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로프터스는 14살 때 엄마가 수영장에서 익사했다. 하지만 사고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던 그녀는, 30년 후 삼촌에게서 그날 물에 빠진 엄마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자신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자 그녀는 그때의 일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그런데 얼마 후 삼촌은 그녀의 엄마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그녀가 아니라고 하였다. 삼촌의 말에 따라 자신의 기억이 달라지는 것에 놀랐던 것일까? 그녀는 현재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이자 ‘인간 기억 전문가’로 세계적인 권위자가 되어 있다.
거의 40년 동안 핫도그 세트를 1달러 50센트(2,000원 정도)에 파는 유명한 쇼핑 매장이 있다. 이 세트는 변치 않는 가격이 주는 믿음과 함께 최저가로 물건을 공급한다는 상징이 되어 이 쇼핑 매장에 많은 고객이 몰리게 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핫도그 매장이 쇼핑을 마친 후 마지막에 만날 수 있도록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피크엔드 법칙’을 알면 다소 이해하기 쉽다.
‘피크엔드 법칙’이란 절정을 뜻하는 피크(peak)와 마지막을 뜻하는 엔드(end)가 결합된 단어로,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평가할 때 경험하는 시간과 상관없이 그 경험의 강렬한 순간인 ‘절정’과 ‘마지막 때’를 평균하여 결정한다는 법칙이다. 결국 쇼핑 후에 먹게 된 싼 핫도그는 오늘도 쇼핑을 싸게 잘했다는 좋은 감정을 남겨주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이 법칙은 일상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영화가 해피엔딩으로 끝나고, 홈쇼핑 마지막에 할인이나 사은품을 주거나 공연에서 인기 있는 연예인이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것 등은 이 법칙을 이용한 마케팅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경험의 ‘절정’과 ‘마지막 때’를 평균하여 결정하는 ‘피크엔드 법칙’
이 법칙은 1999년 이스라엘의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연구팀이 발표한 실험 결과에 기초를 두고 있다. 연구팀은 피험자들에게 두 가지를 경험하게 했다. 하나는 14도의 차가운 물에 60초간 손을 담그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14도의 차가운 물에 60초간 손을 담그게 한 후, 조금 높은 15도의 물에 30초 동안 손을 담그게 하는 것이다. 그 후 피험자들에게 이 두 가지의 경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무엇을 택할 것인지를 물었다. 결과는 어떠하였을까? 차가운 물에 60초만 손을 담근 경험이었을까, 아니면 조금 시간이 길기는 하지만 차가운 물 다음에 다시 1도 높은 물에 손을 담그는 경험이었을까? 놀랍게도 피험자들의 80%가 후자를 선택했다.
이는 사람들 대부분이 고통의 시간에 상관없이 마지막이 덜 고통스러운 경험을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연구 논문 제목이 ‘더 큰 고통을 작은 고통보다 선호하게 하려면 경험의 마지막 순간이 좋아야 한다’이니, 기억은 주관에 따라 바뀌는 셈이다. 이는 모두 다 기억하기보다는 중요한 일이나 최근의 일을 더 잘 기억하고자 하는 뇌의 효율적 작용으로 본다.
그래서 우리는 보통 강한 감정의 사건을 그렇지 않은 사건보다 더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고, 기억은 일련의 시간 순서가 아닌 단편적인 장면으로 기억되기 쉽다. 그리고 그 기억은 판단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피크엔드 법칙은 우리가 정보를 처리하고 판단을 내릴 때 발생하는 주관적인 오류인 인지편향의 한 종류인 셈이다.
다소 내성적인 60대의 B자매는 소년 레지오 출신이었지만 결혼 후 냉담하다 남편의 병으로 조용한 곳으로 이사해 다시 성사 생활을 시작했다. 자연히 몇 명의 레지오 단원들이 입단을 권면했고, 그녀는 남편의 치료에 집중하고자 다음을 기약하였다. 그 후 남편이 선종하자 그녀는 다시 입단을 권면 받았지만 신변 정리를 위해 당분간 협조단원이 되고자 했다. 그런데 단원들이 행동단원 입단을 강요할 뿐만 아니라 서로 데려가려고 갈등을 빚는 등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말한다.
“제가 어려울 때 레지오 단원들이 기도와 연도로 도움을 주셔서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갈 쁘레시디움을 결정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상황에서 저에 대한 이해와 배려 없는 태도들이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러던 차에 한 분이 협조단원이 되고자 하는 저의 의견을 수용해 주며 위로와 격려를 건네셔서 그 팀의 협조단원이 되었습니다. 그분과 오랫동안이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동료 단원과 활동 대상자와 우정을 잃지 않도록 끝을 잘 맺어야
사울과 다윗은 둘 다 기름 부음 받은 자들로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왕으로, 다윗은 골리앗과 싸워 이긴 사건으로 백성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사울은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그 말로가 좋지 않았다. 반면 다윗은 비록 죄를 지어 하느님을 노하게 했지만 회개하여 지금도 우리에게 하느님 마음에 든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처럼 ‘끝이 좋아야 모든 게 좋다’라는 독일 속담과 같이 일뿐만 아니라 사람 관계에서도 끝이 주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그러니 동료 단원뿐 아니라 특히 활동 대상자와는 어떤 이유로든 우정을 잃은 상태로 관계가 마무리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한편 만남에 늘 최선을 다하기 어렵고,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면 불가능한 일이란 있을 수 없다’(교본 428쪽)고 하니 용기를 내어 도전해 볼 일이다. 교본에 ‘레지오 단원이 용기와 믿음으로 끈질기게 노력한다면 반드시 결실을 맺는다’(441쪽)라고 하지 않는가! 비록 서먹하고 불편한 관계라 할지라도 마무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과 관계의 질은 달라질 것이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본당 내에서 쁘레시디움을 옮기고 싶은 생각이 드는가? 그렇다면 혹여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피하고자 나도 모르게 이유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활동 대상자 중에 희망이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이 있는가? 이때 또한 내가 그 사람의 어떤 특성을 싫어하여 만나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개인적인 사도직’이란 결국 다른 이들과 우정의 관계를 쌓는 일’(교본 310쪽)이니 우정을 잃는 것은 사도직 수행의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에게’라고 말씀하신 것은, 진실로 세상의 모든 사람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교본 4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