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3)
“성인들의 통공을 믿으며”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 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김수환 추기경 시복 추진 
현재 한국천주교회에는 103위 순교성인, 124위의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그리고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조선왕조 치하 순교 133위인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근-현대 신앙의 증인 81위인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그리고 베네딕토회 덕원의 순교자 38위인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김치호 베네딕토와 동료 순교자들 등을 신앙의 선조로 공경하고, 교회법에 따라 시복과 시성 등의 절차를 준비 중입니다.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 역시 시복을 위해 준비 중입니다.
김 추기경을 복자로 기리고자 우리 교회가 노력하는 이유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김 추기경을 신앙의 모델로 삼아 따를만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김 추기경의 시복은 그분이 삶과 죽음의 모든 순간에 그리스도교적 덕행과 성덕을 아주 잘 실천하였고, 매우 모범적으로 그리스도를 잘 따르고 목숨을 다해 복음을 증거한 대표적 신앙인이기 때문입니다.

“성인들의 통공을 믿으며”
교회는 하느님의 공동체이고, 이 공동체는 언제나 친교를 지향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친교(Communio)는 언제나 삼위일체 하느님에 근거합니다. 또한 지상에서 드러난 친교의 의미는 예수님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그리스도를 통한 친교의 의미가 가장 잘 드러나는 표현 중 하나가 ‘성인들의 통공’(通功 communio sanctorum)입니다. 성인들의 통공은 모든 하느님의 자녀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즉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친교를 의미합니다.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pro vobis et pro multis). 이는 김 추기경이 주교로 서품된 이후 정한 사목 표어이고, 묘비에 출생 연도와 함께 새겨진 말씀입니다. 이는 원래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만찬 중에 하신 중요한 말씀(마태 26,28; 마르 14,24 참조)이고, 매번 거행되는 미사 중 실체변화의 가장 중심에 선포되는 말씀입니다. 김 추기경은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해 모든 인간이 하느님과 연결되었음을 간파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구원경륜 안에서 처음부터 긴밀한 관계였고,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인간은 서로 밀접하게 관계 맺은 존재라 생각했습니다. 
김 추기경은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할 소명(召命)을 받았음을 직시하고, 그래서 모든 사람, 특히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김 추기경은 모든 이들을 하느님의 뜻대로 이끌기 위해 사목자로, 교회의 지도자로,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열심히 살고, 기도했습니다. 김 추기경에게는 신앙과 사랑과 봉사가 상호 소통하는 세상이 절실했고, 그래서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도했으며, 특히 가장 소외되고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했습니다. 
김 추기경의 이러한 삶은 성체성사의 의미와도 상통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몸을 바쳐 모든 이의 일치를 위한 제물이 되셨고,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도록 당신 자신을 내어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성체성사의 참된 의미입니다. ‘성인들의 통공’, 즉 함께 기도한다는 것, 그리고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의 궁극적 의미는 결국 모든 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고, 김 추기경은 그렇게 살려고 누구보다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김 추기경은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해 노력한 한 인간이었고, 교회 안은 물론 교회 밖의 사람들과도 함께 하기 위해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했던 그 시대의 어른이었습니다.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신 이유는 하느님이 먼저 인간에게 다가가서 함께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되신 그분은 언제나 모든 인간, 특히 가난한 사람들, 소외받는 사람들, 어렵고 힘든 사람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삶의 기준은 명확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점을 우리 시대에 가장 잘 살고, 가장 잘 보여 준 분이 김 추기경님입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그리스도를 대신해서’(in persona Christi) 하느님의 뜻을 이 땅에서 실행하는 것이고, 김 추기경은 이 역할을 누구보다 충실하게 수행했습니다.
비록 이 땅엔 순교자의 신앙과 피가 흐르지만, 아쉽게도 비그리스도인이 대부분인 이 나라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김 추기경님은 부단히 노력했고, 열심히 사셨습니다. 김 추기경님의 기도와 노력은 결실을 맺었고, 그래서 우리 교회는 성장할 수 있었고, 가톨릭 신자들은 자랑스럽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휴전 상태이고, 때로 불안한 상황을 맞기도 합니다. 분단국가에 있는 우리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야 할까요? 모든 답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에 있고,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잘 따랐던 사람들의 삶과 신앙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김 추기경님은 누구보다 그리스도를 따라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용기 있게 행동했고, 때로는 침묵했으며, 때로는 지혜롭게 절제했고, 언제나 기도하면서 겸손하게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2027년 여름 한반도 남쪽에서는 ‘가톨릭 세계 청년 대회’(World Youth Day)가 개최될 예정입니다. 이 대회는 가톨릭교회가 지닌 보편성을 전 세계에 분명히 드러내는 시간이고, 동시에 특히 교회 내 청년들에게 신앙을 제대로 알려주고 체험하게 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분단된 한반도에 전 세계 가톨릭 젊은이들을 초대해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K-팝과 K-컬쳐만이 아니라, 순교자의 피로 이루어진 자랑스러운 우리의 신앙을 알려주고, 그들과 신앙적 유대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만일 가장 한국적인 가톨릭 신앙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삶과 사상을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제대로 알려줄 수 있다면, 분명 모든 믿는 이에게 큰 힘과 용기를 줄 것입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믿고 따랐던 가장 대표적인 신앙인인 김 추기경님의 삶, 사상, 신앙을 젊은이들이 소개하고 이야기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분명 내적 복음화는 물론 외적 복음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