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영성 살기
자기 비움과 희망
이진영 세실리아 수녀 사랑의씨튼수녀회

하느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요한 3,16) 깊은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여기에서 하느님의 자기 비움(Kenosis)이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자기 비움의 역사는 예수님의 자기 비움을 거쳐 우리의 자기 비움으로 생명을 담아냅니다.
138억 년 전의 우주의 역사가 우리 몸 안에 흐르는 것을 느끼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하느님의 자기 비움(kenosis)과 예수님의 자기 비움을 통해, 나의 자기 비움은 어디에 와 있는가를 살펴봅니다. 자아를 비우는 것은 철저한 관계적 삶을 통해 이뤄집니다. 그것은 내가 하느님과 이웃으로 채워지기 위한 준비의 과정입니다.
예수님의 자기 비움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 의존된 모든 피조물과의 안녕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분은 죽음과 새로운 생명의 춤, 희생과 쇄신, 상호 호혜성을 통해 모두가 능력을 받게 합니다.(샐리맥페이크 지음, 김준우 옮김 ‘불타는 세상 속의 희망 그리스도’ 참조) 기후 비상사태인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함께하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예언자적인 소명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령은 자유로움을 향하여 움직입니다. 오늘날의 우리가 희망을 품는 것은 이 땅에 예수님의 자기 비움을 따라가는 수많은 존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앞이 명확히 보이지 않아도, 죽을지 알면서도, 절망 중에도, 희망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을 예상하며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향해 가시지 않았던 것처럼….
‘성령 안에서 산다는 것’은 모든 창조물에 대한 새로운 존중, 즉 신앙 감각을 키우는 일이고 생태적 감수성을 키우는 일입니다. 이것은 성공적인 것을 넘어서, 보다 감동적인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완의 존재들이 함께하면서 온전한 통합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여의 샛강 공원에 생태 탐방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1997년에 만들어진 생태공원으로 누구나 누리는 작은 곤충부터 수달까지, 버드나무와 참 느릅나무까지 두루 어울려 살아가는 공원입니다. 그곳을 방문했을 때 쓰러진 나무들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 나무가 쓰러지면 치워서 깔끔하게 해야 한다는 관념이 제 안에 있었던 것이지요. 그때 공원 활동가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비바람을 맞아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죽게 되면 그곳에는 수억만의 생물이 살아 숨 쉬는 새로운 공간이 된다.’라고요. 
그때 비로소 자본주의에 절여져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살아가는 것은 죽은 것에 기대어 생명을 얻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쉽사리 없는 것처럼 취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 소중한 것들은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인데, 일상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거의 잊고 삽니다. 육안(肉眼)으로 보이지 않지만, 우리에게 생명이 되며 에너지가 되어 흐르는 것들을 떠올려봅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하느님의 현존을 호흡으로 느끼며 그분과 일치하며 사는 것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지나온 역사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쓰십니다. 나의 오늘은 또 다른 미래를 선물합니다. 충실한 오늘을 희망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부활을 맞이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