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이었네
오늘의 제 삶을 성모님께
봉헌합니다
이순분 엔젤 안동교구 강구성당 통고의 모친 Cu. 단장

20250123150419_1214500013.jpg신앙 체험에 대해서 글을 써 보라는 영덕 바다의 별 Co. 단장님의 연락을 받고 제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남들 사는 모습만 볼 것이 아니고 나의 삶도 한번 풀어놓아 보자. 부족함이 많아 내세울 것은 없지만 저의 걸어온 길을 펼쳐봅니다.
저는 1991년도 세례를 받자마자 레지오가 뭔지도 모르고 자동 입단을 했습니다. 지금은 사회 복지가 잘 되어 있지만 90년도에는 모든 것이 참으로 힘든 시기였습니다. 단원들과 함께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의 목욕 봉사, 청소 봉사, 차량 봉사 등을 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굳게 다지던 시기였습니다. 공소라서 쁘레시디움이 한 개뿐이었지만 모든 단원의 열정만큼은 대단했습니다.
10년, 20년, 30년이 지나 지금 제가 Cu. 단장이 되어 이 글을 씁니다. 30여 년 전 그때부터 함께 활동하는 단원들도 있고, 잠시 머물다가 가신 분들도 계시고, 최근에 입단하신 분들도 있고, 이미 하느님 나라에 가신 분들도 계십니다. 2007년에 5개 쁘레시디움으로 꾸리아가 설립되었고, 많은 분들의 열정과 하느님의 사랑이 어우러져 우리 레지오가 오늘도 힘을 얻습니다. 만나면 늘 기쁘고 서로의 삶을 나누어 가지는 고마운 단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묵주기도는 우리의 힘
레지오는 성모님을 통해 날마다 모든 단원이 활발히 움직일 때 튼튼하게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한때는 코로나와 노령화로 레지오 단원이 20명대로 떨어지는 위기가 닥쳤습니다. 고민 끝에 무엇이든지 해보자. 어떤 경우든 마음을 모으면 된다. 우리에게는 든든한 묵주기도가 있다. 4간부가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20250123150419_20705953.jpg각 쁘레시디움 별로 2명씩 봉헌카드를 만들어 주회합 때마다 성모님 발밑에 봉헌카드를 펼쳐두고 1년 동안 기도했으며, 네 간부가 십자가의 길 기도와 10월 묵주기도 성월에는 미사 30분 전에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그 결과 드디어 1년 만에 7명의 레지오 단원을 확보하였고, 지금은 33명 단원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1998년 견진성사를 받은 후 꾸르실료와 성령 세미나 기도회를 체험하면서 제 신앙생활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내 심장을 뛰게 했고, 길을 나서면 발걸음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습니다. 너는 너라서 좋고, 나는 나라서 좋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환희 그 자체였습니다.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는 기쁨, 마음속에 숨겨둘 수 없는 기쁨, 앉으나 서나 성당 생각과 가슴 두근거림을 어찌 감당할까요? 
그 힘에 이끌려 2001년 사순시기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6시에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며 40일을 뛰어다녔습니다. 깜깜한 새벽 공소까지 가는 길이 무서운 줄도 몰랐습니다. 몹시 춥기도 하고, 바람은 왜 그렇게 부는지…. 뛰어가면서 바람이 뒤에서 밀어주면 ‘아, 성모님께서 빨리 가라고 밀어주시는구나.’ 신이 나서 뛰었고, 바람이 앞에서 가로막으면 ‘아, 성모님께서 내가 넘어질까 봐 천천히 가라고 신호를 보내시는구나.’ 나 혼자 이렇게 위로하면서 늘 기도했습니다. “성모님 언젠가는 제가 성당 밑으로 이사 오게 도와주십시오.” 간절하게 기도했던 생각이 새롭습니다.

예수님! 예.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제가 하겠습니다.
세례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역장 임명을 받았습니다. 시골 작은 공소에 구역 신자는 몇 안 되지만 구역장이 할 일은 많았습니다. 구역모임이 있는 날은 차편도 없어 옆옆이 모시러 가야 했고,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 일일이 연락하기가 더더욱 힘들었습니다. 구역청소가 돌아오는 토요일 오후에는 한두 사람 아니면 나 혼자 해야 하는 청소도 참 부담이었습니다. 모두 바빠서 시간 내기가 쉽지 않던 시절입니다.
그렇게 불편함을 호소할 때 구역장 연수가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받는 구역 교육, 그날 저는 예수님 앞에 무릎을 뚝 꿇었습니다. “예수님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제가 하겠습니다. 불평불만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즐거운 공소 생활도 끝나고 2002년 7월에 드디어 본당으로 승격되었습니다. 우리 모두의 염원이 이루어졌고 새 신부님도 오셨습니다.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날입니까? 평일 미사가 일주일에 한 번에서 요일마다 있으니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하지만 재정상 수녀님을 모시지 못해 모든 것은 신자들의 몫이었습니다. 제대 일을 맡으면서 대축일 때마다 새롭게 준비하는 과정이 복잡했지만 저에게는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께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모님을 좀 더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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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으로 승격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 성전 건립이 시작되었습니다. 신부님과 모든 신자가 합심해서 성전 건립기금 모금과 묵주기도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저는 신자들이 바친 기도를 집계하여 봉헌하였고, 우리의 가슴은 뜨겁고 행복했습니다. 2005년 12월, 드디어 우리의 열정과 정성으로 새 성전이 봉헌되었습니다. 그 기쁨의 여운이 아직 가슴에 가득 차 있을 때 문득 어느 때인가 성모님께 간절히 청했던 기도, 잊고 지내던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이사를 간 것이 아니고 성당이 저희 집에서 걸어 5분 거리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제 심장과 예수님의 심장이 같은 순간 뛰고 있다는 것을, 예수님이 저에게 주신 큰 축복인 것을…. 저는 오늘도 성당에 걸어갑니다. 이제 제 인생도 가을 어디쯤 와 있는데 그날의 설렘을 안고 매일매일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서 부족한 것은 부족한 대로, 모자라는 것은 모자라는 대로 오늘의 제 삶을 성모님께 봉헌합니다.
<사진 설명(위로부터)>
_ 이순분 엔젤
_ 10월 묵주기도 성월
_ 통고의 모친 꾸리아 간부(좌) 성지순례 두봉 주교님과 함께(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