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주 마리 헬렌 수녀는 1998년 종신서원을 했으며, 20년간 학교에서 청소년들의 교육에 참여하였다. 2021년 이후 수녀원 도서관에서 소임하면서, 가톨릭평화방송 힐링 프로젝트 ‘기도를 부탁해’ 기도 사도직에도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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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7주간(10월 5-11일)
우리에게는 묵주기도가 있어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우리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그대가 맡은 그 훌륭한 것을 지키십시오.(2티모1,7.14)
영화 ‘북샵’은 바닷가의 작은 마을에서 낡고 오래된 집을 서점으로 변신시켜 운영하는 한 미망인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 권력을 추종하는 사람들, 잇속에 따라 처신하는 사람들, 정의로운 사람들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이 이야기를 꾸며나갑니다. 신앙인들이 머무는 자리도 이와 흡사합니다. 누군가가 잘 되는 것을 보면서 함께 기뻐하기보다는 시기와 질투의 눈길로 바라보면서 그 사람을 은근히 밀어내는 속성이 우리 공동체 안에 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플로렌스는 마을 사람들에게 밀려 결국 서점을 그만두고 떠납니다. 하지만 그 여인의 선함을 곁에서 보고 어른들 세계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를 몸소 겪은 어린 크리스틴은 플로렌스가 떠난 서점을 다른 용도로 쓰지 못하도록 불을 지른 후 배를 타고 떠나는 그녀를 배웅하면서 이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어른들의 세계를 바라보고 성장하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인 어린이들이나 이제 갓 세례를 받은 새내기 신앙인들은 무엇이 옮고 무엇이 그릇된 것인지를 양심에 따라 식별합니다. 그러면서 성숙한 신앙인이 되었을 때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그 사람을 따라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 어떤 환난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살아갑니다.우리 주변에 있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인 어린이들이나 연약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우리들이 행하는 올곧은 신앙의 행위를 모범 삼아 자신의 미래를 꿈꿔가고, 가꿔가도록 돕는 성모님의 군단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묵주기도의 성월, 10월에는 우리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티 없으신 성모 성심을 닮아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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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8주간(10월 12-18일)
레지오 마리애 정신을 옷 입은 단원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특별히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불림을 받은 우리는 내가 누구인가를 명확히 알 필요가 있는데, 여러분은 바로 ‘성모님의 군단’입니다. 군단이라고 하여 총칼을 들고 전장에 나가는 군인이 아니라 성모님의 정신으로 무장해, 내가 있는 곳에 성모님처럼 서 있는 것입니다. 교본에서는 성모님의 정신을 겸손, 순명, 온유, 기도, 고행, 순결, 인내심, 지혜, 사랑, 믿음, 이 열 가지로 요약합니다. 이 모든 것이 성모님께서 외아들 예수님의 전 생애를 따라가시는 곳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그래서 환희, 빛, 고통, 영광의 신비를 정성스럽게 바치면서 예수님의 전 생애에 아로새겨 있는 성모님의 마음을 엿보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마음을 자신의 삶으로 가져와 그대로 따라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레지오 마리애 단원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곳곳에 전쟁의 불씨가 번지고, 무기들이 무기고를 채우고, 사람들이 증오와 대립의 언어로 마음을 재무장하는 시대입니다. 굶주린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나는데, 돈이라는 우상을 떠받드는 경제 구조가 지구 자원을 무절제하게 착취합니다(교황 레오 14세 참조).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성모님의 정신으로 새롭게 무장해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허물없고, 순결하고,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어야 합니다.(필립 2,15 참조) 이 작은 불씨는 가정을 시작으로 본당, 지역사회, 우리나라를 넘어, 온 우주로 번져나갈 것입니다. 애니메이션 ‘모아나’는 심장을 빼앗겨 분노에 찬 대상에게 다가가 그의 참모습을 만나도록 돕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고 감동을 주었습니다. “나는 마투누이 섬에서 온 모아나다.”라고 자신이 누군지를 되풀이해서 말하는 ‘모아나’처럼 자신을 알면 무엇을 실행에 옮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정신으로 사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인 우리도 나에게 부담스럽게 다가오는 이웃을 온유로 대하며 한 주간을 성모님의 손을 꼭 잡고 은혜롭게 지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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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간, 전교주일(10월 19-25일)
사랑하면 닮을 수밖에 없어요
