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김수환 추기경
나는 김수환 추기경님과
같이 살고 있다(2)
고정수 프란치스코(조각가) 수원교구 퇴촌성당

전시 기간이 거의 끝날 무렵 미국에서 돌아오신 추기경님께서 ‘예술의전당’에 오셨을 때의 일이다. 마침 유치원생들이 관람하고 있을 때와 겹쳐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추기경님을 알아보고 환호성을 지르며 작품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던 일도 확연한 기억으로 남아 있으며 그 기사는 평화신문에 실리기도 하였다. 추기경님께서 장익 주교님에게 “내 별명이 뭔지 알아? 소품이야, 무대 소품!”이라고 20250324141421_2058953250.jpg익살스러운 유머로 말씀하셨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건 추기경님께서 항상 대중들에게 둘러싸여 밝은 모습으로 사진 촬영에 응해야 하는 피곤함을 일컬어 피력한 말씀이시겠지만, 전시장에서 나와 내 아내가 관찰한 아이들을 맞이한 추기경님의 표정은 아주 밝아 보이셨다. 평소 아이들을 유난히 좋아하셨던 추기경님은 한적한 날이 오면 지하철을 타고 어린이 대공원에 가서 새하얀 솜사탕을 사 먹을 거라는 말씀을 하실 정도로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셨다.
내가 추기경님을 작품으로 제작한 해인 1998년은 추기경님께서 76세가 되시던 해로, 서울대교구장직에서 물러나신 기념비적인 해이다. 그 무렵 추기경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하느님께 한 발짝 더 가까이 가 있다. 나는 이제 해거름에 와 있다. 하루에 빗대면 석양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읽고 나서 나는 당시 그런 술회를 하신 깊으신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가 근대와 현대를 통과하는 동안의 산증인이요 오늘날이 있기까지 모든 지난한 역경의 바람막이 역할을 하셨던 김 추기경님은 남달리 감회가 새로우셨을 것이다.
전시가 끝나고 추기경님 반신상을 추기경님께서 당시 거처하셨던 혜화동 주교관에 전해 드렸으나 현재는 가톨릭대학교 전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추기경님께서 작품을 전달받으시고 얼마나 주셨냐고 웃으면서 물어보길래, 추기경님보다 더 높으신 분이 값진 선물을 주셨다고 대답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주님께서 추기경님을 나의 예술작품으로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은총을 나에게 부여해 주신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보다 귀한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금일봉 대신 추기경님께서는 친필로 적으신 그림엽서를 나에게 주셨다. 거기엔 빨간 제의를 입으시고 어린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짓고 계신 추기경님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전대식 프란치스코 사진작가를 통해 이어진 추기경님과의 인연
그런데 김수환 추기경님과의 인연은 이로써 끝났던 게 아니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일화를 소개하겠다. 
1998년 추기경님께 작품을 드리고 난 후, 나는 조각 원형을 가지고 있었기에 브론즈로 다시 만들어 줄곧 소장하고 있었다. 2012년 어느 주일날 양평 강하공소에서 미사를 드리던 중 우연히 와갤러리 대표 김경희 다리아 관장님 부부를 만나게 되어 내 스튜디오에 구경 오셨다. 그런데 그분들이 추기경님 작품을 보신 후 지금 전대식 사진작가의 김수환 추기경님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데 찬조 20250324141421_643655095.jpg출품을 해 주실 수 있느냐고 제안을 했고 난 그 자리에서 흔쾌히 승낙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김 추기경님을 그리워하며 보고 싶어 하기에 그에 따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순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전시는 전대식 작가가 평화신문에 근무하면서 김수환 추기경님을 찍은 사진을 엮은 추모 헌정 사진집 출판 기념전을 겸한 ‘김수환 추기경 선종 3주기 추모 사진전’ 이었다. 
