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가 꼴찌 될 것이다.”(마태 20,16) 서울대교구 상도동성당 상지의 옥좌 Cu.(단장 정정해 카타리나) 직속 상지의 좌 Pr.(단장 박동현 마리아) 부단장 한정림 안젤라 자매가 신앙의 중심에 둔 말씀이다. “어디를 가더라도 나쁜 자리는 있죠. 들어가고 나가기 불편하거나 춥거나 더운 자리 말이에요. 왜 그런지 제 눈엔 그런 자리가 먼저 보이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남들은 하기 싫다고 하는 것을 그냥 하는 편이었어요. 결국엔 좋은 결과가 되어 감사할 일이 생기더라고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려던 대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남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자처했던 것뿐이다. 그런 삶의 태도는 레지오와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두 아이(지소영 아네스, 지병준 사도요한)가 유치원을 다니던 무렵 우연히 누군가 협조단원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묵주기도만 하면 된다고 해서 어렵지 않겠다 싶었다. 그것이 첫 인연이었다. 우연은 인연이 되어 한 안젤라 부단장의 삶의 자리를 옮기게 했다. 가족의 안위를 지향으로 기도하던 한 부단장에게 더 큰 기도 제목을 선물로 보내셨다.
“1977년 명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어요. 결혼하고 육아하는 동안 여유가 없다가 1986년 견진성사를 받았죠. 대모님(김융자 안젤라)의 권유로 레지오에 입단했어요.”
서른다섯 살이었다. 그때부터 활동 범위가 달라졌다. 복사단 자모회, 성가대, 방문 교리, 반장, 구역장, 총부구역장, 연령회 회장까지 일이 맡겨지면 충실히 수행해왔다. 대외적인 봉사활동도 늘어났다. 여의도 성모병원, 예수성심 치매 주간보호소, 아기돌봄센터, 프란치스코 노숙자 식사 봉사까지 쓰임이 필요하다면 두말하지 않고 자처했다.
레지오 안에서도 끝자리에 앉아야 하는 순간이 되면 늘 그녀의 몫이라 생각했다. 처음 입단했던 예언자들의 모후 Pr.이 구세주의 모후 Pr.로 분단할 때나 상지의 좌 Pr.로 합단할 때도 늘 중심에 그가 있었다. 새로 들어온 단원들을 보듬고, 빠지는 자리를 메우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4간부를 모두 거치고 Cu. 간부까지도 도맡았다.
레지오는 한 부단장에게 삶의 중심이고, 일상이었다. 덕분에 성가정을 이루는 귀한 선물을 받았다. 레지오 입단 이후 두 아이가 첫영성체를 하고, 남편(지호웅 요셉)이 하느님의 귀한 자녀가 되었으며, 이제 사위, 며느리까지 영성체의 기쁨을 누리는 축복을 받았다.

주님께서 부르셨기에 지금 여기에
“봉사의 자리는 쉽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다 보면 날짜가 겹쳐 난감할 때도 있지만 기도드리면 신기하게도 날짜가 겹치지 않더라고요. 얼마나 감사한지. 해야 할 일이라면 그렇게 부르고 쓰셨던 거죠.”
많은 이들이 어려워하며 피하려는 자리지만, 한 부단장에게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언제나 “힘들면 도와주고, 기도하면서 해보자”라고 권한다. 마르타로 살아야 하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주님의 일은 마르타가 마리아가 되고, 마리아가 마르타가 되는 경험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는 것을 체화한 그녀이다.
레지오 입단한 지 39년째, 여전히 한 부단장은 바쁘다. 그녀를 비롯한 상지의 좌 Pr. 단원 모두가 분주하다. 11월에 맞이하는 3000차 주회 준비 때문이다. 2500차 때 단장으로 활동했던 그녀이기에 10년이 지난 지금, 감회가 남다르다.
“그때만 해도 ‘내가 3000차까지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어느덧 이렇게 시간이 지났네요. 정 카타리나 Cu. 단장님을 비롯해 영적 지도자이신 박성칠 미카엘 주임 신부님까지 모두 관심을 갖고 계셔요. 하느님께서 성모님과 함께해 주신 자리이기 때문이겠죠.”
본당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Pr.이라 책임이 더 무겁다는 한 안젤라 부단장. 내년이면 레지오 활동을 시작한 지 40년이 된다.

“성모님을 사랑해요. 예수님의 공적 생활을 묵묵히 채워주신 삶의 태도를 본받고 싶었죠. 뭔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 깊이 생각하시는 성모님의 모습을 닮고 싶었어요. 조용하고 누구 앞에 드러나는 것이 싫었던 제 모습을 바꿔주신 것도 성모님이고, 작은 흠도 지나치지 못하고 바로 잡아야 하는 직설적이고 모난 성격을 긍정적으로 바꿔주신 것도 그분입니다.”
오랜 시간, 성모님을 향한 사랑은 부드럽게 때로는 거센 물살이 되어 한 안젤라 부단장을 깎고 또 깎아 크고 둥근 바윗돌을 만들게 했다.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큰 바위가 되어 이젠 누구나 탐내는 쉬고 싶은 자리가 되었다.
<사진설명(위로부터)>
- 견진 때 대보님과 함께(좌) 아치에스
- 협조단원 모임(위) 서울 마리아학교 수료식(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