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맘껏 기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하기 이전에 먼저 기쁨의 때를 기억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언제, 어떤 상황 속에서 기뻐하고 있는가?’ 이런 기억을 떠올리려 할 때면 금방 ‘이때야!’하며 생각나지 않습니다. 기쁘고 행복했던 순간보다는 오히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순간, 상처받고 누군가를 증오하고 미워했던 순간이 머릿속에 먼저 자리를 잡습니다. 기쁨은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리에 순간 머물렀다가 사라지곤 합니다. 어쩌면 기쁨은 느끼는 것이 아니라 찾고 발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탈출이라는 엄청난 구원의 사건을 체험합니다. 하지만 광야에서 목마르고 배고픔을 느끼자 그 기쁨은 걱정과 불평으로 변화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는 엘림을 떠나, 엘림과 시나이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다. 그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둘째 달 보름이 되는 날이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가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하였다. 이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말하였다.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탈출 16,1-3)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함께 이집트에서 나와 갈대 바다를 건너며 엄청난 환호와 기쁨을 맞이합니다. 이제 그들에게 어떤 어려움과 고난도 없이 하느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을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기쁨의 노래(탈출 15,1-19)를 부릅니다. 하지만 그 기쁨과 행복도 그들에게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눈앞에 놓여 있는 배고픔과 갈증 때문에 말입니다. 그런 불평을 들으시고 주님께서는 다시 그들에게 기쁨을 더해 주십니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이르셨다. “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에게 이렇게 일러라. “너희가 저녁 어스름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양식을 배불리 먹을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내가 주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날 저녁에 메추라기 떼가 날아와 진영을 덮었다. 그리고 아침에는 진영 둘레에 이슬이 내렸다. 이슬이 걷힌 뒤에 보니 잘기가 땅에 내린 서리처럼 잔 알갱이들이 광야 위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이게 무엇이냐?” 하고 서로 물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탈출 16,11-16)
하지만 또다시 이스라엘 백성은 배고픔과 돌봄의 상징이었던 이 만나를 두고 기뻐하지 못합니다. 시나이 광야를 떠나 다시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 그들은 다시 하느님께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그들 가운데 섞여 있던 어중이떠중이들이 탐욕을 부리자, 이스라엘 자손들까지 또다시 울며 말하였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줄까? 우리가 이집트 땅에서 공짜로 먹던 생선이며,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생각나는구나. 이제 우리 기운은 떨어지는데, 보이는 것은 만나뿐, 아무것도 없구나.” … 밤에 이슬이 진영 위로 내리면, 만나도 함께 내리곤 하였다.”(민수 11,4-9)
이스라엘 백성은 눈앞에 보인 만나만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행복해합니다. 당장 지금의 배고픔과 고통을 해결해주는 무엇인가에 기뻐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그 만나 때문에 불평을 늘어놓고, 삶에 대한 의미를 포기해버릴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진정한 기쁨을 찾기 위해 만나에 집착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순간 느껴지는 쉼과 안정, 고통과 아픔이 해소되는 평온함, 세상과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느껴지는 즐거움은 기쁨도 주지만 그 때문에 우리를 더욱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습니다.
촉촉한 이슬의 비옥함이 바로 기쁨의 원천이 되어야
우리는 오늘의 기쁨을 만끽하기 위해 ‘만나’가 아닌 ‘이슬’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슬은 힘들고 어려워하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보내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며 은총의 상징입니다. 마르고 죽은 땅에 하느님께서 이슬을 내리시어 촉촉한 대지를 만드시고, 그 비옥함 안에서 만나가 생겨납니다. 하느님께서 땅 위에 이슬을 내리시지 않으면 그 만나는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태양이 떠올라 강한 햇볕이 비치며 이내 그 이슬은 사라지고 맙니다. 오직 만나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기쁨의 대상인 만나만을 발견하고 배불리 먹고 자신의 배만 채웠다는 기쁨이 있을 뿐 이슬의 존재도, 그 이슬이 가져다주는 그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이슬을 내려 주신 하느님의 선물도 깨닫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발견하는 것, 촉촉한 이슬의 비옥함이 바로 기쁨의 원천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이슬의 존재를 찾고 발견할 때 우리는 만나가 없더라도, 만나만 먹더라도, 만나가 부족하더라도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기쁨을 희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야만 기뻐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기쁨을 희망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내려 주시는 촉촉한 이슬의 비옥함을 발견하고 감사할 수 있는 시간들을 깨달아 갔으면 합니다. 하느님의 이슬로 우리 각자의 삶이 촉촉해지길 바라며, 그래서 오늘이 기쁨으로 가득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