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적에 세례를 받았고, 나이는 69세이며, 43년 전 서울 명동에 있는 샬트르 바오로 수녀회에 입회하였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수녀원을 나와 결혼한 후 충북 진천성당에서 레지오와 신심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군단에서 ‘내가 만난 김수환 추기경님’에 관한 글을 모집한다는 것을 보고 김수환 추기경님과 만났던 잊지 못할 일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 글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저는 1981년 수녀원 입회 1년 차 수련기 시기 어느날, 저녁 식사 후 휴식 시간인데 원장 수녀님께서 저를 부르셔서 빠른 걸음으로 가보니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저녁 산책을 나오셨다가 수녀원에 탁구를 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운동을 좋아했고, 여고 시절 때부터 성당에서 언니, 오빠들과 탁구를 즐겨 쳤기 때문에 수녀원에서도 휴식 시간에 자주 치곤 하였습니다.
먼발치에서만 뵈던 추기경님과 탁구(단식)를 치려니 처음에는 어렵고 조심스러운 마음에 무척이나 긴장되었습니다. 그러나 추기경님 특유의 유머와 인자하심으로 바로 편안한 마음이 되어 그날 이후 1시간 정도씩 자주 탁구를 쳤던 뜻깊은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그때 저와 함께 탁구를 쳐주셨던 추기경님은 완전히 예수님을 닮은 소박한 모습으로 저에게는 너무나도 감동적이었기에 아직도 생생하게 마음 안에 남아 있습니다.
유치원 어린이가 그린 추기경님의 인물 그림 밑에 ‘바보 아저씨’라고 적어놓은 제목이 참 마음에 들어 이내 별명으로 줄곧 쓰고 계시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얼마나 추기경님께서 모든 이를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주고 계시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명동성당 교육관에서 성소주일에 즈음하여 많은 젊은이들에게 열강을 하시는 자리였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 독실한 가톨릭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셨고 철학을 전공하셨으며, 대학 시절 만나는 여인이 있어 결혼하고 싶으셨는데, 모니카 성녀께서 아들 아우구스티노를 위해 전력을 다하여 헌신하였듯이 추기경님 어머님의 염원과 간절한 기도로 사제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공동번역 필리 1.21)
또한 신앙인의 마음 자세에 관하여 역설하셨습니다.
첫째, 신앙인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하느님을 뵐 수 있기 때문에 결백해야 합니다.
둘째, 인간 본연의 자세로, 즉 영혼이 무아 경지로 내려갈 수 있도록 겸손해야 합니다.
셋째,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 가장 걸작품이 사람이므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넷째,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듯이 매일 기도하며 용서하고 용서받아야 합니다.
다섯째, 예수님께서 하늘나라 복음을 전하신 첫 말씀이 회개입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가는 나쁜 버릇을 어떠한 대가를 치러서라도 뿌리 뽑고 개과천선(회개)해야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첫째~다섯째 내용은 메모를 참조함, 1981년도 말씀)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라.
내 입에 늘 그분에 대한 찬양이 있으리라.”(시편 34,2)
신앙인의 마음 자세는 말만 하면 척척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넘어지면 또 일어나는 칠전팔기의 끈질긴 노력이 있어야 승리하여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항상 모든 이의 참 평화를 원하시던 추기경님께서 2009년 선종하신 이후 각막기증을 통해 남김없이 내어주신 사랑의 실천과 모범을 닮아 2010년 저도 남편과 함께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 장기기증을 신청하였습니다.
이런 지면을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