 날은 밤 12시가 넘어 일을 마치고, 새벽 3시 반에 다시 일어나야 했다. 일꾼들의 밥을 준비하고, 밭을 돌보고, 집안일을 했다. 그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말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어떻게 그걸 다 견뎠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때마다 하느님이 힘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20년간 예비자교리 등 선교 활동으로 백여 명 세례
세월이 흐르면서 자매의 신앙은 점점 더 깊어졌다. 1985년 레지오 마리애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직장 생활 때문에 저녁 Pr.에서 레지오를 했지만, 퇴직 이후에는 낮 Pr.으로 옮겨 모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레지오 활동은 자매에게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삶의 사명이었다. 시골의 어르신들을 찾아가 예비신자 교리를 돕고,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방문해 기도했다. 신자든 아니든 가리지 않았다. 병실에
들어가면 먼저 조용히 기도했다. “하느님, 이분을 돌봐주십시오.”
코로나 시기에는 성당 활동이 중단되었지만, 자매의 봉사는 멈추지 않았다. 직접 만날 수 없는 대신 전화로 신자들과 어르신들에게 안부를 전했다. “전화만 해도 그렇게 좋아하세요. 그게 참 고맙더라고요.”
벨라뎃다 자매는 20년간 예비자교리를 하는 등 많은 선교 활동을 하였는데 이를 통해 세례를 받은 사람도 백 명이 넘는다. 이러한 벨라뎃다 자매의 헌신과 봉사로 2025년 청주교구 레지오 마리애 도입 70주년 기념미사에서 선교상을 수상했다. 여러 선교 활동뿐만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듣는 데에도 게을리하지 않고 신구약 성경을 필사해 2019년 81세의 나이에 주교님 축복장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삶에는 시련도 있었다. 남편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집과 땅을 팔아야 했고, 남편은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자매 역시 암 수술을 겪었다. 그럼에도 자매의 입에서는 늘 같은 말이 나온다. “이 모든 것도 다 하느님이 돌봐 주신 덕분이지요.” 누군가 왜 그렇게까지 열심히 사느냐고 물으면 자매는 이렇게 답한다.
“아들이 신부로 살고 있는데 엄마가 흐트러지게 살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리고 조용히 덧붙인다.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날까지, 눈에 거슬리지 않게 살려고 합니다. 건강에 이상이 없는 한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있어요.”라며 웃어 보였다. 벨라뎃다 자매는 미사 시작 1시간 전에 성당에 도착하여 성체조배 후 미사 참례를 한다.
강릉에서 시작된 자매의 신앙은 이제 여든여덟 해의 삶이 되었다. 그 삶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매일의 기도와 봉사 속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자매는 오늘도 성당 문을 가장 먼저 열며 하루를 시작한다.
<사진 설명(위로부터)>
- 박복임 벨라뎃다
- 구세주의 모친 Pr. 단원들과 함께
- 청주교구 레지오 도입 70주년 기념미사에서 선교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