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영성 살기
생명이 다하면
다음 생명에게
이진영 세실리아 수녀 사랑의 씨튼수녀회

지난여름은 참으로 무더운 날이었습니다. 견디기 어렵게 더웠던 지난한 여름 동안 나를 숨 쉬게 한, 선물처럼 주어진 시간은 저녁 산책이었습니다. 일과를 끝내고 조금은 떨어진 온도에 운동 삼아 동네 산책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참 고맙게 느껴집니다. 더러는 수녀님들과 함께했지만, 홀로 산책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때론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에 집중하는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중고 책방에 들렀던 것이 산책 때마다 가게 되었습니다. 서점 들머리에 “오늘 새로 들어온 책 ○○○권”이라는 게시판을 보면 무슨 책이 들어왔나 궁금하기도 했고, 잠시나마 시원하게 더위를 식히며 쉴 수 있는 것이 매력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지난여름 나의 일상을 파고든 것은 ‘차인표’씨가 쓴 세 권의 소설이었습니다. 한 권은 우리나라의 근대사적 시각, 한 권은 노동자들의 삶에 대하여, 또 한 권은 인권에 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배우라고 생각했던 그가 책을 쓴 것도 놀라웠지만, 깊은 사유로 이끄는 내용은 그가 쓴 세 권의 책을 단시간에 집중해서 읽게 했습니다. 그중 ‘인어 사냥’이란 소설에서 작가는 “욕망이 지나치면 주인을 삼켜버립니다. 어느 순간 주인이 종이 되고 종이 주인 노릇을 하게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인어의 희생을 담보로 자식을 살리기 위한 아버지가 결국에는 딸이 그 누구도 해치지 않고 살다가 생명이 다하면 다음 생명에게 자리를 고스란히 넘겨주길 원했다는 것, 하루를 살더라도 나무 같은 사람으로 살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과정이 참 숭고하게 느껴졌습니다. 
누군가를 위한다는 생각으로 나의 방법을 고집한다면 진정한 타자를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매 순간 내 생각보다 타인의 필요를 선택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살아오면서 학습되어온 틀 속에 뭔가를 맞추는 것이 너무나 익숙합니다. 선함을 가장하여 자신의 방식으로 들어오도록 억지를 부립니다.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우리를 온전한 생태로 나아가도록 초대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실천하신 성모님의 모범을 따르는 우리입니다. 하느님의 상징에는 온전함에 대한 깊은 감각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지만 온전함은 완벽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십자가 죽음이 부활을 가져오듯 어긋난 귀퉁이에서 새로움이 싹틉니다. 서로 부족함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체가 하느님을 닮아가는 일일 것입니다. 
누군가 나의 부족함과 허술함을 알지만 기다려 주고 있음을 깨달을 때 호흡은 깊어지고 생명이 살아납니다. 우리의 호흡이 깊어지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족한 나를 언제나 기다려 주시는 그분, 무려 이 천년도 넘게 기다려 주시는 그분이 계시니까요. 
들숨에 자연을 담으면 날숨은 설렘이 된다고 합니다. 그 설렘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전부이게 할 수 있는 힘을 지녔습니다. 기다려 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삶을 충만하게 합니다. 그것은 거북이처럼 기는 자를 토끼처럼 뛰게 만들고, 죽어가는 자를 살릴 만큼 강력합니다. 오래도록 기다려 주시는 그분께 의지하며 부디 생명을 선택하는 하루하루가 되길 청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