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십자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십자가에는 몇 가지 형태가 있다. 그중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십자가는 라틴 십자가, 곧 세로 막대의 위쪽은 짧고 아래쪽은 긴 모양의 십자가다. 그리고 라틴 십자가의 위와 아래가 뒤집힌 형태의 십자가도 있다. 이 십자가가 바로 성 베드로 십자가다. 성 베드로 십자가는 베드로 사도가 어떠한 형태로 순교했는지를 말해 준다.
전승에 따르면, 네로 황제의 박해 시기(64-68년)에 베드로 사도는 스승이신 예수님을 좇아서, 또한 여느 순교자들처럼 자신도 당연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자신은 스승과 같은 모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힐 만한 자격도, 깜냥도 안 된다고 여겼다. 그러기에 기꺼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겠으되, 스승이 돌아가신 것과는 다른 형태로 죽기를 바랐다. 이를테면 스승께서 머리가 위를 향하고 발이 아래를 향하는 자세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니, 자신은 머리와 발의 위치가 거꾸로 뒤집힌 형태로 십자가에 달리기를 고집했다. 그리하여 베드로 사도는 여느 십자가와는 위아래가 뒤바뀐 모양새의 십자가에서 순교했다고 전해 온다.
성 베드로의 의자
수난을 앞두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는 너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돌아오거든 네 형제들의 힘을 북돋아 주어라.”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주님, 저는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 있고 죽을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루카 22,32-33 참조).
예수님은 머지않아 당신이 수난을 당하시게 되면 제자들이 자칫 나약해지고 흔들릴 것을 염려하셨고, 그럼에도 베드로가 이내 자신을 추스르고 강해지기를, 나아가 그러한 자신을 중심으로 동료 사도들을 강하게 규합하여 교회를 이끌어가게 되기를 기도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사도들의 으뜸으로 여기시고 으뜸 사도로서의 권위를 부여하셨다. 이런 점과 관련해서, 성 베드로의 의자는 교회 초기부터 사도들과 신자들 사이에서 인정되어 온 교회 수장의 자리[首長座]를 뜻하고, 이는 곧 베드로 사도의 수위권을 상징한다.
교황 삼층관
교회는 일찍부터 교황이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 세상의 영도자, 그리고 군주와 왕들의 아버지로서 권위를 가진다고 이해했다. 이 권위는 초대 교황인 베드로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교황은 성대한 의식을 거행할 때면 이 권위를 나타내는 관을 머리에 쓰게 되었다. 이 관은 애초에는 왕관 두 개를 포갠 듯한 이층관이었는데, 14세기 우르바노 5세 교황 때부터 삼층관으로 바뀌었다.
삼층관은 교황이 앞에서 말한 3가지 권위를 가진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셔서 수행하신 사명 또는 직무인 왕직(봉사직, 통치권), 예언자직(교도권), 사제직(사목권)을 교황이 물려받아 가진다는 것을 상징한다. 또한 교황이 3가지 형태의 교회(투쟁의 교회, 정화의 교회, 승리의 교회)의 영도자라는 점을 가리키기도 한다.
교황 십자가
십자가는 대체로 수직 막대 1개에 수평 막대 1개가 교차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수직 막대 1개에 수평 막대 3개가 교차하는 형태로 된 십자가도 있다. 이것이 교황 십자가인데, 이 십자가에서 3개의 수평 막대는 베드로 사도가 으뜸 사도요 교황으로서 가지는 권위와 직무의 세 영역, 곧 교회와 세상과 하늘나라를 나타낸다.
책(또는 두루마리)
신약성경을 이루는 27책 중에는 베드로 사도가 쓴 2권의 성경도 포함되어 있다. ‘베드로의 첫째 서간’과 ‘베드로의 둘째 서간’이 그것이다. 이는 베드로 사도가 성경 중 일부를 직접 저술한 저자임을 말해 준다. 베드로 사도는 또한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선포한 장본인이다. 그런가 하면 4 복음서 중 하나인 마르코 복음서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출처(1차 자료)이기도 하다. 책(또는 두루마리)은 이렇듯 베드로 사도가 교회에 전해 오는 계시의 주요 근간들 중 하나인 성경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가리킨다.
성 베드로 대성당
베드로 사도는 세상을 두루 다니면서 선교하다가 64년에 로마에서 순교하고 안장되었다. 베드로 사도의 유해가 안장된 무덤 위에는 성당이 세워졌는데, 이것이 ‘성 베드로 대성당’이라 명명되어 있는 교황좌 성당이다.
로마 제국의 황제 네로는 그리스도교 탄압의 일환으로 으뜸 사도인 베드로를 처형했고, 그 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로마 제국의 황제로서 313년에 그리스도교를 공인했으며, 324년에는 베드로 사도의 무덤 위에 성당을 지어 봉헌했다. 그리고 1506년에 율리오 2세 교황은 이 성당을 확장해서 다시 짓기로 계획했다. 이로써 오늘날과 같은 모습의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이 시작되었다. 길이가 220m에 달하는 대성당의 공사는 1590년에 끝났고, 그 뒤 순차적으로 개관과 축복식을 거치며 1667년에 오늘의 모습을 갖추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성당은 교황좌의 첫 주인공인 성 베드로를 상징한다.
두 상징이 결합된 또 하나의 상징
위에서 살펴본 상징들은 단독으로 베드로 사도를 나타내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문장(紋章) 등에 두 상징이 결합되어 새로운 상징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흔하다. 열쇠와 베드로 십자가 또는 열쇠와 교황 십자가가 결합되는 경우가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