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여인은 누구실까?”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노우재 미카엘 신부 부산교구 서동성당 주임

저희 본당은 미사 전에 항상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하고 함께 기도하면 다들 마음이 차분해지고 시선이 주님께 맞춰집니다. 어르신들은 나지막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로 기도하시는데 주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학생 미사 전 묵주기도 드리는 어린이들의 목소리도 낭랑하기 그지없습니다. 입을 오물거리며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하는 모습을 보면 기특하기도 하고 참 예쁘기도 합니다. 묵주기도를 바치면 교우분들이 아주 경건하게 미사에 참여합니다. 미사 주례자인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묵주기도를 바치면 미사 드리는 정성이 훨씬 더해집니다. 성모님께서 이렇게 우리들의 마음을 모아 주시는구나, ‘은총이 가득하신 분’께서 우리들의 마음에도 은총이 가득하도록 인도해 주시는구나,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분’은 성모님을 부를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호칭 가운데 하나입니다. 묵주기도를 드리면 하루에도 수십 번 성모님을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하고 성모송을 시작하니 “은총이 가득하신” 이 낱말을 수식어로 생각하기 쉽지만, 본래 루카 복음 1장 28절에 천사 가브리엘이 성모님께 드린 호칭으로 사용된 용어입니다. 가브리엘은 성모님을 찾아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하며 인사했습니다. 희랍어 원문은 “카이레, 케카리토메네”(Chaíre, Kecharitōménē)입니다. 희랍 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카이레”(기뻐하십시오) 하고 인사했고, 그다음 호칭을 불렀습니다. 가브리엘 또한 성모님께 “카이레” 하고 인사하며 성모님을 “케카리토메네”(은총이 가득하신 분) 하고 부르는 겁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에 ‘은총이 가득하신 분’
천사는 성모님을 왜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라고 했을까요?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바로 이 때문입니다. 천사는 계속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1,30). “총애”라고 하니 다른 말인가 싶지만, ‘은총’(chárin)을 말합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31). 성모님께서 ‘은총이 가득하신 분’인 까닭은 주님께서 함께 계신, 하느님 아드님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을 배경으로 천사의 인사말을 살펴보면 더 깊고 풍요로운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로 씌었는데, 기원전 3세기 희랍어 번역본이 나왔고, 여기 “카이레”가 몇 차례 등장합니다. “딸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스바 3,14);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요엘 2,22); “딸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즈카 9,9). 예언자들은 “카이레” 하고 외치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고, 주님께서 오시어 환난에 빠진 백성들을 구원하실 거라고 위로했습니다. 루카 복음 사가는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하는 천사의 찬송을 전하면서 구약의 예언이 성모님에게서 실현되었다고 증언합니다. 마리아는 개인의 자격이 아니라 “딸 시온”의 자격으로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성모님은 하느님 백성을 위해 주님을 맞이하는 분, 하느님 백성에게 주님을 전하는 분, 하느님 백성이 주님을 맞이하도록 돌보는 분이 되었습니다.

성모송 전반부는 천사의 찬송과 엘리사벳의 찬송으로 이루어져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하며 기도하는 성모송의 앞부분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하는 천사의 찬송 그대로입니다. 성모송을 바치는 이는 가브리엘 천사의 찬송을 기억하는 동시에 천사와 함께 성모님을 찬송하는 겁니다. 성모송의 다음 구절은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입니다. 이 구절은 성령으로 가득 찬 엘리사벳이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루카 1,42) 하며 성모님을 찬송한 데서 유래합니다. 
성모님은 당신 안에 하느님의 아드님을 받아들인 후 엘리사벳을 방문하였습니다. 어려움에 처한 엘리사벳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서둘러”(루카 1,39) 길을 떠났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은 엘리사벳은 하느님 아드님께서 성모님 태중에 현존하심을 알아보며 성모님을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십니다.” 하며 찬송했습니다. 엘리사벳의 찬송은 그대로 성모송에 포함되었습니다. 이렇듯 성모송의 전반부는 천사의 찬송과 엘리사벳의 찬송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성모송을 드릴 때 천사의 찬송과 엘리사벳의 찬송을 떠올리며 기도하면 성모송이 숨을 쉽니다. 천사와 함께 또 엘리사벳과 함께 성모님을 ‘은총이 가득하신 분’, ‘여인 중에 복되신’ 분으로 찬송하면 성모송을 더욱 생생하게 바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어 성모송은 구절을 엇갈리게 편성하여 천사의 찬송과 엘리사벳의 찬송이라는 본래 면모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이렇게 연결하고 숨을 들이마셔야 천사와 함께 찬송하는 건데,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하고 나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하며 천사의 찬송 뒷 구절과 엘리사벳의 찬송 앞 구절을 합쳐 버리니, 기도문의 의미는 통한다고 하더라도, 본래 찬송의 면모가 약해지고 말았습니다. 라틴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등 대부분 언어권에서는 성경의 증언을 충실히 따라 천사의 찬송과 엘리사벳의 찬송을 구별하며 성모송을 바칩니다. 
한국어 성모송을 바칠 때 너무나 오랫동안 두 찬송을 섞어 기도하다 보니, 찬송의 고유한 역동성이 퇴색되어 그냥 뜻만 통하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장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조금씩 변화를 시도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당의 신자 재교육을 통해 성모송을 어떻게 바쳐야 하는지 교우분들께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함께 기도하며 몇 차례 교정해 나가니 금방 찬송의 면모를 되살릴 수 있었습니다. 천사가 성모님을 찬송하는 모습, 엘리사벳이 성모님을 찬송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찬송을 이어가면, 성모송은 생생하고도 입체적인 기도가 됩니다.
주님께서 ‘은총이 가득하신 분’을 우리의 어머니로 주셨습니다. 성모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니 우리도 정성을 다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성모님을 찬송합니다. 당신의 어머니를 우리의 어머니로 주신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