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이었네
주님의 부르심과
성모님과 함께하는 삶
김건 노엘 광주 중재자이신 마리아 Se. 단장

20260421163508_317257383.jpg1980년대 초 고등학교 2학년 때 친한 친구가 갑자기 임동성당에서 토요일 오후에 만나자고 했다. 임동성당에서 미사가 시작되고, 나는 기도문도, 성가도, 예식 순서도 모르고 그냥 시간을 보냈지만 전례의 분위기나 느낌이 좋아서 부모님께 성당에 다녀왔다고 말씀드렸다. 부모님께서는 예전부터 천주교에 대해 많이 생각하셨다면서, 다음날 곧바로 농성동성당을 방문하여 예비신자 입교를 했다. 그해에 부모님과 나를 포함한 형제 3명이 한꺼번에 세례(형은 다음 해에 세례)받고 성가정을 이루었으며, 그 후 4명의 형제가 모두 신자인 배우자를 만나 4형제 모두 성당에서 결혼도 했다. 자녀들(사위, 며느리 포함)도 모두 세례를 받고 주님의 돌보심으로 생활하니, 고등학교 친구가 주님을 대신해 나를 초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생이 된 나는 전남대학교 대학생 빈첸시오회에 입회해 여러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다. 직업소년원 학생들을 대상으로 야간학교를 운영하고, 개인적인 공부 지도, 지체장애자 시설 노력 봉사, 지적장애인 시설에서 함께하는 재활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였고, 어려운 독거노인을 방문해 청소, 대화, 집 주변 보수 공사 등의 활동을 거의 매주 했다. 대학 시절 내내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는 시간을 가졌고, 졸업 후에는 졸업생들의 모임인 형제회를 통해 광주대교구에서 운영하는 광주이주민지원센터에서 월 1회 음식 봉사(메뉴를 정하고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120여 명에게 점심 제공)와 어려운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해 장학금을 지원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30년간 빈첸시오회에서 활동하다 레지오에 입단
본당에서 사목회와 단체 활동을 하던 50대 초반에 친한 성당 후배가 여러 차례 권유해 레지오에 첫발을 딛게 되었다. 빈첸시오 활동을 오랜 기간 해오던 터라 레지오 마리애라는 단체가 무엇인지도 전혀 모르고 그냥 화요일 저녁 미사 후 처음으로 주회합 장소에 찾아갔다. 
시작기도를 하는데, 묵주기도 5단을 바치는 것을 보고, ‘참으로 기도가 길구나’하고 느꼈고, 당시 묵주도 갖고 있지 않았다. 용어가 너무 낯설어 도대체 ‘레지오’는 무엇이고, ‘쁘레시디움’은 또 무엇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 주회합 후 이어진 2차 자리에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석 달 뒤 ‘선서’를 통해 정단원이 되는 시점에 레지오 마리애의 용어와 조직 등을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선서하던 날 선배 단원이 갑자기 “노엘! 성모님 목욕을 한번 해왔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했다. 주회합에 모시고 기도하는 성모상이 오래되어 약간 지저분(?)해져 있던 상황이었다. 주회합 후 성모님을 모시고 집에 가서 정성스럽게 목욕(?)시켜 드리고, 다음 주회합에 오면서 왠지 성모님 상이 아니라 나의 어머니께 효도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레지오 마리애를 통해 성모님과 함께하는 삶이 시작되었다.
그 후 꼬미씨움 서기로 선출되어 세나뚜스 월례회에 참석하다 2018년 7월 세나뚜스 부단장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6년간 부단장으로 활동하면서 함께했던 두 분의 세나뚜스 단장님들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고 경험하게 되었고, 2024년 6월 세나뚜스 단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20260421163508_109340670.jpg

1833년 프랑스 파리 소르본 대학교 학생이던 복자 프레드릭 오자남이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를 설립하고, 프랭크 더프가 24세의 나이에 빈첸시오회에 입회하여 8년여 동안 활동하던 중 빈첸시오회가 설립된 지 88년이 지난 1921년에 레지오 마리애를 설립했듯이, 저도 대학교 1학년부터 약 30년간 빈첸시오회에서 활동하다 레지오에 입단한 것이 어떤 부르심이었는지, 또 그 부르심에 제가 어떻게 응답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은 레지오 단원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충실하게 하고자 한다.

성모님의 순명 정신을 본받아 살아가도록 기도해
나는 레지오 마리애를 만나고, 활동할 수 있음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매일 바치는 묵주기도를 통하여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고, 또한 그것들이 이루어지는 것들을 느낀다. 인간적으로 마음에 입었던 상처, 오해로 말미암아 생겼던 마음들! ‘과연 성모님이시라면 이런 일들을 어찌 대하고 해결하셨을까?’ 생각하면 겸손과 순명이라는 마음으로 정리가 된다. ‘순명은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나 결정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교본 제29장 레지오 단원의 충성)라는 교본의 내용처럼, 내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게 된다.

20260421163508_1441871566.gif

본당의 제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레지오 마리애를 하기 전에는 묵주기도를 드리는 방법도 모르고, 각 신비의 깊은 의미를 묵상하지도 못하면서 기도와 신앙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매일 바치는 묵주기도를 통해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고, 성모님께 필요한 것들을 전구하며 살아간다. 또한 세나뚜스 단장으로 활동하면서 더 깊게 성모님을 이해하고 성모님의 순명 정신을 본받아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드린다. 
이렇게 레지오를 통하여 성모님과 함께 살아가도록 불러주신 주님과 보살펴 주시고 기회를 주신 성모님 사랑합니다.
<사진 설명(위로부터)>
- 아치에스 후 단원들과(좌) 중국 상해 김가항성당(김대건 신부님 사제서품 성당)
- 3개 세나뚜스 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