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도의 팜플로나 대성당
스페인의 팜플로나(Pampiona) 도시는 북쪽 프랑스와 가깝고 피레네산맥 서부 구릉 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스페인과 프랑스를 잇는 교통의 요지이며, 산티아고 순례길의 중요한 길목이다.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팜플로나는 중세의 거대한 도시처럼 보였다. 프랑스 문이라는 '수말라까레기' 문을 지나 우측으로 빙 돌아 한참을 걸어갔다. 도시는 성벽의 구시가지와 카스티요 광장을 중심으로 신시가지로 나뉜다.
고대 나바라 왕국의 수도였기 때문에 팜플로나 산타마리아 대성당에서 나바라 왕국을 통치했던 왕들이 대관식을 치르기도 했고, 일부 왕들의 무덤도 보관되어 있다. 대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이 1391년 붕괴가 되면서, 14~15세기에 걸쳐 지어진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 완벽하게 보존되고 있다. 천년고도 팜플로나 대성당에서의 저녁 미사 참례는 중세의 시간으로 잠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산 페르민 축제
팜플로나는 산 페르민 축제로 유명한 도시이다. 팜플로나의 수호성인이자 3세기경 초대 주교였던 산 페르민(San Fermin)을 기리기 위한 행사라고 한다. 축제 기간은 7월 6일 정오부터 7월 14일 자정까지로, 가장 관심을 끄는 소몰이 축제는 투우장까지 연결되는 거리에 소들을 풀어서 질주하도록 만들고, 수많은 사람이 흰옷에 빨간 천을 두른 채 소들을 앞지르거나 뒤쫓으며 내달린다. 헤밍웨이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이 장면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어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소와 인간의 경주는 5분 만에 끝나지만, 이 모습을 보기 위해 매년 50만 명 이상이 몰린다고 한다. 열정의 나라 스페인의 기질과 잘 맞는 축제 같다. 이때 소몰이, 투우 경기, 행진, 불꽃놀이 등의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그러나 매년 빈번하게 사고를 동반하기 때문에 찬반 논쟁이 뜨겁다. 여러 단체에서는 동물 학대 반대 시위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실제 가보니 팜플로나 도시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길게 길게 쭉쭉 뻗어 있다.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겸비한 계획도시라는 생각과 관광객들로 활기차고 꽉 찬 느낌이 들었다. 가끔 순례객 중에는 이곳에서 연박을 하는데 대도시인 만큼 볼거리가 많고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이다.
용서의 언덕을 향해
팜플로나의 새벽 출발은 노란 화살표가 잘 보이지 않아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야 한다. 도심을 어느 정도 벗어나니 큰 공원이 펼쳐져 있고 아침 운동을 하는 현지인 모습이 보인다. 잔디와 나무들의 조화로운 초록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팜플로나를 완전히 벗어나니 끝없는 광야가 펼쳐진다. 우리가 걸을 당시에는 8월 하순으로 잘 익은 해바라기밭과 밀을 벤 누런 밭이 초록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이곳을 지나면 외곽 비포장길이 나온다.
오늘은 페르돈 언덕을 향해 걷는다.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 사진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 부부도 광활한 들녘을 바라보며 크게 심호흡을 하고 그동안 누적된 피로로 인해 쌓인 갈등과 잡념을 모두 털어버리자고 다짐했다. 사람들도 용서의 언덕에 서서 잠시 쉬기도 하고, 기도하면서 마음의 정리를 하는 듯했다.
순례길에 올라서 며칠을 걷다 보면 자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넓어진다. ‘미워했던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용서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광활한 대지가 주는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가꾸고 수확하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스페인 사람들이 부러웠다. 해가 뜨면서 그림자가 몇 배로 길게 이어진다. 사진을 찍으니 하나의 멋진 작품 사진이 된다. 이곳은 밀을 수확하고 나자 밭에 사람들이 걸어가며 길을 만들었다. 펼쳐진 밭 사이로 많은 사람이 걸어간 발자국이 포개지고 포개져 자연스러운 길이 되었다. 멀리 산이 보인다. 광활해서 완만하게 보이지만 큰 산을 넘어야 한다. 힘든 고갯길에 말을 타고 넘는 사람들도 보인다. 말을 타고 순례하는 사람도 0.1%가 된다고 한다.
바람이 별의 길과 만나는 곳
2024년 산티아고 순례자 수는 49만9,239명으로 마감되었다. 2020년과 2021년 코로나 시기를 제외하면 매년 증가 추세이다. 순례자 남녀 구성비는 여성 순례자가 남성 순례자보다 증가하고 있다. 10대부터 65세까지가 순례자의 81%를 차지한다.
멀리 풍력 발전기가 돌아가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해발 770m임에도 험난한 오르막으로, 순례자들의 인내력을 시험당하는 악명 높은 코스이다. 이 언덕은 스페인 중심부(마드리드)로 향하는 길인 데다 중간에 쉬어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의 이름은 페르돈(Perdon) 즉 용서의 언덕이라고 부른다. 원수와 함께 오르더라도 힘든 길 때문에 서로 의지하고 걷다 보면 용서할 수 있게 되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정상에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순례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철제 조형물이 있다.
이곳엔 ‘Done se cruza el camino del viento con el de las estrellas’(바람이 별의 길과 만나는 곳)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풍력 발전회사와 조각가 Vicente Galbete에 의해 1996년에 완성되었다고 하며 맞은편에는 순례자 기념탑이 있다. 이곳은 순례자들이 사진을 많이 찍는 곳이기도 하다. 언덕이라서 그런지 바람은 무척 세찼다. 우리 부부도 그곳을 오가며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학생들과도 오래 기억될 추억을 담았다. 용서의 언덕을 내려오는 길은 트럭으로 돌을 가득 실어다 부은 것처럼 엄청나게 돌이 많았다. 주먹만 한 돌들이 자갈밭처럼 많아 자칫 미끄러지기 쉬워 조심스럽게 걸어가야 한다.
우리는 짧은 길을 선택해 가지 않았지만 페르돈 언덕을 내려온 뒤 우회하게 되면 에우나테(Eunate)로 향하는 갈림길이 나온다. 12세기 지어진 로마식 양식의 반원형 건물의 에우나테 성모 마리아 성당이 있다. 에움길로 가더라도 조용한 길을 걷고자 할 때 추천해 드린다.
<사진설명(위로부터)>
- 용서의 언덕 오르는 길
- 스페인 팜플레나 성당과 성당내부
- 스페인 팜플레나 도시 거리(좌) 팜플로나 도시 성벽(우)
- 용서의 언덕에서 미국 MIT 학생들과(좌) 용서의 언덕 조형물(우)
- 에우나테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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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영 미카엘라는 2002년 세례받고, 2008년 레지오 마리애에 입단하여 Pr. 단장, Cu. 단장, Co. 부단장으로 활동하였다. 2019년 8월 남편과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를 38일간 다녀오고, 2021년 ‘사진으로 보는 우리 부부 산티아고 순례길’, 2024년 ‘열정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출간했다. 현재는 플렛폼 브런치스토리 작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