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본질을 규정한 여러 라틴어 용어 중 ‘여행하는 인간’(homo viator)이란 말이 있다. 인생은 곧 ‘나그넷길’이란 말처럼, 사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의 여행자이다. 이러한 인간학적 표상과도 같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의 「교회 헌장」(Lumen Gentium) 제7장은 이 세상에서 ‘순례하는 교회’의 친교에 관해 설명한다. 그래서 제7장의 제목은 ‘순례하는 교회의 종말론적 성격’이다. 주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 공동체’인 교회는 “구원의 보편 성사”(48항)이며, 종말론적 완성을 향해 “지상에서 나그넷길을 걷고 있고,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같은 사랑 안에서 참으로 여러 단계와 방법으로 친교를 이루고 있으며, 우리 하느님께 같은 찬미가를 노래하고 있다.”(49항)
이러한 언명은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가 무엇인지를 잘 드러낸다. 이는 교회의 매우 중요한 속성이다. 복음 선포의 사명을 살아가는 친교 공동체의 삶에 있어, ‘시노드’(synodus)를 통해 그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교회의 중요한 전통이기 때문이다. ‘시노달리타스’는 이러한 ‘시노드’ 전통과 연결되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신학적 발전 속에 그 교회론적 의미가 계속 발전된 개념이다.
‘시노달리타스’는 넓은 의미의 ‘시노드’ 개념과 동일하다. 즉, ‘시노드’로서 교회 개념을 잘 드러내는 표현이다. ‘시노드’는 그리스어 전치사 쉰(σύν: ~와 함께)과 명사 호도스(ὁδός: 길)가 합성된 단어로서, 하느님 백성이 ‘순례하는 교회’로서 ‘함께 걸어가는 여정’을 가리킨다. 이는 교회 공동체가 복음 선포의 사명 속에 친교의 영성을 살아내고 실현하기 위해 걸어가는 ‘길’을 의미하기에, 교회적 삶의 방식과 운영 방식을 총칭한다.
초대 교회 때부터 ‘시노드’를 통해 공동체의 합의를 이루어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전통이었다. 예를 들어, 교회 공동체의 식탁 봉사 직무를 위해 일곱 봉사자를 뽑는 과정(사도 6,1-7절), 그리고 베드로의 설교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도 성령을 받게 되자 그들도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결정한 것(사도 10,44-48)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는, 사도들과 원로들을 중심으로 제자들의 공동체가 모여 성령의 인도를 청하며 급박한 당면 문제를 해결하는 식별과 합의 과정이 잘 나온다. “그때에 사도들과 원로들은 온 교회와 더불어”(22절) 마지막 결정을 내리고서 말한다, “성령과 우리는 [...] 결정하였습니다.”(28절) 이처럼 ‘시노달리타스’는 교회의 전통 안에서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질서 있는 관계를 통해 일치를 이룸을 의미한다. 특히 당면한 문제 앞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더욱 그러하다.
평의회 간부 선출 과정에서의 시노드 정신 발현
레지오 마리애 교본을 이러한 신학적 관점에서 조명해 본다면, 그 안에 담긴 시노드 정신을 해석해낼 수 있다. 그 대표적 경우 중 하나는 평의회 간부 선출 과정에 있다. 교본 제28장의 ‘1. 모든 관리 기관에 적용되는 사항’ 12번(234쪽)에는 각 “평의회의 간부들이 특정 후보자가 적절하다고 의견 일치를 보았을 경우에는 그를 공천한다고 발표할 수 있다.”라고 나온다.
여기서는 정확한 번역을 통해 그 깊은 의미를 이해해야만 한다. 첫째, 이는 막연한 의견 일치가 아니라 “만장일치의 경우에는”(if they are all agreed)”이라고 수정 번역되어야 한다. 둘째, 그러한 만장일치의 경우라면, 평의회 간부들은 “전체로서/한목소리로 그 사람을 추천한다고 공적 선언”(to declare that as a body they recommend that person)하는 것으로 수정 번역되어야 한다. 여기서 ‘선언’의 의미를 지닌 원문 단어(declare)는 매우 공식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교회의 ‘교리 선언’(declaration of doctrine) 혹은 국가적 ‘독립 선언문’(declaration of independence)이나 ‘전쟁 포고’(declaration of war) 등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따라서 이 단어의 사용은 평의회 간부들이 최선을 다해 검토하고 의견을 나누며 기도한 끝에 내린 결정을 공동체 안에서 선포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이러한 식별 과정에서 성령의 인도를 청하며 기도했다는 맥락에서, 이는 시노달리타스, 즉 시노드 정신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교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이러한 시노달리타스 방식이 발견된다.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먼저 문제를 논의하고 검토해 “뜻을 모아 결정(직역: 만장일치적 합의)”(사도 15,25)한 바를 제시하면, 공동체 전체가 이를 받아들여 최종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다(사도행전 6장과 15장 참조). 레지오 교본에서는 간부들의 만장일치 합의를 평의원들이 존중해 투표를 통해 지지할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이는 교회의 전통적인 시노드 결정 방식과 다수결 투표에 의한 민주주의적 결정 방식을 적절히 종합한 것이다.
이러한 시노드 방식을 잘 숙고하지 못한다면, 교본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더욱이, “그러한 공천이 선거를 올바로 실시하는 데 나쁜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라는 잘못된 번역이 오해를 부추긴다. 교본 원문의 내용은 이러한 공적인 추천 방식이 내용적으로 선거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공적 추천이 “다른 후보자의 추천을 막거나 선거의 정당한 형식적 절차에 반하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말아야(not operate against the nomination of others or against the full form of election)”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의 잘못된 현재 번역은 반드시 수정되어야만 한다.
시노드 정신을 잘 이해한다면 교본의 선거 제도는 큰 장점 있어
아무리 정당한 제도적 장치도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긍정적 혹은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교본에 나타난 이러한 선거 제도는 평의회 간부들이 시노드 정신을 잘 이해함을 전제하면, 매우 큰 장점이 있다. 인간사에 만연한 선거 과정의 물밑 잡음을 피하며, 교회의 봉사를 위해 필요한 인물을 식별해 당당히 공적으로 추천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교본에 나타난 선거 제도의 취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남용하는 미성숙함, 그리고 이 제도를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보는 그릇된 편견의 두 가지 극단 사이에서 올바른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향후 평의회를 이끌어갈 소중한 사람들을 지혜롭게 선출하는 것은 모든 레지오 단원들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이처럼 교본의 내용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시노달리타스 신학의 가르침에 비추어본다면 그 숨겨진 의미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