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영성 살기
수세미와 함께하는
사순절의 노래
이진영 세실리아 수녀 사랑의시튼수녀회

지난 가을 수확하여 무심한 듯 쟁반에 널어 두었던 잘 여문 수세미 씨앗을 거두었습니다. 까맣게 잘 익은 것과 여물지 못한 흰 쭉정이 씨앗을 분리하고 비늘을 털어내는 작업을 합니다. 수세미는 촉촉한 비 내린 지난해 봄날, 수녀원 정원수 사이에 심었던 것입니다. 
이곳에 산지 만 오 년입니다. 정원에 조그만 공간을 마련하고 상추를 심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주로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이 많은 저에게 틈새 틈새 흙을 만지는 일은 기분 전환도 되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합니다. 흙도, 나도 그리고, 가끔씩 들여다보는 이들에게도 기쁨이 되어주니 채소를 가꾸는 일이 참 재미가 납니다. 
그러던 틈에 수세미 씨앗이 멀리 대구에서 제게로 왔습니다. 처음 심어보는 수세미였습니다. 까만 씨가 흠뻑 물을 먹고 잘 자라도록 가문 여름 매일 물을 주었습니다. 수돗물을 매일 틀어 쓰는 것이 마음에 걸려 지붕에서 내려오는 우수관을 살짝 뜯어내어 그 아래 빠알간 고무통을 두고 이름하여 ‘빗물 저금통’도 만들었습니다. 빗물을 바가지에 퍼서 주는 일은 나름 뿌듯해하며 행복감에 젖기도 했습니다. 손바닥만 한 틀밭도 만들어 토종 씨앗을 얻어 겨울에는 키 작은 밀도 심고 뿔시금치도 심었습니다. 수확하는 즐거움도 좋지만 자라는 것을 보는 것 또한 참 행복한 일입니다. 
첫해에 수세미는 너무너무 씩씩하게 자라서 감나무를 휘감고 말았습니다. 감나무에게는 미안했지만 내 생애 처음 심은 수세미가 잘 자라주는 것이 고마워서 감나무에게 이해를 구했지요. 그 덕에 감나무는 수세미를 품고 세 개의 씨앗에서 서른일곱 개의 수세미가 열렸습니다. 옆집 건물에 가려 일조량이 길지 않아 더디더디 자랐지만 제법 자란 수세미는 제구실하러 그해 성탄절 이집 저집 선물이 되어 날아갔습니다. 
아름다운 첫해의 체험을 발판 삼아 조금씩 세련되어지고 나아진 방법으로 씨앗을 심고 수확하는 기쁨을 맛봅니다. 씨앗도 나눠주고, 모종을 내어 여기저기 나눠주기도 합니다.
이제 또 이 씨앗은 흙과 친구가 되어 곧 싹 틔울 준비를 할 것입니다. 정성껏 심고 물 주고 자라기를 거들어준 수세미는 여느 수세미와 다른 느낌입니다. 미세플라스틱 걱정 하나 없이 자연으로 순환될 것이기에 지구에게도 덜 미안합니다. 까맣고 잘생긴 수세미 씨앗을 보며 저는 또 우주를 꿈꿉니다. 씨앗은 비로소 순환해야 확장되고 우주를 품게 됩니다.

사순시기,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은총의 때
언젠가 괴산에 살 때의 일이 생각납니다. 괴산 대학 찰옥수수는 참 유명하고 맛도 좋습니다. 그런데, 동네일을 도우며 씨앗을 심던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씨앗이 분홍색으로 코팅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씨앗은 한해만 발아하여 수확할 수 있고, 다음 해에 씨앗을 받아 심으면 농사는 망하게 됩니다. 종자회사에서 한해만 수확하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씨앗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에 특허제도라는 것을 도입하여 대대로 지어 오던 농사를 짓지 못하게 하고 반드시 씨앗과 함께 농약을 사용하게 만들고, 해마다 씨앗을 비싼 값에 사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이 대부분 농촌의 슬픈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도 땀흘려 생명을 살리는 농사로 해마다 씨앗을 받아서 짓는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곳곳에서 애를 쓰고 있습니다. 이 까만 수세미 씨앗 또한 지속 가능한 생명이 되어주니 참말로 기특하고 고맙습니다.
사순시기입니다. 우리의 삶을 성찰하는 은총의 때입니다. 우리는 지극한 사랑으로 죽기까지 함께 한 예수님의 사랑에 마음과 정신과 힘을 다해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그로 인해 행복한 매일이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