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호에서 흔히 ‘구원송’이라고 널리 알려진 파티마(Fatima)의 ‘구원을 비는 기도’ 혹은 ‘구원의 기도’가 묵주기도 안에 반드시 포함되어야만 하는가의 문제에 관하여 다루었다. 거기에서, 필자는 이와 관련해 현재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사실상 기도문 번역의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제 아래와 같은 비교를 통해 그 문제점이 잘 드러난다.
기도문의 현재 한글 번역: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포르투갈어 원문의 영어 직역: “O my Jesus, forgive us our sins, save us from the fires of hell, lead all souls (라틴어: omnes animas) to Heaven, especially those in most need of Thy mercy.”
필자의 수정 한글 번역 제안: “오, 저의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의 불에서 구하시고, 모든 영혼을 하늘나라로 이끄시면서 특히 당신 자비를 가장 필요로 하는 영혼들을 인도하소서.”
교본에서 이 기도문을 직접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한국 레지오 마리애 안에서 많은 질문이 제기되어 온 문제라서, 이번에는 이 기도문에 대한 깊은 신학적 성찰을 세 가지로 제시하도록 하겠다.
첫째로, 현재 번역된 기도문에서는 “연옥 영혼”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원문 그대로 “모든 영혼”으로 수정 번역되어야 한다. 여기서 ‘영혼’이 반드시 죽은 이들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의 공식 출간 저서 「죽음‧심판‧지옥‧천국: 가톨릭 교회의 사말교리」(2013)에서는 ‘영혼’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31쪽).
“구약 성경에서나 신약 성경에서나 ‘육신’, ‘영혼’ 또는 ‘영’이라는 표현들이 사용되지만, 이 단어들은 서로 분리될 수 있는 인간의 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표현들은 전체로서의 인간의 서로 다른 측면을 부각할 뿐이다. […] ‘영혼’은 본디 ‘숨결’, ‘목숨’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비물질적인 부분을 지칭하지만, 이것 또한 인간 전체를 지칭하여 그 인간이 감정과 갈망과 욕구를 지닌 존재임을 가리킨다(애가 3,24 참조). 더 나아가서 ‘영혼’은 영원한 생명을 포함한 생명 일반, 또는 그 생명을 지닌 존재인 인간을 지칭하기도 한다. 이렇게 ‘영혼’은 동물에게는 없고 인간에게만 드러나는 것으로서, 인격으로서의 한 인간, 생생하게 살아 있는 한 인간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레지오 마리애 기도문의 ‘까떼나’에 나오는, ‘마니피캇’(Magnificat)으로 널리 알려진 ‘마리아의 노래’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루카 1,46-47) 그러므로 기도문은 “연옥 영혼”이 아니라 “모든 영혼”(사실상 산 이와 죽은 이를 포함한 모든 인격)으로 수정 번역되어야 한다.
둘째로, 현재 번역문의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는 “모든 영혼을 하늘나라로 이끄시면서”로 수정되어야 한다. 이는 하느님께서 모든 이를 구원으로 인도해주시기를 간청하는 기도이다.
신약성경 공관복음서의 ‘참행복 선언’에서, 루카복음서(6,20-23)의 ‘하느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라는 표현 대신에, 마태오복음서(5,1-12)에서는 ‘하늘나라’(the kingdom of heaven 혹은 Heaven)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거룩한 하느님의 이름을 직접 발설하기를 꺼려했던 유대인들의 언어 관습에서 ‘하늘’은 ‘하느님’ 대신에 우회적으로 사용된 용어이다. 마태오복음서는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들을 주로 염두에 두고서 기록된 것이기에 ‘하늘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사실상 그 의미는 루카복음서에 나오는 ‘하느님의 나라’와 동일한 것이다.
그래서 모든 영혼을 ‘하늘나라’, 즉 ‘하느님의 나라’로 이끌어주시라고 기도하는 것은 곧 하느님께서 모든 이를 구원해주시리라고 간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의 번역문은 하느님께 연옥 영혼을 돌보심을 청하는 것으로만 범위를 한정하고 있지만, 원문의 표현은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산 이와 죽은 이를 포함한 모든 이를 구원으로 이끄심을 간구하는 것이다. 이는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the universal salvific will of God)라는 전통적인 신학적 명제와 관련된 것이다. 이 신학적 주제의 성서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1티모 2,4)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재위 1978-2005)의 첫 회칙 「인간의 구원자」 14항에서는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에 따른 보편적 구원 역사에 관하여 설명한다. “인간은 아무런 예외도 없이 누구나 그리스도께 구속을 받았기 때문이며,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아무런 예외도 없이 누구나, 심지어 본인이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당신에게 일치시키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시고 부활하셨으며 각자에게 또 누구에게나 빛과 힘을 주시어 인간이 자신의 드높은 소명에 응답할 수 있게 하셨다.” 이러한 보편적 인간 소명의 완성은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와 은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2000년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 12항은 성부 하느님께서 성자의 구원 은총을 성령을 통해 모든 이에게 베풀고자 하심을 강조한다.
