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세타 고원과 기적의 패 목걸이
이제 본격적인 메세타 고원이 시작된다. 메세타 고원은 스페인 한가운데 있는 드넓은 고원으로 610~760m의 고도를 유지한다. 이 지역은 스페인 전체 면적의 2/5를 차지하며, 대부분 나무가 없고 밀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 고원은 부르고스에서 레온에 이르는 200km 상당의 거리다. 여름에는 매우 덥고 겨울에는 눈 덮인 산맥으로부터 불어오는 강하고 차가운 바람으로 인해서 매우 춥다고 한다. 전체 까미노 중에서 가장 힘든 코스라서 사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지역이다. 안내서에도 메세타 구간은 매점도, 화장실도, 나무 그늘조차 없는 순례자들에게 고행을 겪게 하는 코스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래서 대부분 순례자들이 걷지 않고 버스나 자동차로 이동하기도 한다. 반면에 힘든 만큼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다지며 더욱 성숙해지는 구간이 되기도 한다.
우리 부부는 메세타 고원을 그대로 걷기로 했다. 일행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있는데, 모나스페리오 성모 성당에서 수녀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 들어가 보니 흑인 신부님께서 안수해 주시면서 기적의 패 목걸이도 걸어 준다. 가장 힘든 코스인 메세타 고원을 걷기 전에 정성껏 준비해 준 기도와 안수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되었다. 우리는 476Km가 남았다는 대형 현수막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메세타 고원의 길은 굽이굽이 이어진다. 저 멀리에 지평선과 하늘이 맞닿아 있다. 보이는 건 밀을 벤 들판과 파란 하늘 그리고 길이다. 메세타 고원의 장대함은 걸어도 걸어도 누런 들판과 파란 하늘만 보인다. 고원 가운데로 난 길에는 순례자들의 발걸음 소리와 스틱 소리가 행진곡처럼 들렸다가 점점 잦아들면서 아득해진다. 쏟아지는 태양의 열기로 더위가 엄습한다. 힘이 들어서 걸음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다. 다들 아무런 말이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처럼 긴 침묵이 이어진다. 문득 끊임없는 질문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나는 지금 왜 이곳 스페인 까미노 길 위에 있는가?
나를 이곳으로 초대하고 이끌어 준 이는 누구인가?
나는 대체 무엇을 얻고자 이곳을 걷고 있는가?
보물 같은 온타나스 마을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이 길이 언제 끝날 것인지 멀미가 나려고 한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무심히 떠 간다. 다들 지쳐서 말이 없고 입술은 바싹바싹 마른다. 길을 걷는다. 지평선과 맞닿아 있는 길을 걷고 또 걷는다. 밖으로 향하던 마음이 각자 자기 내면에 머무는 것일까? 몸과 마음이 완전히 하나가 된 것일까? 아무 생각과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래도 메세타 고원의 한가운데 유명한 수도원 산볼 알베르게가 있어서 그곳에서 묵는 순례자들도 있다. 20여 명이 묵을 수 있는 알베르게이기에 예약은 필수이다. 산볼 이후에 가도 가도 마을은 보이지 않았다. 길은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나 보다. 앞서가는 사람들이 멀리 보이는데 점처럼 보인다. 그 점을 향해 걷고 걸어서 다가가 보지만 자꾸만 멀어진다. 마치 신기루 같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능선이 끝나갈 무렵, 움푹 들어간 그곳에 보물처럼 온타나스 마을이 숨이 있는 게 아닌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마을 등장에 가슴이 뭉클할 만큼 감동스럽고 반가웠다.
보아딜라 델 까미노 마을
이튿날 온타나스 마을을 길게 빠져나가니 오르막이 이어졌다. 경사진 950m를 걷는데 숨이 턱까지 차올라 여러 번 쉬며 간신히 오를 수 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고 가끔 있는 나무와 정상에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다행이다. 멀리 보이는 산들이 마치 병풍을 둘러놓은 듯하다. 산 정상에서 1km는 평지로 이어지다 급경사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끝없이 이어지는 길이 눈 앞에 펼쳐진다. 앞에 사람이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작게 보인다. 아주 길게 이어지며 끝도 없이 가는 지평선이 하늘에 맞닿아 있다. 한참을 걸어가니 옥수수밭에 스프링클러로 물을 주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했다.
멀리 보이던 마을이 차츰 눈앞으로 다가오고도 한 시간을 걸어 보아딜라 델 까미노 마을에 도착했다. 동네 사람에게 물어 찾아간 알베르게인데 안쪽에 수영장과 잔디밭,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로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분위기가 좋았다. 호텔과 알베르게와 바를 겸하고 있는 곳이다. 접수 후 안내받아 찾아간 곳에서 위아래 두 칸 침대를 준다고 하는 걸 사정해서 1층 칸으로 부탁해 배정받았다. 2층은 난간이 없는 곳이라 떨어질 위험이 있어 사정이라도 해서 바꿀 수 있다면 그게 안전해서 좋다. 오후에 식사하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그러면서 내일 갈 방향도 알아 두었다.
순례 중 감동적인 음악회
성당 부근을 걸어오는 데 잘 차려입은 어르신들이 눈에 띈다. 정장에 구두, 화장은 기본이고 목걸이에 귀걸이, 화사한 모자나 액세서리를 한 분들이 많다. 화장을 진하게 한 40대쯤 보이는 자매로부터 음악회 초대장을 받았다. 음악회 공연 시간이 되어가니 동네 어르신들과 순례객들이 자리 잡고 앉았다. 초대장을 건넸던 사회자가 바이올린 연주자와 첼로 연주자를 소개하고 손뼉을 크게 쳐 달라고 부탁했다. 음악회 초대장을 보니 7월부터 8월 두 달간 진행이 됐고 거의 마지막 공연을 보게 된 것이다. 악기는 연주 자체로 아름답고 마음을 하나로 이어주는 로맨스 같았다. 곡이 끝날 때마다 박수로 환호했다. 두 사람은 악보도 없이 아홉 곡을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 서로의 눈빛으로 건네며 맞추는 호흡은 마치 영혼으로부터 음악을 감지하는 숭고한 모습 같았다.
작은 마을이지만 음악회를 열어 순례자들에게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에 깊은 감사를 드렸다. 음악회의 감동으로 행복하고 가슴까지 벅찬 기쁨을 누렸다. 메세타 고원을 걸어온 힘들었던 하루였지만 전신 마사지를 받은 것처럼 피로가 말끔히 가시는 듯했다. 순례 중 멋진 문화공연을 보니 색다르고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 이곳에서의 행복한 시간이 메세타 고원을 걸었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며 은하수 별빛처럼 흐른다.
<사진설명(위로부터)>
_ 노란 화살표만 보이는 메세타 고원
_ 모나스페리오 성모 성당(좌) 메세타 고원 초입 산티아고 476km 지점(중) 광활한 메세타 고원(우)
_ 온타나스 마을 입구(좌) 온타나스 성당 미사 참례(중) 보아델라 델 까미노 마을 알베르게 입구 순례 조형물(우)
_ 보아딜라 델 까미노 음악회
-------------------------------------------
신미영 미카엘라는 2002년 세례받고, 2008년 레지오 마리애에 입단하여 Pr. 단장, Cu. 단장, Co. 부단장으로 활동하였다. 2019년 8월 남편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를 38일간 다녀오고, 2021년 ‘사진으로 보는 우리 부부 산티아고 순례길’, 2024년 ‘열정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출간했다. 현재는 플렛폼 브런치스토리 작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