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과 목수용 직각자: 사도 성 토마스
토마스는 ‘쌍둥이’라는 뜻의 아람어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같은 뜻의 그리스어 이름은 디디모스다. 토마스는 공관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12사도의 일원으로 간단히 소개되고, 요한 복음서에서 그 면모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되살리러 가겠노라고 하셨을 때, 토마스는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라고 말했다(요한 11,11-16).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는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라고 여쭘으로써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라는 가르침을 동료들과 함께 들었다(요한 14,1-6).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말을 동료들에게서 듣고는 자기 눈과 손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믿지 못하겠노라 말했다가 예수님께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말씀을 들었다(요한 20,24-29).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나타나셨을 때 토마스도 그 자리에 있었다(요한 21,1-14).
이후 교회의 전승을 통해 전해지는 토마스의 행적은 인도로 가서 목수로 활동하며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이때 토마스는 왕에게서 왕궁 신축 자금을 받아서 불쌍한 이들에게 모두 나눠주고는 왕궁이 하늘나라에 세워졌다고 선포했고,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풀려나서 인도 남서부의 해안 지대의 말라바르로 가서 7개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선포하다가 72년경 인도 남부의 밀라포르 근처에서 힌두교 사제가 휘두른 창에 찔려 순교했다.
토마스는 오늘날까지 그리스도교 신앙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수천만 인도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다. 그리고 사도의 직업과 관련되는 목수용 직각자와 사도를 죽음에 이르게 한 창은 토마스 사도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한편, 다른 전승에 따르면, 인도의 그리스도인들은 각별히 십자가를 공경했다. 이를 위해 6세기부터 인도의 교회들에서는 ‘성 토마스 십자가’라고 하는, 화려한 형태의 십자가가 널리 사용되었다. 예수님의 형상이 달리지 않은 이 십자가의 가로 막대의 양 끝은 꽃 모양으로 장식되는데, ‘기쁨 넘치는 즐거움’을 뜻하는 이 장식은 성 바오로 사도의 부활 신학을 나타낸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는 비둘기가 있는데, 이는 예수님의 부활에 참여한 성령의 역할을 나타낸다. 이 십자가를 받치는 연꽃 모양의 받침대는 그리스도교가 불교(부처)의 땅에 세워졌음을 나타내고, 십자가 아래의 3단 계단은 예수님의 처형 장소이자 은총을 흘려보내는 원천인 골고타(해골 터)를 가리킨다.
톱, 복음서와 물고기: 성 시몬 사도시몬 사도는 공관복음서와 사도행전의 12사도 명단에 들어 있지만(마태 10,4; 마르 3,18; 루카 6,15; 사도 1,13 참조), 간단히 ‘열혈당원’이라고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전승은 시몬이 갈릴래아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거나, 예수님께서 첫 기적을 행하신 카나의 혼인 잔치의 신랑이었다거나, 천사에게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처음으로 들은 목자들 중 한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좀 더 확실한 전승에 따르면, 시몬은 이집트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유다 타대오 사도와 함께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를 거쳐서 페르시아에서 선교했다. 시몬은 복음의 힘으로 사람을 낚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고 한다. 그래선지 이교의 관계자들과 논쟁을 벌이다가 그들의 신상을 훼손했고, 그로 말미암아 십자가형 또는 톱으로 몸을 세로로 자르는 형벌을 받아 순교했다.
후대의 화가들은 시몬을 그림으로 표현할 때 그의 순교 도구인 큰 톱을 화폭에 함께 담곤 했다. 그리고 사람 낚는 어부로서 탁월한 역량을 말해 주는 책(복음서)과 책 위의 물고기는 시몬 사도의 상징이 되었다.
돛단배, 책과 물고기, 몽둥이: 사도 타대오
12사도에는 2명의 유다가 있다. 그중의 한 유다는 성경에 타대오라는 이름으로도 나온다(마르 3,18; 마태 10,3 참조). 예수님 시대에는 한 개인이 유다식 이름과 그리스식 이름을 동시에 갖는 일이 흔했는데, 그런 맥락에서 타대오는 유다의 그리스식 이름이었을 것이고,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 이스카리옷과 구별하기 위해서 ‘유다 타대오’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듯하다.
신약성경에는 유다 사도와 관련된 기록 몇 가지가 있다. ‘야고보의 아들 유다’(루카 6,16; 사도 1,13 참조), ‘이스카리옷이 아닌 유다’(요한 14,22 참조), 예수님의 형제 타대오(마태 13,55; 마르 6,3 참조), ‘야고보의 동생인 유다’(유다 1,1) 등이다. 그래서 유다 타대오라는 인물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가톨릭교회는 이를 정리하여 사도 유다 타대오와 유다서의 저자이자 야고보의 동생인 유다가 같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전승은 유다 타대오와 시몬이 함께 배를 타고 여러 곳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선포했고, 페르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창에 찔리거나 도끼에 머리를 잘려서 또는 매질을 당해서 순교했다고 전한다. 한편,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전승은 유다 타대오가 아르메니아에서 바르톨로메오와 함께 순교했다고 전하며, 이 두 사도를 아르메니아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한다.
유다 타대오는 성화에서 몽둥이와 두루마리(또는 책)를 손에 들고 때로는 머리 위에 불꽃을 인 모습으로 표현된다. 몽둥이는 그가 매질을 당해 순교했음을 나타내고, 두루마리나 책은 그가 쓴 유다서를 가리키며, 머리 위의 불꽃은 성령 강림 때 그도 그 현장에 있었음을 나타낸다. 교회를 뜻하는 배는 또한 많은 지역을 찾아다니며 선교한 그의 상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