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를 시작하고 참회 예식을 거행할 때 모든 이는 고백의 기도를 바치며 성모님을 부릅니다. 이때 등장하는 성모님 호칭이 “평생 동정”(semper Virgo)입니다.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와 모든 천사와 성인과 형제들은 저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우리 문화 정서에는 어머니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게 맞지 않아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라고 합니다만, 라틴어 기도문은 “평생 동정이신 복되신 마리아”(beatam Mariam semper Virginem)라고 이름을 직접 그대로 부릅니다. 교회의 신앙은 마리아를 “평생 동정”이라 고백합니다. 미사를 시작하면서도 “평생 동정이신 성모 마리아”를 부르니, 이 호칭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평생 동정”은 예수님 출산을 기점으로 성모님의 일생을 세 단계로 나누면서 생겨난 말입니다.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요? “출산 전”, “출산 중”, “출산 후”입니다.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출산하시기 전에 동정녀 셨고, 출산하시는 중에도 동정녀 셨고, 출산하신 이후에도 동정녀 셨고, 그러니 성모님은 평생 동정이시라는 고백입니다.
“출산 전의 동정”(virginitas ante partum)은 성모님께서 자기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바치셨고, 남자의 개입 없이 성령의 능력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을 마음과 몸 안에 잉태하신 신비를 말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동정 마리아에게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새 아담이시기에, 오롯이 하느님께 속한 죄 없고 흠 없는 동정 마리아에게서 잉태되고 나셔야 했습니다. 강생의 신비는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구원 사건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는 이는 하느님의 생명을 받아 새롭게 태어납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 하느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며 성모님과 함께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성령께서 내려오시자 이들은 두려움과 죄의 어둠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당당하게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제자들은 “동정 마리아에게서 잉태되어 나신” 주님의 신비를 알아듣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시기 위해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파견하셨고, 성모님께서 성령의 능력 안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을 잉태하셨으며, 성모님과 함께 성령 하느님을 깨어 기다리며 기도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새로워진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 마리아에게서 잉태되신 사건은 새로운 창조를 위한 구원 사건입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잉태되어 나신” 신앙의 진리를 강조하며 선포하는 겁니다.
성모님은 원죄의 결과에 매이지 않으신 분
“출산 중의 동정”(virginitas in partu)은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낳으실 때 여전히 동정녀로서 동정성을 잃지 않으셨다는 신비를 일러줍니다. 창세기 3장은 여자가 겪어야 할 원죄의 결과를 말합니다.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3,16) 성모님은 은총이 가득하신 분, 원죄로부터 보호받으신 분,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낳으신 분, 원죄의 결과에 매이지 않으신 분입니다. 고통과 괴로움은 하느님께서 원하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로지 당신께 의지하는 동정 마리아를 모든 죄와 그 결과로부터 보호하시어 성모님께서 해산의 고통과 육신의 훼손 없이 예수님을 출산하도록 하셨습니다.
“출산 중의 동정”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 알려주는 신앙 고백입니다. 인간의 몸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느님의 아름답고 위대한 작품입니다. 죄와 죽음은 인간의 몸을 파괴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몸을 돌보아 주시고 영광스럽게 변모시켜 주십니다. “육신의 부활”을 믿는 신앙은 인간의 몸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찬란히 빛나는 구원의 자리임을 고백합니다. 하느님께 오롯이 속한 동정 마리아는 출산 중에도 육신의 훼손이 없었고, 죽음의 세력도 그분의 육신을 지배할 수 없었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분”은 죄와 죽음에 지배되지 않는 인간 육신의 고귀함을 밝히 알려줍니다.
성모님은 동정녀로 하느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봉헌
“출산 후의 동정”(virginitas post partum)은 성모님께서 예수님을 출산한 이후에도 동정녀로 살아가셨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여 동정 부부로서 가정을 이루셨습니다. 여기서 항상 문제로 대두되는 것은 예수님의 형제들에 대한 증언입니다.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마르 6,3). 예수님의 형제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가톨릭교회와 정교회와 개신교의 입장이 각기 다릅니다.
가톨릭은 예수님의 형제들을 처음부터 그분의 사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교회는 외경의 전통에 따라 요셉 성인의 전처소생, 곧 예수님의 이복형제라고 말합니다. 개신교는 마리아가 낳은 다른 자녀, 곧 예수님의 친형제라고 주장합니다. 가톨릭과 정교회는 성모님의 출산 후의 동정을 고백하지만, 개신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히브리어 문화권에서는 친형제나 사촌 형제를 모두 형제라고만 불렀기 때문에, 성경 본문만으로는 확답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승, 살아있는 전통이 중요합니다.
가톨릭교회의 전승에 따라 복음서와 사료들을 읽으면 예수님의 형제들이 그분의 친형제가 아님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지켜보던 여인들 가운데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등장하는데(마르 15,40), 그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아닌 다른 마리아였습니다. 복음사가 스스로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와 요세는 예수님의 친형제가 아니라고 일러주는 셈입니다. “주님의 형제”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수장이었는데(갈라 1,19; 2,9),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는 그의 죽음 이후 “주님의 둘째 사촌”인 클로파스(의 아들) 시몬이 예루살렘의 주교로 임명”되었다고 증언합니다. 이렇듯 마리아의 출산 후 동정은 역사적 정황에 상반되지 않습니다.
성모님과 요셉 성인은 하느님께 순종하여 성가정을 이루고 동정 부부로 생활하셨습니다. 성가정은 하느님의 은총이 충만한 가정 교회였고, 성모님은 동정녀로서, 어머니로서, 신부로서 하느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봉헌하였습니다. “평생 동정”이신 성모님 안에 동정녀요 어머니이며 신부인 교회의 신비가 광채를 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