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신앙생활에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인가요?”
예전에 교육에 참가했을 때 강사님이 던진 질문입니다. 질문을 받고 나는 서슴없이 대답했습니다. “나의 할머니와 부모님입니다.”
대대로 천주교 집안이었던 나는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성당이 없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어린 나이에 동네(금호동) 산을 넘어 먼 거리의 신당동성당까지 가서 미사참례를 했습니다. 더우나 추우나 빠지면 안 되는 줄 알고 최고의 의무로 당연하게 여기며 성당을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동네에 성당이 생기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다 사고를 치기도 했습니다. 성당에 가기 싫은 주일에 꾀를 부려 연보돈(헌금) 10원 동전을 주머니 속에서 만지작거리다가 만화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만화를 읽으며 시간을 채우고 집에 가서는 마치 미사참례를 하고 온 듯 시치미 뚝! 그런데 눈치 없는 친구들이 집에 와서 “동규, 오늘 미사에 왜 안 왔어요?” 물었습니다. 평소에 인자하신 할머니께서 “성당 가는 길에 천사들이 길 양쪽에 서서 인도하시는데 마귀 꼬임에 넘어가 미사에 빠졌다”라고 노발대발하셨습니다.
그때 할머니와 부모님께서는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세례받을 때 이마에 인호가 새겨져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하느님 자녀의 표식이다. 마귀가 이 표식을 파내려고 애쓰고 유혹하기 때문에 열심히 기도하고 성당에 다녀야 한다.”라고 수없이 말씀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그렇게 굳센 믿음으로 자녀의 신앙생활을 돌보고 있습니까? 신앙을 자녀의 자발적인 선택에만 맡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할머니의 손을 떠나지 않았던 묵주. 아침저녁으로 무릎 꿇고 부모님과 함께 바치던 조과(아침기도)와 만과(저녁기도), 조상님들의 기일이 되면 친척들
이 모여서 바치던 연도(위령기도) 등을 경험하면서 알게 모르게 신앙이 몸에 배었습니다. 그러한 경험이 구교집안 출신의 장점이 아니겠습니까? 할머니께서는 묵주기도를 바치실 때 뭔가를 들고 읽으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뗏세라였습니다. 아! 나의 할머니는 레지도 마리애 단원이었습니다.
4학년 때 첫영성체를 하기 위해 교리공부를 했는데 신부님과 일대일 찰고받을 때 교리문답을 다 외우지 못해 재수(?)하고 다음 해에 첫영성체를 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친구의 권유로 소년 레지오 마리애 협조단원을 하기도 했는데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베네딕도 수녀회 재단 소속인 청각장애학교에서 33년을 수녀님들과 함께 근무하면서 다양한 신앙 활동을 체험한 것은 나의 신앙생활과 인생살이에 큰 힘이 되었고, 기쁨이고 영광이었습니다. 몇몇 동료들과 점심시간에 짬 내 수녀님과 함께 성무일도를 바쳤던 기억은 참으로 큰 은총이었다.
비신자였던 아내를 만나 관면혼배를 하였습니다. 처가는 딸만 다섯인데 큰 처형만 신자였고 다른 가족들은 비신자였는데 우리 부부의 신앙생활 모습을 보고 장모님과 다른 딸 부부들도 모두 가톨릭 신자가 되었습니다.
주일 미사에는 참례하지만 바쁜 직장 생활로 본당 단체 활동을 못 하는 것에 신자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다가 내 발로 찾아간 단체가 구역 형제회입니다. 그 당시에는 공식적인 형제회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아파트 내 구역 형제들이 모여서 시작한 시기였는데, 형제회에 나간 지 반년도 안되어 형제회 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 소공동체 운동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때라 한 달에 한 번 가정마다 돌아가면서 모임을 했는데 거실이 꽉 찰 정도로 형제들이 열성적이었습니다.
레지오 마리애 입단은 내 인생에서 참으로 탁월한 선택
형제님들로부터 레지오 마리애 입단 권유를 받았지만 직장 일로 거절해왔는데 레지오 마리애 Pr.을 구역 단위로 재편하라는 본당 신부님의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입단하겠습니다.”라고 했고 열렬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입단하고 보니 정의의 거울 Pr.은 매우 모범적인 Pr.으로, 단원들이 도제제도에 따라 서로 가르쳐주고 배우고 실천하고 다양한 활동을 했고, 무엇보다도 단원 모두
모범적인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내가 신앙인으로, 레지오 단원으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고, 큰 도움을 주어서 고맙기만 합니다. 레지오 마리애 입단은 내 인생에서 참으로 탁월한 선택이었으며, 성모님의 이끄심이 아니었다면 미천한 내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Pr. 서기를 맡고 처음으로 샛별 꾸리아 평의회에 참석했을 때의 기쁨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평의회에 참석하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저는 꼬미씨움 부단장, 서기를 거쳐서 지금은 도봉 오묘한 매괴 꼬미씨움 단장을 맡고 있습니다. 부족한 제가 단장직을 나름대로 잘 수행할 수 있는 것은 꼬미씨움 간부들과 평의원들의 사랑, 열정, 도움 덕분입니다. 구역장, 전례분과장, 사목협의회 총무, 성찬봉사회, 사목협의회 회장까지 맡았었고, 지금도 구역장, 성찬봉사회, 꼬미씨움 단장, 본당 탁구동호회 회장까지 역할을 맡다 보니 힘겹기도 하지만 나 자신이 대견스럽고 주님께 한없이 감사드릴 뿐입니다. 주님께서 불러주셨고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마리아께서 손잡아 이끌어주셨음을 잊지 않고 감사! 감사드립니다.
매일 묵주기도를 바칠 때마다 값진 신앙 유산을 물려주고 떠나신 할머니, 부모님을 기억하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나 또한 자식들에게 신앙 유산을 잘 물려주게 해주십사 기도를 바칩니다. 그러기 위해 수시로 나의 믿음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모범을 보이겠습니다.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생각은 굴뚝같은데 내가 미약함을 알기에 성모님께 청하고 또 청합니다. “성모 마리아님, 바위와 같이 튼튼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도록 이끌어 주소서. 굳센 믿음을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빌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