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이었네
아일랜드에서
더프 형제를 만났다
송기복 스테파노 대전 평화의 모후 Re. 단장

20251021142855_954689284.jpg레지아 단장직을 수행하며 목말라하던 숙제가 있었다. ‘창설자 프랭크 더프를 만나고 싶다. 그 삶을 같이 걸어보고 싶다.’ 특별히 기회가 되어 2025년 여름 휴가를 아일랜드로 다녀오기로 결심하고, 7월 중순, 6박 8일간 7명의 일행이 아일랜드 성지순례 길에 올랐다. 더블린 공항에 도착해, 아일랜드 중서부에 위치한 녹 성모 발현 성지에서 첫 일정을 시작하였고, 100여 년 전 프랭크 더프가 걸었던 그 길을 음미하며 나도 같이 걸어보았다. (아래 인용한 더프 형제의 생애는 로버트 브레드쇼 신부가 쓰고, 안상인 신부가 번역한 ‘프랭크 더프의 생애’에 기술된 내용에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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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 성모 발현 성지의 특사 더프 형제
‘아일랜드의 루르드’로 불리는 ‘녹 성모 발현 성지(Knock Shrine)’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사랑받는 성지이자 성모님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발현하신 은총의 장소이다. 성모님께서는 1879년 8월 21일 저녁, 작은 마을 녹(Knock)의 성 요셉 성당 외벽에서 15명의 마을 주민들에게 2시간 동안 아무 말씀 없이 머무르셨다. 성모님께서는 흰옷을 입고, 두 손을 기도하듯 모은 채 하늘을 향해 서 계셨고, 눈길은 땅을 향하고 있었으며, 오른편에는 성 요셉이 경건한 자세로 머리를 숙이고 있었으며, 왼편에는 성 요한이 성직자의 복장으로 성경을 들고 있었다. 또한 그 옆 제대 위에 어린 양이 놓여있고, 그 주위를 천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이 발현은 2시간 이상 지속되었다.
성모님 발현 후, 아일랜드 가톨릭교회는 조사를 거쳐 15명의 목격자 증언이 일치하고 진실하다고 판단하였으며, 이 사실을 교황청에 알리고 공식 인준을 받을 특사를 프랑크 더프에게 맡겼다. 더프 형제는 1939년 선출되신 교황 비오 12세를 알현할 기회를 얻고 그때 특사의 임무를 수행하게 된 것이다. (더프 형제는 사실 교황님의 선출되기 전부터 이미 교황님과 친분이 있었다) 더프는 1939년 4월 28일 성 루도비코 성인 축일에 교황님을 알현하면서 ‘교본 번역본’과 ‘녹 성지 성모님 발현 조사기록’을 교황님께 드렸다.
우리 일행은 녹 성지 맞은편 순례자 숙소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다음 날 성지로 달려가 7월 17일 성모발현 기념성당에서 거룩하게 미사를 봉헌하였다. 여러 명의 외국인 순례객들이 우리말 미사에 같이 하였다.

더프 형제의 자전거 여행길을 걸어보다
20251021142946_1100217060.jpg더프 형제께서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자전거 타기를 즐겼다는 점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는 더프 형제가 자전거 여행으로 2박을 하였던 킬모어 수도원에 이르렀고, 75년 전 더프 형제의 자전거 여행길을 따라 같이 호흡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1951년 어느 날 프랭크 더프를 비롯한 4명의 남자가 갈웨이 주 투암역에서 자전거를 내려 여행을 시작하여, 웨스트포트를 지나 린넨마을, 킬모어수도원, 클리프텐, 마암 크로스, 갈웨이까지 여행하였고, 이틀간을 킬모어수도원 숙소에 머물렀다. 킬모어수도원(Kylemore Abbey)은 1868년경 아내를 잃은 미첼 헨리가 아내를 기리며 폴라카팔 호수 옆에 아름다운 고딕양식 기념성당으로 건축하였는데, 1920년경 베네딕토 수녀회에서 인수하여 국제 여학교를 설립하였고, 이후 수많은 순례자가 찾는 영적인 피정의 장소로 현재까지 이용된다.
