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이었네
성모님의 이끄심
구자순 율리아 마산 치명자의 모후 Re. 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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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서툴렀던 지난날을 돌아다 봅니다. 고향을 떠나 성모여고에 다닐 때 성모님은 저에게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율리아’라는 세례명을 미리 정해 놓고 열심히 예비신자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달 동안 성당의 미사 참례가 의무였는데 그걸 하지 않아 세례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 당시 참 속상했었는데, 잊고 지내다 2005년 파리 여행 중 성모 승천 대축일 때의 일입니다. 미사 중인 노트르담성당에서 밖으로 울려 퍼지는 성스러운 성가에 빠져 세례를 받고 싶다는 뜨거운 마음이 저 깊은 곳에서 올라왔습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계속 바라보고 계셨음이라 생각합니다.
어느 날 주님께서 드디어 저를 불러주셨습니다. 예비신자 교육을 알리는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직장동료의 도움으로 다시 예비신자 교육을 받고 ‘율리아’로 하느님의 사랑받는 딸이 되었습니다. 오묘하신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모님의 이끄심을 진하게 느끼는 요즈음, 그 이끄심에 함께할 수 있도록 해주신 분들과 일들을 기억해 봅니다.20250519115736_1931851769.jpg
첫 번째로 저만 보면 밑도 끝도 없이 마구 무엇이든지 시키시는 분입니다.
“율리아, 토요일에 ○○대학병원 원목실로 좀 와.”
“예.”
“율리아, 독서 좀 해.”
“예.”
“율리아, 임상사목교육 같이 받자.”
“예.”
“꾸르실료 참가해 봐.”
“예.”
“봉헌을 위한 33일 기도 묵상회가 있다는 데 가봐.”
“예.”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왜요?”라고 한 번도 반문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혼자 노는데 엄마가 불렀을 때 얼굴을 돌리듯, 엄마에게 안기기 위해 달려가듯, 그렇게 성모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이끌어 주신 은인입니다. 성모님께 다가가고픈 저의 열망을 어떻게 알아채시고 그때마다 이끄셨는지 신비롭기만 합니다.

세 번의 산티아고 순례길, 성모님께서 돌봐주신 은혜의 시간
두 번째로 그 당시에는 몰랐는데 생각해 보니 스스로 성모님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2015년 두 젊은이와 함께 유럽으로 자유여행을 갔을 때입니다. 젊은이의 이모님이 파리의 뤼뒤박 성모님 발현지를 꼭 방문해 보라는 메시지를 문자로 보내오셨습니다. 우리는 그곳에 가 보기로 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미사 참례를 했습니다. 도심 속의 조용하고 정갈한 성지로, 경당의 내부 정면에는 청색으로 성모님 발현 상황이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기적의 메달을 사서 들고 왔으나 그때는 그 의미를 제대로 몰랐었습니다. 
성모님의 군단이 되니 제대 중앙에 놓인 성모님과 벡실리움이 궁금해졌는데, 뤼뒤박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서 우리 성모님의 군단을 이끌어 주심을 비로소 알게 되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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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일입니다. 2018년 남은 삶의 여정에 대한 고민을 안고 순례길에 올랐습니다. 그 길을 걸으며 지난 30여 년의 직장생활을 갈무리하고 새로운 삶의 길로 나아가고 싶었습니다. 파리 노트르담성당에서 안수를 받고 출발하였으나 첫날 눈 쌓인 피레네산맥을 오르면서 그만 지쳐, 동행했던 분들께 잠시 쉬고 갈 테니 먼저 가시라고 했습니다. 1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산을 기어오르다 멈춰 서면 먼발치에 서서 끝까지 기다려 준 형제님과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그 길 위에서 그분들은 나의 은인들이었습니다. 
20250519115827_408691015.jpg그 순간을 넘기면서 묵주기도가 하고 싶어졌습니다. 처음 하는 기도라 휴대폰의 묵주기도를 틀어놓고 읊조렸는데 그 뒤에 저는 제 목소리로 온전히 묵주기도를 바치게 되었습니다. 그 묵주를 손에 들고 걸었던 세 번의 산티아고 순례길, 걷는 내내 성모님께서 저를 돌보시며 바로 서게 일깨워준 은혜롭고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묵주기도가 성모님의 군단인 우리의 강력한 무기임을 레지오에 들어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 성모님께 의탁하며 매일 정성스럽게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돌아보면 성모님을 만나기 전의 모든 길과 시간과 그 마음과 인연 등이 모두 은총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떠나보내며 이별의 큰 슬픔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낮추시어 가난하고 고통받는 양 떼들을 돌보시며 평화를 사랑하시는 교황님께서는 하느님의 영원한 빛으로 초대되었을 것입니다. 바티칸의 바오로 6세 알현실에서 “파파, 프란치스코”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교황님을 뵙던 그 감동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성모님께서 저와 교황님과의 기쁜 만남에 함께해 주셨듯이 성모 대성전에서 파파 프란치스코가 영면하도록 돌봐주시리라 믿습니다. 그곳에서도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리라 믿으며 주님의 품 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사진 설명(위로부터)>
_ 제65차 종합보고를 마치고 신부님과 함께
_ 2015년 뤼뒤박 무염시태 성모님(좌) 2018년 파리 노트르담성당에서(우)
_ 2020년 폰페라다(좌) 2015년 바오로 6세 알현실에서 뵌 프란치스코 교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