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훈화
주님봉헌축일-연중7주간
이상구 토마스 모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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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구 토마스 모어 신부는 2001년 7월에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2015년 9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의정부교구 애덕의 모후 레지아 담당사제를 역임했다. 현재 교구 관리국장으로 재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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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주님 봉헌 축일, 연중 제4주간)
성모님의 봉헌을 본받음

12개월 된 서정민 군은 불의의 사고를 당해 뇌사 추정상태로 분당차병원에서 석 달여 간 연명치료를 받아오다 다른 아이들에게 심장과 폐 등 주요 장기를 기증하고 하늘나라로 긴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이 엄마는 처음부터 장기기증을 결정한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씨가 마음을 돌린 건 남편의 한마디 때문이었습니다. 
“남편이 ‘정민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다 있다. 정민이의 장기를 이식받은 아픈 아이들이 우리 아이를 대신해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곳으로 여행 다니며 잘 뛰어놀 것’이라고 말해줬어요. 남편 말대로 정민이가 다른 곳에서 잘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보십시오. 이 아기는 ···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루카 2,34-35). 성모님은 아드님을 봉헌하시면서 놀라운 예언을 접합니다. 매우 마음 아프고 두려운 예언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계획에 철저하게 순명하십니다. 아드님을 따라 당신의 전부를 봉헌하십니다. 성모님의 봉헌은 아드님을 통해 이루어진 구원 역사에 가장 큰 협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모님께 열렬히 봉헌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 성모님이 자신의 영혼 안에 항상 활동하고 계신다는 의식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레지오 교본 48쪽). 우리도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 성모님께서 항상 내 안에서 활동하신다는 의식과 함께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레지오 단원으로서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충실한 신앙인으로서, 레지오 단원으로서, 성모님의 모범을 본받아 “성화를 통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레지오 교본 27쪽) 것입니다. 
정민이는 자신의 전부를 다른 이들에게 주면서 하느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우리도 자신의 사명을 성모님의 도우심에 의지하며 성실히 수행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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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9-15일(연중 제5주간)
구원으로 부르심

루카복음 19,1-10은 세리 자캐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큰 도시 예리코를 지나가시게 되었는데, 키가 작았던 자캐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은 열망에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갑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자캐오의 열망을 알아차리시고,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당시 동족들에게 무척 멸시받았던 자캐오, 예수님께서 그의 가장 간절한 소망이었던 사람대접을 해주시자 기쁨에 가득 차 재산의 반을 선뜻 내놓습니다. 여기서 부드러움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곧,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세상과 인간을 인내와 너그러움, 자비로 대하신다는 것을 자캐오에게 체험하게 하심으로서 스스로 회개하고 믿음의 길로 돌아오게 하신 것입니다.
루카복음 5,1-11은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던지자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가 잡혀 그들은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어부였던 세 사람, 아마도 자신들이 살아온 인생에 대하여 묻지 않으시고 귀한 사람대접을 하시는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을 체감하였을 것입니다. 곧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하느님 자비의 부드러움으로 우리 모두를 당신 구원의 길로 부르십니다. 성모님은 우리가 이 부르심에 회개의 용기를 지니고 아드님을 따르도록 이끄십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성모님을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협력자, 즉 은총의 중재자로서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에 협력하시는 공동 구속자로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리스도와 닮은 분이라고도 선언’”(레지오 교본 72쪽)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레지오 단원은 아드님께로 향하시는 성모님의 이끄심에 따라 구원의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을 모든 이에게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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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22일(연중 제6주간)
희망의 순례자들

손희송 주교님의 저서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중 30~31쪽의 일부 내용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의 나치 정권은 유다인을 말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모든 유다인을 한 장소(게토)에 모아들였다. 그러고는 그들을 강제 수용소로 이주시켜 죽이려 했다. 그때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의 한 게토에 갇혀 있던 유다인 청년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벽에다 이런 글을 남겼다. 
‘태양이 비치지 않을 적에도 태양을 믿노라.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적에도 사랑을 믿노라.
하느님이 보이지 않을 적에도 하느님을 믿노라.’
이 글을 쓴 청년은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절망만이 남은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있었기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이런 희망의 빛을 간직할 수 있지 않았을까?”
모든 레지오 단원은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신앙인입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레지오 단원도 늘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살아가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든 희망을 견지하며 사는 것은 우리에게 지치지 않는 동력을 제공해 줍니다. 
“성실하신 동정녀께 봉헌되어 명예로운 때나 곤욕을 당할 때라도 그분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 우리 레지오의 봉사에 실패란 결코 있을 수 없다”(레지오 교본 35쪽). 그렇습니다. 희망을 안고 성모님께 의지하며 실천하는 활동은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눈에 만족스럽지 않을 뿐입니다. 
2025년 희년의 표어가 ‘희망의 순례자들’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창조주 하느님의 계획이 부족한 나 자신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기를 성모님의 모범대로 겸손하게 희망하고 기도하며 신앙의 순례 여정을 살아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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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3월 1일(연중 제7주간)
긍정과 겸손

하얀 종이에 검은 점을 10개 정도 찍은 후에 그 종이를 보라고 한다면, 여러분의 시선은 검은 점 10개에 머물기 십상입니다. 검은 점 10개보다 나머지 하얀 여백이 훨씬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데 말입니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우리의 사고, 관점도 훨씬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긍정보다는 부정에 더 많이 머물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긍정적인 사고는 다른 이에 대한 마음가짐도 다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레지오 교본 49~55쪽은 성모님의 겸손을 본받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레지오 단원이 성모님의 태도를 두루 살펴본다면, 자신이 하느님 앞에 어떤 존재인가를 인정하고 솔직히 받아들이는 것만이 참된 겸손의 본질임을 알게 될 것이다”(51쪽).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겸손하게 인정하는 데서 신앙인은 비로소 용서, 사랑이 가능하게 됩니다. 
용서와 사랑에 있어 ‘긍정’과 ‘겸손’은 매우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다른 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며,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자비와 용서에 대해서도 깨달아 다른 이를 용서하고 자비롭게 대하게 됩니다. 즉, 하느님께 받은 용서와 사랑에 응답을 하기 위해서 다른 이를 용서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긍정적인 사고가 다른 이의 결점을 보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게 하고, 겸손한 마음이 다른 이의 부족함을 탓하기보다 먼저 하느님의 자비를 닮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리셨던 어린 아드님을 다시 찾았을 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루카 2,49)라는 대답에도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2,50)하시며 신앙인다운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셨던 성모님, 구원 사업의 사명을 다하는 아드님께 한없이 겸손하셨던 성모님, 우리는 성모님의 모범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모범을 따르며,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의 실천이 레지오 단원으로서 하는 모든 활동의 중심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