우리는 수도원에서 생산한 재료로 만든 음식으로 점심을 하고 산책하며 잠시 쉬었다. 이곳은 더프 형제가 자전거 여행과 수도원 피정으로 레지오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극복하며 건강을 회복하기에 더 없는 공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꼰칠리움 방문, 더프 형제의 열정을 느끼다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으로 이동하여, 모닝스타 가(街)에 위치한 ‘레지오 마리애 총본부, 꼰칠리움(Concilium Legionis Mariae)’을 방문했다. 꼰칠리움 본부는 오래된 적벽돌로 지어진 생각보다 작은 공간이었으며, 현재 내부 보수공사로 어수선했다. 
사무실에서 꼰칠리움 보조 회계 휄림 롤리(Phelim Lally) 형제를 만나 대화를 나누고, 가져간 대전 평화의 모후 레지아 활동 수첩을 건네주고 본부에 보관을 요청하였으며, 현지 교본과 뗏세라, 프랭크 더프 영성 서적 몇 권을 샀다. 밖으로 나와 꼰칠리움 위쪽에 있는 더프 형제 생가 겸 기념관을 방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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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 형제는 1927년 3월 22일 다트마우스 스퀘어에 있는 주택을 매각하고, 어머니와 함께 샛별 호스텔 근처 저택을 매입하여, 이곳에서 어머니 수잔 더프의 도움을 받아 레지오 마리애의 거점으로 삼아 활동에 집중하였고, 현재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더프 형제의 든든한 지원군이었으며, 더프 형제가 레지오 교본을 집필할 때 직접 교정을 봐주기도 했다. 
더프 형제의 생가에는 그의 모든 열정과 정신과 활동이 집결되어 있었다. 생가의 자전거에서 자전거를 사랑한 더프 형제를 느꼈고, 그의 침대에서 그가 사랑했던 예수성심을 마주 보며 성호를 긋게 되었다. 그곳에는 레지오 창설자 프랭크 더프에 대한 전시 공간과 함께 당시 문서, 사진, 성모님 상본 등이 정갈히 보관되어 있어, 순례자들은 이 작은 공간에서 레지오의 시작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게 하였다. 
20251021143111_1807811819.jpg생가를 나와 더프 형제께서 1927년 설립한 샛별 호스텔 경당에서 미사를 드렸는데, 아일랜드에 유학 중인 대학생과 수녀님께서 오셔서 같이 미사를 봉헌했고, 이곳 미사에서 독서를 맡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는 미사 후 프랭크 더프 시복청원기도와 주모경을 바쳤다. 다음 날, 1921년 9월 7일 밤 8시 레지오 마리애 첫 번째 주회합을 했던 마이러 하우스를 찾아 나섰으나 도착해보니 서글픈 마음이 들고 안타까웠다. 거리는 쇠락했고 레지오의 첫 주회합을 하였던 곳이라는 표식만 있을 따름이었다. 
마지막으로 더프 형제가 잠들어 있는 더블린 북부의 ‘글라스네빈 공동묘지’를 찾았다. 이곳은 아일랜드의 역사적 인물들이 묻힌 국립묘지이며, 더프 형제의 묘소 또한 성모님 상본이 놓인 채 조용히 방문객을 맞이했다. 우리는 더프 형제를 위하여 기도를 바치고 조용히 묵상의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창설자 프랭크 더프의 삶을 따라 현지에서 걸어볼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이번에 그 길을 걸어보았고 같이 해 보았다. 행운이었다. 그런데 나도 100년 전의 더프 형제처럼 열정적으로 살 수 있을까? 그를 본받고 싶다.
더프 형제의 생애가 거룩하였음을 성교회가 인정하여 아버지 이름에 영광이 되게 하소서. 아멘. 
<사진설명(위로부터)>
- 녹 성지 바실리카 대성전
- 킬모어수도원
- 꼰칠리움 사무실에서 휄림 롤리 보조 회계와 함께(좌) 생가의 자전거(우)
- 글라스네빈 공동묘지의 더프 묘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