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선조들과 한국천주교회
한국천주교회는 103위 순교성인, 124위의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그리고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조선 왕조 치하 순교 133위인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근-현대 신앙의 증인 81위인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 그리고 베네딕토회 덕원의 순교자 38위인 신상원 보니파시오와 김치호 베네딕토와 동료 순교자들 등을 신앙의 선조들이라 공경하고 있고, 현재 교회법에 따라 시복과 시성 등의 절차를 준비 중입니다.
‘시복’(諡福)이란 단어는 ‘beatus’, 즉 ‘축복받은’, ‘은혜받은’, ‘죽어서 천국에 있는’이라는 뜻과 관련되고, 하느님 은총으로 복되게 된 이들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이들은 복음을 믿고 따른 사람들, 혹은 ‘복자’(福者)라고 합니다. 시성(諡聖)은 복자가 된 하느님의 종을 공적인 전례를 통해 성인들 명부에 올리는 교황의 최종적 행위를 말합니다. 이는 모든 신자가 신앙의 모델로 삼아 따라야 한다는 권고이고, 하느님 곁에서 성인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할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시성된 하느님의 종은 모든 보편교회가 공경을 드려야 하고, 시복된 분은 시성과 달리 보편교회 전체가 아니라, 일정한 지역이나 공동체에 한정되어 공경합니다.
시복이나 시성에 추천될 만한 사람의 조건으로 가톨릭교회는 “삶과 죽음 이후에도, 모든 그리스도교 덕행을 영웅적으로 실천하여 성덕의 명성을 누리거나, 그리스도를 더 가까이 따르고 목숨을 바치는 순교 행위로써 순교의 명성을 누리는 가톨릭 신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현재 한국천주교회는 시성과 시복을 추친 중이고, 특히 최근까지도 한국천주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시복을 추진 중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을 시복하고자 하는 우리 교회의 노력에는 어떤 의의가 있을까요?
김수환 추기경(1922년 5월 8일- 2009년 2월 16일)은 일제시대와 해방, 6.25 전쟁과 군부독재 시대, 민주화운동과 문민정부 수립 등 지난 세기 우리 사회의 고통과 희망이 점철되었던 시대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입니다. 혼란과 격동의 시대를 거치며 힘든 삶의 여정을 거쳐야 했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이 순교자의 후손임을 자각했고, 역사와 인간이라는 주제를 언제나 신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고 통찰하였습니다. 김 추기경은 그리스도를 닮은 그리스도인으로 살고자 했고, 그리스도처럼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마태 11,29) 사람으로 살고자 노력했으며, 오직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품고 살았습니다.
‘작고 가난한 사람’의 삶과 영성
김 추기경에게 ‘가난’이라는 단어는 삶과 신앙에 있어 핵심적 주제입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고, 동시에 가난했지만 사람의 도리가 무엇인지, 신앙이 무엇인지 잘 배웠는데, 특히 어머니를 통해 잘 배웠다고 회상했습니다. 신앙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가난하고 겸손한 삶을 묵상함으로써 그리스도교의 가장 깊은 신비를 깨달았습니다. 소신학교 시절 여러 성인 성녀에 관한 ‘성인전’을 탐독하였고, 이 중에서 특히 소화 데레사 성녀의 영성에 깊이 감화되었다고 합니다. 성녀의 삶과 기도를 통해 하느님 때문에 가난하고 보잘것없이 사는 삶이 신앙인의 가장 위대한 삶임을 배웠다고 회상했습니다.
사제 생활의 시작 역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이었는데, 이 역시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깊이 체험하는 시간이었다고 술회하였습니다. 여러 대담이나 인터뷰에서 성직자 생활 52년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바로 그때, 가난한 신자들과 울고 웃었던 본당 신부 시절이라고 김 추기경은 회고했습니다. 이 체험 역시 그가 이후 주교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들의 권리를 대변하며 살아가는 데 밑거름이 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자건 비신자건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김 추기경의 모습은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그들과 미사를 봉헌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슬퍼 우는 사람을 수없이 찾아다녔지만, 김 추기경은 그들과 삶을 좀 더 함께하지 못했음을 늘 부끄럽게 고백하였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가난이 지닌 그리스도교적 의미는 온전히 하느님을 향하는 삶, 하느님께 의지하는 삶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예수께서는 8가지 참 행복에 대해 가르쳐주시면서(마태 5,3-12; 루카 6,20-23 참조), 가장 먼저 ‘가난한 사람’의 행복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가난은 신앙의 중요한 전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 즉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하고 신뢰하며 사셨던 분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삶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모습이고,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입니다. 이는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남은 자들’, 즉 참된 하느님 백성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김 추기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에 따라 살고자 했기에 인간에 대한 관심을 지니고 살았고,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는 신앙을 통해 하느님 사랑에 대한 깊은 묵상과 성찰, 그리고 본인 삶의 체험을 통해 가능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처럼 가난한 자 되고 싶다. 가난한 자 중에서 가난한 자, 모든 사람의 종이 될 수 있을 만큼 가난한 자 …” 김 추기경에게 ‘가난’은 실제 물질적 가난은 물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표현이자, 모든 어려움을 견디게 해 주는 희망의 다른 표현이었으며,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었습니다”(2코린 8,9).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가난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가난한 마음은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자 기준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가난한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겸손하게 살아야 하고, 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언제나 가난한 삶을 지향했던 김 추기경의 삶과 영성은 오직 ‘그리스도를 닮기’(imitatio Christi) 위한 노력과 헌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