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 속 성인 읽기
사도들의 상징(1)
이석규 베드로 자유기고가

X자형 십자가-성 안드레아 사도 
안드레아 사도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가까운 벳사이다의 유다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요나였고, 시몬 베드로와는 형제간이었다. 안드레아라는 이름은 그리스어인데, 이는 당시 갈릴래아 호수 20250324154221_671209856.jpg일대에 이미 그리스어와 그리스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음을, 그리고 사도의 가족들도 문화적으로 개방되어 있었음을 말해 준다.
안드레아와 베드로 형제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였다. 예수님은 공생활 초기에 갈릴래아 호수에서 이 형제들을 만나셨고,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로 부르셨다.
본래 요한 세례자의 제자였던 안드레아는 요한 세례자가 예수님을 두고 한 말을 듣고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동료 제자와 함께 예수님을 찾아가 하루를 지냈는데, 이때 예수님이야말로 메시아이심을 알아보았고, 그래서 베드로에게도 그분을 소개했다(요한 1,35-42 참조). 이런 연유로 안드레아는 동방 정교회에서 ‘프로토클레토스’(‘첫 번째로 부름 받은 사람’이라는 뜻)라고 일컬어진다,
성경에서 안드레아는 몇몇 중요한 순간에 등장한다. 예수님께서 빵이 많아지게 하는 기적을 행하셨을 때는 한 아이가 가진 빵과 물고기에 대해 말씀드렸고(요한 6,6 참조), 그리스인들이 예수님 뵙고자 찾아왔을 때는 이 요청을 받은 필립보를 도왔다(요한 12,20-23 참조).
안드레아는 60년경에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다고 전해 오는데, 이때 안드레아는 예수님과 같은 모양으로 죽을 만한 자격이 없다면서 X자 모양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자 했다. 이후 X자형 십자가는 성 안드레아 십자가라 불리게 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14세기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전쟁을 벌였을 때 스코틀랜드 왕의 꿈에 안드레아가 나타나 승리를 약속했다고 한다. 이윽고 전쟁이 시작되자 하늘에 X자 모양의 십자가가 나타났고, 이를 본 스코틀랜드 군사들은 힘을 내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때부터 안드레아 사도는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박피용 칼 세 자루-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바르톨로메오 사도에 대한 기록은 세 권의 공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나온다. 그리고 요한복음서에는 나타나엘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학자들은 이 두 사람이 동일한 인물이라고 본다(요한 1,45-51;20250324154221_2054218183.jpg 21,2 참조).
바르톨로메오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 인도로 가서 선교했다고 한다. 또한 메소포타미아와 파르티아에서, 리카오니아와 에티오피아에서, 또 인도에서 선교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동료 사도인 유다 타데오와 함께 아르메니아에서도 복음을 전한 것으로 전해 온다. 그 결과, 아르메니아 왕국은 4세기 초에 역사상 최초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나라가 되었다. 이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이 두 사람을 ​​수호성인으로 공경하게 되었고, 특히 바르톨로메오는 이 교회의 ​​제2대 총대주교(Catholicos-Patriarch)로 기려진다.
그리스도교 전승은 바르톨로메오 사도가 “납치되었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매질을 당했으며, 바다에 던져져 익사했다.”라고 전한다. 한편, 다른 이야기는 바르톨로메오가 아르메니아의 한 도시에서 그곳의 왕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고, 이에 격분한 왕의 동생이 사도에게 온갖 고문을 가하고 끝내는 살아 있는 채로 살 거죽을 벗겨내는 형벌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과 연관되어 바르톨로메오는 세 자루의 박피(剝皮)용 칼로 상징된다.

가리비 조개-성 대 야고보 사도
대 야고보 사도 역시 갈릴래아 호수 인근의 유다인 어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야고보 사도의 부모는 제베대오와 살로메였는데, 살로메는 마리아의 자매, 곧 예수님의 이모였다. 그리고 형제인 요한 또한 예수님의 사도였다. 예수님은 이 형제를 ‘보아네르게스’(‘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라고 부르셨다(마르 3,17 참조). 사도 중에는 야고보가 2명인데, 편의상 ‘대(大) 야고보’와 ‘소(小) 야고보’라고 구별해서 부른다.
20250324154221_1698483485.jpg베드로와 마찬가지로 갈릴래아 호수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예수님의 사도로서 종종 특별하고 중요한 일들에 함께했다. 야이로의 딸을 되살리실 때(마태 9,18-25 참조), 영광스러운 모습을 드러내 보이실 때(마태 17,1-9 참조), 수난을 앞두고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마태 26,36-46 참조), 예수님은 이 세 사람과 함께하셨다. 두 형제는(또는 그 어머니는)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시면 자기들이 그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주십사고 청한 적이 있다(마르 10,35-41; 마태 20-24 참조). 야고보는 헤로데 왕의 칼에 의해 12사도 중 가장 먼저 순교했다(사도 12,2 참조).
이에 야고보의 제자들은 은밀히 그 유해를 배에 실어 지중해에 띄웠고, 이 배는 지중해를 가로질러 스페인의 어느 해안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배는 아주 커다란 가리비 조개의 껍데기로 만든 것이었다고 한다(또는 스페인 해안에 도착했을 때 이 배는 온통 가리비 조개로 뒤덮여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가리비는 야고보 사도를 가리키는 표상이 되었다.
한편, 사도의 유해는 스페인 내륙의 어느 곳에 안장되었다.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던 그 장소는 오랜 세월이 흘러 9세기 초에야 발견되었다. 한 은수자가 갈리시아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마침내 사도의 무덤을 발견한 것이다. 이때부터 야고보 사도의 묘지로 가는 길들은 인기 있는 순례길이 되었다. 그리고 순례용 물품인 지팡이, 모자, 조롱박 물통은 성인을 나타내는 표상이 되었다. 그 밖에 사도의 죽음과 관련된 칼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성 야고보 십자가 또한 사도의 표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