“성령과 함께,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은 교회의 눈에 보이는 경계선들을 넘어 모든 인류에게 펼쳐진다.[…]성령께서는, 사람이 되신 말씀보다 역사적으로 먼저 살았던 사람들과 그분께서 역사 안에 오신 뒤에 사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단 한 가지 목표로 하느님께 부름 받은 모든 민족의 삶 안에 사람이 되어 계시는 성자의 구원 효력을 현실화하신다.[…]하느님 아들의 강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신비 안에서 이루어지고, 성령의 협력으로 실현되었으며, 인류 전체와 우주 전체에 그 구원 가치를 펼치시는, 한 분이시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구원 경륜만이 있을 뿐이다.”
셋째, 현재 번역문의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는 “특히 당신 자비를 가장 필요로 하는 영혼들을 인도하소서”로 수정되어야 한다. 사실, 하느님의 자비를 너무도 필요로 하여 간절히 청한다는 것은 산 이와 죽은 이를 포함해 우리 각자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일이다. 누가 하느님의 자비를 가장 필요로 하는가는 객관적으로 절대적 수치를 통해 규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며, 이는 매우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의 표현이다. 누가 어떻게 고통과 은총을 수치화해서 점수를 매기고 객관적 순위를 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사실상 하느님의 깊은 자비를 필요로 하는 모든 영혼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문과 달리, 굳이 연옥의 “가장 버림받은 영혼”이라고 한정적으로 의역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정당하지 않다.
2025년 정기 희년의 ‘대사’를 자기 자신을 위해서 받거나, 혹은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해 양도할 수 있다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우선 기본적인 의미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마태 16,26)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목숨”이란 우리의 영적인 생명, 곧 구원을 의미한다.
나아가, 내가 기억하는(세상을 떠난) 사랑했던 분의 구원을 위해서, 혹은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연옥 영혼을 위해서 우리가 교회를 통해 받는 하느님의 은총인 ‘대사’를 양도할 수도 있다. 이처럼, 기도문 원문의 “특히 당신 자비를 가장 필요로 하는 영혼들”은 하느님 자비의 신학의 관점에서 폭넓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이 대목을 “가장 버림받은 영혼”이라고 부정확하게 번역한 것은 아마도 연옥에 대한 과거의 부정적 관점 때문일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전의 시대에는 연옥을 거의 ‘반(半)지옥’으로 보았고, 연옥불은 곧 형벌의 불이라고 간주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감옥의 ‘옥’(獄)자가 들어간 ‘연옥’(煉獄)이란 번역어 자체가 사실상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많다. 이는 정확한 번역이 아니다. ‘연옥’에 해당하는 원문 라틴어(Purgatorium) 자체가 글자 그대로 ‘정화’의 과정을 의미하기에, 연옥은 형벌의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희망과 은총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세상을 떠난 이가 하느님을 온전히 만나기 위해 정화되고 아름답게 변화되어가는 희망의 과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흔히 ‘연옥 불’이라고 표현되기도 하는, 정화와 성장을 위한 아픔과 고통이 수반될 수도 있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축복의 시간이고 은총의 시간이다.
이처럼 과거의 통념과는 다른 새로운 맥락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재위 2005-2013)는 2007년 회칙 「희망으로 구원된 우리」(Spe Salvi)를 통해, 우리의 죽음 이후 심판과 연옥(정화 과정)에 관하여 긍정적 측면에서 설명한다.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최종적인 심판 행위입니다. 그분 눈길 앞에서 모든 거짓은 녹아 버립니다. 그분과 이러한 만남은 우리를 태우고 변화시키고 자유롭게 함으로써 참된 우리 자신이 될 수 있게 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쌓아 올리는 모든 것은 속이 비어 있는 지푸라기, 텅 빈 허세로 드러나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만남이 주는 아픔 가운데에서 더럽고 병든 우리 삶을 분명히 깨닫게 될 때 거기에 구원이 있습니다. ‘불을 통하여’ 분명 고통스러운 변화를 거치면서 우리는 그분의 눈길, 그분 마음이 어루만져 주시는 치유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축복받은 아픔입니다. 그분 사랑의 거룩한 힘이 불길처럼 우리를 뚫고 지나가 온전한 우리 자신, 그리하여 온전한 하느님 사랑이 될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 심판 때에 우리는 세상과 우리 안의 모든 악을 이기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커다란 힘을 체험하고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사랑의 아픔은 우리 구원이며 우리 기쁨이 됩니다.”(47항)
나아가, 베네딕토 16세는 죽음 이후의 세계, 즉 연옥에서의 시간에 대해서 현재의 세상에서와같이 일직선적인 양적, 물리적 시간관을 적용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하느님의 자비가 이루어지는 질적인 시간이며 신비로운 시간이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는 이러한 변화를 위한 불타는 ‘기간’(tempus)을 이 세상의 시간의 잣대로 계산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만남에서 변화의 ‘순간’(momentum)은 지상의 시간 계산법을 벗어납니다. 그것은 마음의 시간이며,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도록 ‘건너가는’ 시간입니다.”(47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