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 신부의 고해성사
박진신 솔란지아 의정부교구 인창동성당 사랑하올 어머니 Pr.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의 양 떼를 잘 치십시오. 그들을 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진해서 하십시오.”(1베드 5, 2) 
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성격상 외출을 좋아하지 않아 레지오를 하지 않았더라면 평생 성지 순례에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레지오 덕분에 성지 순례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되었고, 성모님이 인도하시어 자주 방문하고 있다. 
이번에 춘천교구의 성지인 주문진의 행정공소를 방문했다. 이곳은 과거 옹기마을 신앙촌으로 당시 전체 주민이 모두 교우일 정도로 영동 지역에서 손꼽히는 큰 공소였다고 한다. 
공소에 상주하시는 신부님은 사목 일선에서 물러난 후, 당신께서 어릴 적 신앙을 키웠던 이곳에 사제관을 짓고, 성지를 관리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다른 공소와는 다르게 감실에 성체가 모셔져 있었고, 신부님께서는 구순이 가까운 연세에도 매일 미사를 집전하실 정도로 사제의 의무를 다하고 계셨다. 
고해를 볼 수 있다는 안내문을 보고 신부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하셔서 전화한 것만으로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방문한 김에 십자가의 길도 바치고, 아무도 없는 성전에서 성무일도와 묵주기도를 바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갑자기 성전 문이 열렸고, 신부님께서 고해를 봐주신다며 벤치에서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하셨다. 건강이 좋지 않아도 사제로서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걸까. 혹은 외진 곳까지 찾아온 양을 외면하기 어려웠던 것일까? 기다림 끝에 거동이 불편한 신부님께서 고해성사를 집전할 때 쓰는 보라색 영대를 걸고 나오셨다. 
신부님과 햇살이 비추는 벤치에 마주 앉았다. 신부님은 말 한마디도 겨우 하실 정도로 힘겨워 보이셨다. 그럼에도 고백한 죄에 대해 보속을 주신 뒤 사죄경을 읊으셨다. 그리고 내가 일어난 뒤에도 신부님은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계셨다. 나 하나 때문에 신부님의 하루를 힘들게 만든 건 아닌지 몹시 걱정이 되었지만 엄숙한 신부님의 모습에 다른 말은 할 수 없었다. 
언젠가 “사제는 직업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본당 신부님의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다. 당시에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노 신부님을 보고 드디어 이해하게 되었다. 하느님께서 양들을 돌볼 수 있는 건강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