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본 다시 읽기
레지오 교본 다시 읽기를 시작하며
박준양 세례자 요한 신부 서울 무염시태 Se. 전담사제

필자는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International Theological Commission) 제9대(2014-2020) 및 제10대(2021-2026) 위원으로 보편교회 차원에서 활동하는 동시에, 국내에서는 2023년부터 한국 레지오 마리애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의 영적 지도자 직무를 맡아 수행하면서 한국 레지오 마리애 역사를 살펴보며 깊은 성찰을 해볼 수가 있었다. 
앞으로 이 ‘교본 다시 읽기’ 꼭지를 통해 연재하게 될 글은 레지오 교본을 다시 읽으며 그 내용에 대해 성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현재의 교본에 대한 신학적 및 사목적 차원의 반성을 통해 거기에 어떠한 핵심 요점과 더불어 어떠한 쟁점이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처럼 교본에 대한 신학적, 사목적 차원의 재성찰 필요성을 제시하는 이유는, 교본에 담긴 신심의 직관과 풍요로움을 조금이라도 감소시키려는 것이 전혀 아니며, 오히려 그에 대한 발전적 고찰을 통해 보다 완성된 차원의 교본이 되게끔 하려는 목적에서이다.
한국 가톨릭교회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레지오 활동을 기반으로 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 나가고 있다. 따라서 한국 교회에서는 레지오가 단순히 하나의 신심 운동에 그치지 않는다. 그래서 한때는 한국에서 가톨릭교회의 신자가 된다는 것은 곧 레지오 단원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까지 말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 교회의 성장과 발전에 있어 레지오 마리애 운동과 조직의 공헌이 지대한 그만큼, 레지오 신심이 올바른 신학적, 사목적 기반 위에 있어야 함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현재의 교본이 한국에서 레지오 마리애의 발전을 위해서 절대적인 공헌을 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과거의 것에만 무조건적으로 얽매여 있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있기 어렵다. 성장을 위해서는 항상 쇄신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이제는 레지오 교본의 공헌을 존중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교본이 지닌 문제들에 대하여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제 교본이 지닌 문제들을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
현재의 레지오 교본에서는 원문의 의도와 달리 잘못 번역되거나 정확하지 않게 번역된 부분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때로는 지나치게 문어체적으로 또 과거의 어법으로 번역된 부분도 많아서, 전반적으로 새로운 수정 번역본의 발간이 절실히 요구된다. 정확한 번역과 적절한 문체를 통해 새 번역본을 마련하는 것은 이제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당면한 주요 과제이다. 특히 단원들의 급속한 고령화 속에서 젊은 층 신자들의 레지오 입단을 권유하기 위해서도 이는 매우 필요한 과제이다. 그런데 교본 자체가 신자들에게 낯설고 어렵게만 느껴진다면 이는 입단 권유 작업의 노력을 반감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나아가, 현재의 교본에는 단순히 그 번역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점들이 있다. 그것은 원문 자체의 일부에서 발견되는 신학적 모호함과 부정확함, 그리고 현재의 한국 상황과는 동떨어진 내용들이 안고 있는 사목적 차원의 문제들이다.
레지오 교본의 기본 취지와 요점을 잘 이해하면서도, 신학적 차원에서 문제가 있거나 현재의 사목적 상황에 잘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한 수정 논의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질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계속 고민해나가야 할 것이다. 필자가 세나뚜스 영적 지도자직을 맡은 이후에 많은 교우들과 만나서, 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입각한 신학교 교육을 받은 많은 사제와 만나서 레지오 마리애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던 결과, 교본 일부의 신학적 문제점과 현재의 사목 상황과 잘 부합되지 않는 부분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계속되고 있기에, 필자는 이제 이러한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할 수만은 없다고 판단해 이처럼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교본의 수정을 통해 완성도를 높이는 과제만 잘 해결된다면 한국 교회 안에서 레지오의 더욱더 큰 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반대로, 만일 우리가 이러한 많은 분들의 지적과 제안을 간과하고 외면하기만 한다면, 한국 레지오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개별 전승인 교본은 복음의 빛에 비추어 쇄신되어야 한다
교회의 전승에는 불변하는 ‘신앙의 유산’인 거룩한 전승인 ‘사도전승’과 ‘개별 전승들’이 있다. 사도전승은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불변하는 거룩한 전승을 가리킨다. 이에 비해, 많은 개별 전승은 교회 역사의 특정한 시대나 지역과 공동체 안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전승들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성전(聖傳)과 교회 역사의 특정한 시대, 또는 수도회나 특수한 지역 교회들 같은 특정 지역과 공동체들에 속하는 전승들을 구별한다. 전승(Tradition)과 전승들(traditions) 사이의 이러한 구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 신학의 주요한 과제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또 신학 전반의 과제가 되었다.”*
교회 안의 개별 전승의 경우, 거기에는 본질적 타당성이 있지만 항상 복음의 빛에 비추어져서 수정되고 쇄신되어 보존될 필요성을 지닌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는 ‘교회 헌장’ 제8항을 통해, “자기 품에 죄인들을 안고 있어 거룩하면서도 언제나 정화되어야 하는 교회는 끊임없이 참회와 쇄신을 추구한다”라고 강조한다.
만일 이처럼 복음의 빛에 비추어진 쇄신의 의무를 게을리할 경우, 그 전승들은 ‘허약해진 전승’이나 ‘전승의 왜곡’이 되어 심지어 어떤 것들은 이제 폐기되어야 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교회 안에서 “과거 전승의 어떤 측면들은 버려질 수 있고 때로는 버려져야만 한다는 것이 사실”(‘오늘의 신학’ 79항)이다. 이처럼 교회 역사 안의 개별 전승들(traditions)은 사도적 전승(apostolic Tradition)에 비추어 ‘강화’나 ‘수정’ 혹은 ‘폐기’가 가능하다. 개별 전승에 대한 비판적 성찰은, 그 전승이 오늘날 교회의 살아 있는 신앙에 맞갖고 상응하게끔 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다.
“사도적 전승 자체에 대해서 비판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전승들(traditions)은 언제나 비판에 개방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럼으로써 교회가 필요로 하는 ‘끊임없는 개혁’이 가능하게 되고, 또한 교회가 자신의 유일한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를 토대로 하여 항구한 자기 쇄신을 거듭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오늘의 신학’ 31항)
레지오 교본은 사도전승이 아닌 개별 전승이기에, 본질적 타당성은 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언제나 복음의 빛에 비추어 쇄신되어야만 한다. 이제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레지오 교본을 다시 읽어보기로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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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International Theological Commission), ;'오늘의 신학: 전망, 원칙, 기준'(Theology Today: Perspectives, Principles, and Criteria), 손희송, 박준양, 안소근 옮김,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2012, 31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