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자형 십자가-성 안드레아 사도
안드레아 사도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가까운 벳사이다의 유다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요나였고, 시몬 베드로와는 형제간이었다. 안드레아라는 이름은 그리스어인데, 이는 당시 갈릴래아 호수 일대에 이미 그리스어와 그리스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음을, 그리고 사도의 가족들도 문화적으로 개방되어 있었음을 말해 준다.
안드레아와 베드로 형제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였다. 예수님은 공생활 초기에 갈릴래아 호수에서 이 형제들을 만나셨고,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로 부르셨다.
본래 요한 세례자의 제자였던 안드레아는 요한 세례자가 예수님을 두고 한 말을 듣고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동료 제자와 함께 예수님을 찾아가 하루를 지냈는데, 이때 예수님이야말로 메시아이심을 알아보았고, 그래서 베드로에게도 그분을 소개했다(요한 1,35-42 참조). 이런 연유로 안드레아는 동방 정교회에서 ‘프로토클레토스’(‘첫 번째로 부름 받은 사람’이라는 뜻)라고 일컬어진다,
성경에서 안드레아는 몇몇 중요한 순간에 등장한다. 예수님께서 빵이 많아지게 하는 기적을 행하셨을 때는 한 아이가 가진 빵과 물고기에 대해 말씀드렸고(요한 6,6 참조), 그리스인들이 예수님 뵙고자 찾아왔을 때는 이 요청을 받은 필립보를 도왔다(요한 12,20-23 참조).
안드레아는 60년경에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다고 전해 오는데, 이때 안드레아는 예수님과 같은 모양으로 죽을 만한 자격이 없다면서 X자 모양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자 했다. 이후 X자형 십자가는 성 안드레아 십자가라 불리게 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14세기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전쟁을 벌였을 때 스코틀랜드 왕의 꿈에 안드레아가 나타나 승리를 약속했다고 한다. 이윽고 전쟁이 시작되자 하늘에 X자 모양의 십자가가 나타났고, 이를 본 스코틀랜드 군사들은 힘을 내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때부터 안드레아 사도는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박피용 칼 세 자루-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바르톨로메오 사도에 대한 기록은 세 권의 공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나온다. 그리고 요한복음서에는 나타나엘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학자들은 이 두 사람이 동일한 인물이라고 본다(요한 1,45-51; 21,2 참조).
바르톨로메오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 인도로 가서 선교했다고 한다. 또한 메소포타미아와 파르티아에서, 리카오니아와 에티오피아에서, 또 인도에서 선교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동료 사도인 유다 타데오와 함께 아르메니아에서도 복음을 전한 것으로 전해 온다. 그 결과, 아르메니아 왕국은 4세기 초에 역사상 최초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나라가 되었다. 이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이 두 사람을 수호성인으로 공경하게 되었고, 특히 바르톨로메오는 이 교회의 제2대 총대주교(Catholicos-Patriarch)로 기려진다.
그리스도교 전승은 바르톨로메오 사도가 “납치되었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매질을 당했으며, 바다에 던져져 익사했다.”라고 전한다. 한편, 다른 이야기는 바르톨로메오가 아르메니아의 한 도시에서 그곳의 왕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고, 이에 격분한 왕의 동생이 사도에게 온갖 고문을 가하고 끝내는 살아 있는 채로 살 거죽을 벗겨내는 형벌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과 연관되어 바르톨로메오는 세 자루의 박피(剝皮)용 칼로 상징된다.
가리비 조개-성 대 야고보 사도
대 야고보 사도 역시 갈릴래아 호수 인근의 유다인 어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야고보 사도의 부모는 제베대오와 살로메였는데, 살로메는 마리아의 자매, 곧 예수님의 이모였다. 그리고 형제인 요한 또한 예수님의 사도였다. 예수님은 이 형제를 ‘보아네르게스’(‘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라고 부르셨다(마르 3,17 참조). 사도 중에는 야고보가 2명인데, 편의상 ‘대(大) 야고보’와 ‘소(小) 야고보’라고 구별해서 부른다.베드로와 마찬가지로 갈릴래아 호수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예수님의 사도로서 종종 특별하고 중요한 일들에 함께했다. 야이로의 딸을 되살리실 때(마태 9,18-25 참조), 영광스러운 모습을 드러내 보이실 때(마태 17,1-9 참조), 수난을 앞두고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마태 26,36-46 참조), 예수님은 이 세 사람과 함께하셨다. 두 형제는(또는 그 어머니는)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시면 자기들이 그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주십사고 청한 적이 있다(마르 10,35-41; 마태 20-24 참조). 야고보는 헤로데 왕의 칼에 의해 12사도 중 가장 먼저 순교했다(사도 12,2 참조).
이에 야고보의 제자들은 은밀히 그 유해를 배에 실어 지중해에 띄웠고, 이 배는 지중해를 가로질러 스페인의 어느 해안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배는 아주 커다란 가리비 조개의 껍데기로 만든 것이었다고 한다(또는 스페인 해안에 도착했을 때 이 배는 온통 가리비 조개로 뒤덮여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가리비는 야고보 사도를 가리키는 표상이 되었다.
한편, 사도의 유해는 스페인 내륙의 어느 곳에 안장되었다.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던 그 장소는 오랜 세월이 흘러 9세기 초에야 발견되었다. 한 은수자가 갈리시아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마침내 사도의 무덤을 발견한 것이다. 이때부터 야고보 사도의 묘지로 가는 길들은 인기 있는 순례길이 되었다. 그리고 순례용 물품인 지팡이, 모자, 조롱박 물통은 성인을 나타내는 표상이 되었다. 그 밖에 사도의 죽음과 관련된 칼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성 야고보 십자가 또한 사도의 표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