아빠나 엄마를 꼭 빼닮은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하느님을 꼭 빼닮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사랑하면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빚어 만드신 하느님의 지향대로 우리는 우리 주 하느님을 찬미하고 경배하고 섬기며 이로써 우리의 영혼을 구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목적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전 존재를 바쳐 그리스도를 따르신 이냐시오 성인의 고백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람으로 태어나 우리와 함께 살며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신 나머지 자신의 목숨마저 내어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어떻게 혼자 버려둘 수 있겠습니까. 그분을 어찌 우리 마음속에만 간직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면 닮을 수밖에 없어 우리는 그분의 말씀과 행적을 그대로 우리 자신 안에 인장처럼 지니고 살아가며 이웃에게 다가갑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본받아 사령관이신 어머니의 뜻을 그대로 살아가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인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셨고(강생), 우리처럼 살아가셨는데 죄 외에는 우리와 똑같으셨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셨고, 가엾은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실 수 없으셨습니다. 참새도 나리꽃도 가시덤불 속에 던져진 씨앗도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눈여겨보신 섬세한 분이셨습니다. 이 모든 사랑의 정서는 어머니의 성심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기도 합니다.우리 주님, 예수님은 사랑하는 당신의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장엄하게 걸어가시는데 그 길을 억지로 걷지 않으시고 기꺼이 걸으셨습니다. 이 지상 여정의 마지막 걸음을 한 발 한 발 정성스럽게 떼시고, 그 걸음에 하느님의 사랑을 담아 이 세상에서 다시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랑의 발자국을 남기셨습니다. 그 뒤를 성모님께서 따르십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우리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성모님의 뒤를 바짝 따라가면서 걸음걸음마다 복음의 빛을 드러내며 숨은 기도로 이 세상에 성모님의 흔적을 드러내는 존재들입니다. 그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또 예수님을 사랑하게 될 거예요. 이것이 전교주일을 맞는 우리들의 자화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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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0주간(10월 26일-11월 1일)
청년 성인 카를로 아쿠티스를 본받아
선종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시성을 승인했던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1991-2006) 지난 9월 7일 레오 14세에 의해 시성 되셨습니다. 밀레니엄 세대 출신 첫 성인의 길을 연 카를로는 짧은 생애 동안 놀라운 성체 신심과 성모 신심을 갖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매일 미사를 봉헌했고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며 자신을 성모님께 봉헌하셨다고 합니다. 이는 아마도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데 필요한 은총을 얻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카를로 성인은 성모님의 도움이 없다면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이 훨씬 더 험하고 걸림돌로 가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카를로 성인은 다른 어떤 성인들보다 성모님을 더 사랑하셨다고 합니다(‘하느님의 인플루언서’ 151쪽).
제목에서 제가 ‘인플루언서’라는 말을 썼는데 이는 인터넷에서 높은 인지도를 얻은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카를로 성인은 교회 안에서 일어난 성체 기적과 성모 발현 등을 수집해 웹사이트를 제작하여 복음 전파에 헌신했습니다. 아마도 소년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나 청년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카를로 성인을 친근하게 만나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카를로 성인이 시복된 2020년 이후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과 미국, 아시아에서는 카를로 성인의 신심을 따르는 활동과 행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부활절에 머물렀던 아일랜드에서도 카를로 성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를 소개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15세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그의 신심 행위는 봉쇄 수녀님들의 눈길을 받을 정도로 한결같았습니다. 특별히 성체성사에 집중했는데 ‘성체는 바로 예수님의 심장’이라고 고백한 그분의 신앙 감각이 놀랍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신심 행위는 어른들만이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젊은이일수록 티 없이 맑고 순수하게 성모 성심께 다가갈 수 있습니다.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이여, 어린이들과 청소년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에게 힘이 되어 주시어, 그들이 당신을 통해 예수님과 함께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