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우리 원주교구 성지순례팀(안흥성당 주임신부 조규정 알렉산델)이 파티마에 도착한 첫날 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성모 발현 기념 경당 안에서 묵주기도만 드리고 아쉽게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둘째 날 아침, 성모 발현 기념 경당에서 한국 순례객 세 팀이 함께 미사 드리기로 예약되어 있었다. 20년째 그곳에서 한국인 순례객들을 돕고 계시는 한국 수녀님께서 우리 인솔자에게 미사곡을 준비해 오라고 하셔서 우리는 선정한 미사곡을 전날 버스 안에서 연습하여 갔다.
미사 5분 전, 수녀님께서 오셔서 “혹시 성가대 하신 분 계시나요?”라고 물으시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손을 안 들어 내가 손을 들었다. 수녀님은 반가워하시며 내 손을 잡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셨다. 수녀님은 오르간 옆 마이크 앞에 세우시더니 광장에 모인 여러 나라 사람이 한국 성가를 들을 수 있도록 힘차게 부르라 말씀하시고는 오르간을 연주하셨다.
나는 얼떨결에 마이크 앞에서 입당성가 426번 ‘주님의 집에 가자 할 때’를 온 힘을 다해 불렀다. ‘알렐루야’를 노래하고 봉헌 성가 후 ‘거룩하시다’를 노래하고 성체 성가, 파견 성가까지 부르고 나니 긴장이 풀려 다리가 후들거리고 기진맥진하였지만,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하였다.저녁 9시, 촛불을 든 사람들이 경당으로 모여들었고 경당이 꽉 차자 광장에까지 모여든 사람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친 후 넓은 광장을 행렬하였다. 나는 그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너무나 벅찼다. 예전에는 묵주기도를 바치며 파티마 구원송을 할 때, 책에서 읽은 대로 성모님께서 떡갈나무 위에 발현하시어 세 목동에게 말씀해 주시는 장면을 떠올렸었다. 그런데 이젠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장소에 세워진 경당에서 드린 미사와 밤 9시에 촛불 들고 “아베마리아”를 외치며 드렸던 묵주기도와 행렬했던 광장에서의 감동이 떠오른다.
10월 15일에는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에 맞춰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생가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생전에 성녀께서는 수도회의 발전을 위한 개혁에 힘쓰고 수도 생활 및 영성 생활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남기셨다고 한다. 우리는 그분께서 선종하신 가르멜 수도원 대성당에서 그분 팔과 심장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였다.
글자를 몰랐던 스페인 사람들에게 성당 외부의 조각을 통해 예수님을 전하려 했던 천재 가우디의 성가족 성당과 구엘 공원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소문으로만 들었던 몬세랏 수도원의 검은 성모님 뒤 경당에서 미사 봉헌 후, 검은 성모님을 알현하는 영광을 누렸다.
국립공원 안의 피에트라 수도원, 아름다운 대자연에서의 야외 미사, 구름 위의 후니쿨라, 그 옛날 수도사들이 기도하며 생활했던 공간에서 우리도 숨 쉬고 기도하고 먹고 자며 우리 모두의 가정을 봉헌하던 기억들이 지금도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이제 이 꿈에서 깨어나야 하지만 오래오래 간직하며 꺼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