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어머니를 우리의 어머니로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예수님께서 구원 사업을 이루신 자리였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온전히 전해지고, 모든 이의 죄가 용서받고, 하느님의 진리가 빛나며, 어둠이 밝혀지고, 사탄이 패배하며, 세상이 하느님의 생명으로 새롭게 창조되는 자리가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의 진리가 드러났고 우리 모두에게 전해졌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분, 어느 누구도 위협하거나 벌하지 않으시는 분, 다만 모든 이의 구원을 바라시는 분이라는 진리가 십자가 위에서 드러났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 홀로 하느님이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영원 안에서부터 당신 자신을 비우시고 내어주시며 당신과 같으신 아드님을 낳으신 분,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당신의 사랑 전부를 전해주신 분이라는 진리가 나타났습니다. 하느님 아드님께서는 하느님과 같은 분이시지만 세상 위에 군림하지 않으시고 당신 자신을 낮추시고 비우시어 사람이 되신 분, 아드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 순종하시고 인류를 끝까지 사랑하시며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으셨고, 당신의 자유로운 순종과 사랑으로 우리 모두를 구원하신 분이라는 진리가 십자가 위에서 나타났습니다.
아버지와 아드님의 사랑의 영, 한처음 심연 위를 감돌며 창조 사업을 이루셨고, 생명의 숨으로 사람을 생명체로 만드셨고, 거센 샛바람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군대에서 구하신 분, 성령 하느님께서는 창조와 생명과 구원과 사랑의 영이라는 진리가 십자가 위에서 드러났습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십자가 죽음으로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보여주시고 전해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수용한 마리아는 계약의 여인
하느님의 참 사랑이 드러나고 전해지는 자리, 하느님의 사랑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인간 편의 사랑이 요청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사랑을 전하시지만, 아무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수용하지 않았다면 하느님의 사랑은 세상 안에서 이루어지지 못했을 겁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 마리아를 “여인이시여”(요한 19,26) 하고 부르셨습니다. 왜 어머니를 “여인”이라 하셨을까요?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을 주님과 혼인한 “여인”으로 여겼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백성이기에 호세아 예언자 이래 이스라엘 백성은 “여인”으로 불렸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마리아는 “여인”으로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신 카나의 혼인 잔치,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그분께 “포도주가 없구나” 하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때도 어머니 마리아를 “여인이시여”(요한 2,4) 하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이루실 새 계약을 생각하시며 어머니 마리아를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여인”으로 여기셨던 겁니다. 성모님은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하고 사람들에게 이르셨습니다. 주님의 계약을 충실히 받아들이고 응답하라는 권고였습니다. 시나이 계약이 맺어지던 그때, “주님께서 이르신 모든 것을 우리가 실천하겠습니다.”(탈출 19,8; 24,3.7) 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세 번 다짐한 것과 같았습니다.
계약이 맺어지려면 백성들 편의 수용과 응답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아래 계신 당신 어머니를 바라보시며 주님의 계약에 충실한 백성을 생각하셨습니다. 마리아는 계약의 여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하느님의 생명을,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전하셨고, 마리아는 십자가 아래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생명을 오롯이 받아들이며 응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어머니를 우리의 어머니로 주시며,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와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창세 1,20)가 되었듯,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받아들인 하느님의 생명을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영적 어머니의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는 마리아를 “자기 집에”(eis tà ìdia, 요한 19,27) 모셨습니다. 한국어 성경은 “타 이디아”(tà ìdia, 자기 것들)를 “자기 집”으로 번역했지만,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주신 영적 재산, 신앙의 보화를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신앙을 주셨고, 은총을 주셨고, 말씀을 주셨고, 성사를 주셨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평화를 주셨고,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와 같이 당신 어머니를 우리의 어머니로 주셨고,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주님의 어머니를 자신의 어머니로 받아들였습니다.
탄생하는 교회에 함께하신 어머니 마리아
사도행전 1장 12-14절은 탄생하는 교회에 함께 계신 어머니 마리아의 모습을 전해줍니다. “그들은 모두,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북돋우며 격려하셨습니다. 어떻게 침묵해야 할지, 어떻게 성령 하느님을 깨어 기다리고 맞이할지 알지 못하던 제자들을 어머니의 마음으로 돌보며 기도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당신께서 받아들인 하느님의 사랑을 제자들도 받아들이도록 이끌어 주신 겁니다.
제자들은 어머니 마리아의 도움을 받으며 성령 하느님을 맞이하였고, 어머니 마리아 역시 성령 하느님을 새롭게 맞이하며, “곰곰이 생각하[고]”(루카 1,29), “마음속에 간직하[던]”(루카 2,19) 예수님의 신비를 알아듣기 시작했습니다. 동정녀로서 어떻게 하느님의 아드님을 자신의 아들로 잉태하고 낳을 수 있었는지, 그 신비를 비로소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소년 예수님의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 하신 도저히 알아듣지 못한 말씀도 비로소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요한 16,13) 하신 주님의 말씀은 마리아에게서 가장 먼저 이루어졌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의 신비를 제자들에게 전하며 그들이 하느님의 진리로 거룩해지도록 이끄셨습니다. 탄생하는 교회,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께서 제자들이 성령을 맞이하도록 북돋워 주셨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응답하며 하느님의 생명으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도우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모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주님의 사랑과 진리를 오롯이 받아들이도록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당신의 어머니를 우리의 어머니로 주신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