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초등학생이 된 영수가 엄마를 따라서 처음으로 성당을 갔답니다. 그리고 미사 중에 엄마와 함께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아버지…’하고 기도하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잠시 생각한 영수는 ‘하느님 할아버지’하고 기도했답니다. 어른들이 ‘아버지’라고 기도하니까 자기한테는 ‘할아버지’가 된다고 여긴 것이지요.
그랬더니 곁에 있던 영수 엄마가 “영수야, 사람들이 기도할 적에는 ‘하느님 아버지’라고 하는 거야. 누구나 그렇게 하는 거니까 너도 ‘하느님 아버지’라고 해야 해.”라고 가르쳐주었답니다. 그랬더니 영수가 물었대요. “그럼 하느님은 나한테도 아버지야?” 엄마는 빙그레 웃으며 답해 주었습니다. “물론이지.” 그랬더니 영수도 엄마를 보며 환하게 웃었대요. 그리고는 엄마 어깨를 툭툭 치면서 말했답니다. “알았어, 누나.”
언젠가 보았던 우스갯소리입니다. 재미나지요? 한 번 같이 웃었으면 해서 유머를 찾았습니다. 사실 신앙인들은 늘 ‘의미’를 추구하지만 가끔은 이런 ‘재미’도 좋은 것 같아요. 재미만을 추구해서는 안 되겠지만, 아예 없어서도 곤란하지요. 그래서 어떤 분은, 사람들을 모으고 뭔가를 하려면 ‘흥미, 재미, 의미’의 ‘삼미(三味)’가 모두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없으면 지속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삼미’도 좋지만, 저는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데에 중요한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는 것에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에도 행복이 함께 있다고 봅니다. 행복이 아니라, 의무감이나 사명감만으로 신앙을 지켜간다면 그 무게가 얼마나 무겁겠어요? 또 행복하지 않아서 별로 마음을 두지 않는다면 그 신앙이 얼마나 허무하겠습니까? 미사를 봉헌하는 것도, 기도를 바치는 것도, 성경을 읽거나 쓰고, 다른 이를 위해 희생하고 봉헌하는 것도 사실은 그 모든 것 안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제로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만나고 살아가는 때마다 되도록 행복을 찾으려 합니다. 그리고 가끔은 생각지도 못했던 행복을 만나기도 하지요.
신앙생활 틈틈이 행복의 거리들을 찾고 누려야
얼마 전에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사무실 여직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이야?”라고요. 그 직원은 미소 지으며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아, 행복하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거요.” 아직 신혼이라면 신혼이고, 그래서 이즈음이 많이 행복한 나날일 수도 있겠지만 첫 아이를 갖고 낳으며 양육하는 나날들이 마냥 좋은 순간만 있지는 않겠지요. 처음 겪는 일들에 고생도 많고, 놀랄 일도 많았을 겁니다. 그래도 그 모든 순간이 고생이나 어려움보다는 행복으로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겠지요.
얼핏 보기에 성모님의 삶은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성모님께서도 무척 행복하셨을 것 같습니다. 자녀를 보는 것, 함께 먹고, 자며, 삶의 여러 순간을 같이 보낸다는 것, 자녀를 위해 무언가를 희생하거나 참아내고 내어놓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행복 되니까요. 내가 아닌 자녀가 먹어도 행복하고, 내가 아닌 자녀가 누려도 행복하지요. 성모님의 삶에도 그런 행복이 곳곳에 자리했을 것이고, 예수님의 어머님이시자 첫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모님은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셨을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은 천상의 어머니로서 하느님 나라의 영복(永福)을 누리고 계시니 얼마나 행복하실까요! 그래서 저는 성모님께 공인된 여러 칭호들 외에, 개인적으로 이런 칭호를 드리고 싶어요. “행복하신 어머니!”
개인적으로 행복할 거리를 찾고자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신앙인의 삶에 행복할 거리가 참 많다고 느낍니다. 행복한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곁에서 행복한 레지오 단원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디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을까요? 거룩한 덕을 쌓는 것도 중요하고, 신앙인다운 헌신의 삶을 사는 것도 중요하며, 말씀을 묵상하고 미사성제에 경건히 참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틈틈이, 행복의 거리들을 찾고 누릴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