다음 날 사람들을 동원하여 갤러리에 작품을 옮겨놓고 추모 헌정 사진집을 보니 겉표지의 사진이 내가 추기경님께 받은 그림엽서와 똑같은 사진이라서 깜짝 놀랐다. 너무 마음에 들었던 그 사진은 추기경님께서 숱하게 카메라 앞에 서셨겠지만 유독 그 사진이 마음에 드셨던 모양이다. 
알고 보니 전대식 작가는 내가 추기경님 작품을 만든 1998년이 평화신문사에 입사한 첫해였으며 ‘예술의전당’ 전시에 취재하러 와서 추기경님과 내 작품과 유치원생들을 찍었던 사진기자였다. 서로 모르고 있었는데, 너희는 알고 지내라고 주님이 이끌어 주신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님과의 공동인연으로 다시 만난 우리는 세례명도 같은 프란치스코라는 사실에 놀랐고, 실로 오래간만의 반가운 해후를 했으며 ‘예술의전당’에서 추기경님과 같이 찍은 사진도 선물로 받았다. 
그 후 김수환 추기경님 조각은 와갤러리 전시에 이어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전시에도 출품되었다. 추기경님께서는 내 곁을 떠나 몇 달 동안 나들이를 다녀오신 후 지금은 다시 내 스튜디오에 전시되어 있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이 신앙의 다리로 연결된 것이요, 결코 우연이 아닌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의 필연적인 뜻으로 느껴진다.

김수환 추기경님과의 인연은 내 삶에서 현재 진행형
나는 김 추기경님 조각상을 소장하고 있기에 마치 추기경님이 살아계셔서 나와 함께 살고 계심을 느끼며 종종 대화를 나눈다. 왜관 수도원 전시를 마치고 돌아오셨을 때 “바로 옆인데 왜 내 고향인 경북 군위 생가에는 데려다주지 않았어! 가고 싶었는데!”라고 말씀하시는 듯했다. 그래서 대답하기를 “추기경님! 다음 기회엔 꼭 군위에 모시고 가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뿐만이 아니라 내가 울적할 적에, 분노가 치밀 때, 부질없는 욕망에 휩싸일 때,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을 때는 수시로 김 추기경님 조각상 앞에서 묵상과 기도를 하며 마음을 다스린다.
추기경님께서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 감정적으로 미운 사람, 보기 싫은 사람, 귀찮은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다고 하셨으며, 그것은 자신을 끊고 죽일 때 가능한 일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용서할 수 없는 근본적 이유는 자신이 얼마나 용서받아야 할 사람인지 모르기 때문이며, 자신이 더 많이 용서받아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남을 용서할 줄도 안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세상을 사노라면 용서하는 법을 익혀야 그것이 세파에 시달리지 않는 현명한 방법이다. 일일이 다 신경 쓰면 갈등이 생기고, 불행의 씨앗이 된다. 타인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근심하는 것보다 주님을 따라 올곧이 사는 것이 행복이요, 성화 되는 지름길이다. 내 마음이 쓸쓸한 것은 양심에 따른 성찰이 수반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뭔가 갈피를 못 잡고 불안할 때는 하느님께 협조를 청해야 하고, 항상 그리스도라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기반성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난 알면서도 제대로 실천을 못 하고 있기에 늘 자책감을 느끼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생애 마지막에 “붓도 끌도 내게 평온을 가져다줄 수 없고 십자가에서 우리를 향해 두 팔을 벌리시는 자비하신 하느님의 사랑만이 내게 평화를 가져다준다.”라고 흐느끼며 고백했다고 한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도 평생 약자의 편에 서시어 주님을 닮고자 십자가를 안고 가셨으며, 하느님의 영원한 메시지인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최근에 김수환 추기경님의 ‘그래도 사랑하라’라는 책을 선물로 받았다. 그 책을 읽으면서 김수환 추기경님의 말씀을 다시금 떠올리며 되새기게 되었다. 
이렇듯 김수환 추기경님과의 인연은 내 삶의 시나리오에 진행형으로 엮어져 가고 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