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본 다시 읽기
프란치스코 교황이 레지오
단원들에게 보낸 메시지
박준양 세례자 요한 신부 서울 무염시태 Se. 전담사제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재위 2013-2025)은 지난 4월 21일 바티칸의 숙소 ‘성 마르타의 집’(Domus Sanctae Marthae)에서 오랜 폐렴 후에 찾아온 뇌졸중과 그에 따른 심부전으로 인해 향년 88세로 선종하였다.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는 교황의 선종을 알리는 조종(弔鐘)이 널리 울려 퍼졌고, 전 세계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말씀과 업적을 기리며 그분의 죽음을 깊이 애도하였다.
한국의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 역시 그러하였다. 특히, 2025년 정기 연수를 위해 지난 4월 25일 전주 치명자산성지에 모인 전국 각 교구의 레지오 간부들은 평화의 전당 1층 보두네 홀에 마련된 전주교구 공식 분향소에서 함께 엄숙히 조문하였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화로운 안식을 빌며 연도를 바쳤다. 그리고 교황 성하의 장례미사가 있던 4월 26일 오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추모하는 미사를 함께 봉헌하였다.
필자에게 프란치스코 교황과 직접 만난 일은 인생의 매우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 때, 8월 16일 광화문에서의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 그리고 8월 18일 명동대성당에서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 필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사 강론을 미리 번역하고 현장에서 직접 통역하는 역할을 맡아 수행하였다.
번역할 강론 원고가 도착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며 피정하는 마음으로 준비하던 그해 여름을 필자는 결코 잊을 수 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리 준비된 원고를 읽어나가다가도 갑자기 원고에 없는 즉석연설을 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필자 역시 교황 성하의 그 이전 연설 동영상들을 모두 찾아보며 현장에서 생길 수 있는 돌발적인 즉석 통역을 미리 대비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때 그 시간은 필자에게 너무도 큰 은총의 시간이었다. 그 연설 동영상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필자는 언어 차원의 기술적인 대비에 앞서 그분의 마음을 잘 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준비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분의 어투나 언어적 습관에 익숙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그분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그 마음과 하나 되는 것이 먼저 필요함을 깨달았다.
20250519133705_64880468.jpg그리고 그 방한 행사가 모두 끝난 2014년 9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필자를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제9대(2014-2020) 위원으로 임명해 주셨으며, 그 6년의 임기가 끝난 후에도 이어서 제10대(2021-2026) 위원으로 또다시 임명해 주셨다. 전 세계를 대표해서 교황 성하에 의해 직접 임명된 30명의 국제신학위원회 위원으로서 보낸 지난 11년의 삶은 필자의 인생에서 매우 힘들면서도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매년 두 차례씩 바티칸 교황청에 가서 일주일 넘게 ‘성 마르타의 집’에서 합숙하며 이루어지는 신학 토론과 문헌 작성 작업을 위해, 평상시에 미리미리 연구하고 준비하는 것도 매우 힘들고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이어지는 바티칸 현장에서의 수준 높고도 격한 토론 시간은 그야말로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가장 큰 보람은 교황 성하와 동일한 숙소를 사용하기에 경당이나 식당에서 그분을 자주 볼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회의를 모두 마친 후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공식적인 만남 시간을 매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 신학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경청하고 개별적인 알현을 하는 것은 정말 큰 기쁨이고 영광이었다. 특히 2014년 12월의 첫 만남과 2024년 11월의 마지막 만남에서 반복해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신학자들의 가장 큰 임무와 역할은 성령께서 교회에 말씀하시는 바를 가장 먼저 깨닫고 가장 예민하게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레지오 마리애 영적 지도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강조하신 ‘시노달리타스’에 입각하여 향후 레지오 교본을 어떻게 새로이 해석하고 수정할 것인지가 큰 과제로 떠오른다. 이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을 추모하며, 그분께서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에게 주신 2022년의 메시지가 있어, 이 기회에 필자가 이를 직접 번역해 소개하고자 한다.

“레지오 마리애가 그 설립 100주년 행사를 올해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2022년 11월 19일에 거행될 레지오 마리애 100주년 기념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분과 제가 기도로써 함께할 것임을 확실하게 말씀드립니다.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레지오의 신앙 증언과 애덕 실천의 노력을 통해 풍성한 은총을 받았음에 대해, 저는 특별한 방식으로, 여러분과 더불어, 전능하신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리고자 합니다. 동시에, 그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선교적 열정의 쇄신으로 연결되기를, 그래서 여러분의 중요한 사도직 활동을 통해 복음의 구원적 메시지를 널리 전하는 소명에 여러분이 계속 충실하게 응답할 수 있기를 저는 기도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여러분이 항상 여러분의 천상 수호자인 원죄 없으신 마리아를 닮아가도록 노력해, 항구한 관용과 하느님 섭리에 대한 신뢰를 잘 간직하시길 빕니다.
레지오 마리애와 관련된 모든 분을 복되신 모후의 전구에 맡겨드립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께서 강복하시어,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의 징표로서 기쁨과 능력 그리고 평화를 내려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여러분께서도 부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로마 성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2022년 11월 14일, 교황 프란치스코”

프란치스코 교황을 하느님께 떠나보내고 이제 새 교황 레오 14세를 맞이한 이 시점에서, 전환기의 교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교회의 쇄신과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투신해야 할 레지오 마리애의 소명을 새로이 되새기며 다짐해본다.
<사진>2024년 11월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회의 중 프란치스코 교황님 알현(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