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러시아 혁명을 역사적 배경으로 한 동물 우화가 있다. 1945년에 조지 오웰이 쓴 ‘동물농장’이다. 이는 농장에 살던 동물들이 가혹한 생활에 못 이겨 주인을 쫓아내고 직접 농장을 운영하게 되지만 혁명을 주도했던 권력층의 독재로 농장이 부패해 버리는 이야기이다.
여기에 지배 집단으로 돼지들이, 피지배 집단으로 여러 동물이 나온다. 말인 복서는 힘 좋고 우직하며, 농장을 위해 제일 먼저 희생하는 등 다른 동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둔하여 조직의 구조적 문제를 알지 못하고 무조건 지배자에게 충성하여 이용만 당한다. 당나귀 벤자민은 지성이 있어 농장이 부패해 가는 것을 알지만 위험이 두려워 조직에 반항하지 않는다. 결국 복서는 열심히 일하다 다쳐 도살장으로 팔려 가고, 복서를 좋아했던 벤자민은 그제야 발을 동동 구르지만 이미 돼지들의 독재는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유럽의 경제와 역사를 연구한 이탈리아 경제사학자인 카를로 치폴라(Carlo M. Cipolla)는 1976년에 인간과 사회에 실제로 존재하는 위협인 ‘어리석음(stupid, 멍청함 혹은 바보 같음)’에 대한 에세이를 썼다. 이 글은 입소문을 타고 공식 출판되었고, 국내에서는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법칙’(미지북스)으로 출간되었다. 그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이익을 기준으로 인간을 4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다.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현명한 사람 △타인에게는 이익을 주지만 정작 자신은 이익이 없거나 해를 입는 부족한 사람(순진한 사람으로 번역되어 있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영악한 사람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해를 끼치는 구제 불능의 어리석은 사람(stupid people)이 그것이다.
‘어리석은 개인’은 지상에서 가장 위험한 유형
치폴라 교수는 특히 어리석음에 대해 법칙으로까지 표현하며 그에 대한 경계를 강조한다. 1법칙, 항상 우리는 주위에 있는 어리석은 자들의 수를 과소평가한다. 2법칙, 어떤 개인이 어리석을 확률은 그 개인이 지닌 다른 어떤 특성들과도 무관하다. 3법칙, 어리석은 자란 그 자신은 어떤 이득도 얻지 못하거나 손실을 보아도 다른 개인이나 집단에 해를 끼치는 개인을 말한다. 4법칙, 어리석지 않은 개인들은 어리석은 개인들이 보유한, 해를 끼칠 수 있는 잠재력을 항상 과소평가한다. 특히 어리석은 개인과 거래하고 관계를 맺는 것은 틀림없이 아주 비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언제나 망각한다. 5법칙, 어리석은 개인은 자기만 아는 영악한 자보다 훨씬 위험하여 지상에서 가장 위험한 유형이다.
치폴라 교수는 2법칙에서 어느 집단에나 어리석은 사람의 비율이 일정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집단의 번영이나 쇠퇴를 좌우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현명한 사람들의 수’에 있다고 보았다. 즉 역사적으로 번영하는 사회는 현명한 사람들의 비율이 특별히 높았다. 반면 쇠퇴하는 사회는 권력을 쥔 자들 속에서 ‘어리석은 요소가 강한 영악한 자’들이 증가하면서, 그들 무리의 파괴적인 힘이 강화되어 사회는 파멸로 치닫게 된다. 결국 집단이나 사회가 어리석은 자들로 인해 무너지지 않으려면 다른 사람들의 현명한 행동이 필요한 셈이다.
50대 K자매는 영세 후 입단하여 레지오가 신앙을 키워줄 정말 좋은 단체임을 알고 적극적으로 봉사하였다. 자연스럽게 꾸리아 회계가 되었지만 요즘 고민이 깊다고 한다. 쁘레시디움 간부일 때는 꾸리아 단장과 서기가 서로를 보완하는 듯 보였고, 둘 다 교사 출신으로 오랫동안 단원 생활을 했기에 레지오를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거라 기대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말한다.
“처음 단장과 서기의 껄끄러운 관계를 보고 당황했는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단장이 협의 없이 자기 생각만으로 지시하는 걸 넘어, 협의한 내용조차 말없이 자기 마음대로 바꾸더군요. 게다가 외부 평가에 민감한 듯 출석률이나 단원 수, 행사 참여자 수 등을 높이기 위해 지나치게 단원들을 다그치곤 했습니다. 서기의 견제에도 단장은 변하지 않고 심지어 사소한 거짓말이나 편법적 운영도 서슴지 않더라고요. 지금 서기는 열정도 의욕도 사라지고 사람도 싫어지면서 마음의 평화를 잃어가고 있지만 그저 공동체를 위한 책임감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저 또한 힘들어져 간부직 사직을 고민하고, 아쉽지만 탈단이라는 최후의 수단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봉사할 의향이 있다고 무조건 간부를 선출해서는 안 돼
소위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들 즉, 느닷없이 예측하지 못할 행동으로 우리를 어렵게 하는 사람을 만날 확률은 교회라고 다르지 않다. 가치 판단이나 선택 기준에 일관성이 없어 순간순간 자기 마음과 기분, 혹은 남의 말에 따라 행동하고 결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그런 사람에게서 말과 행동의 논리성이나 증거를 바탕으로 한 비판적 사고를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러니 만약 그가 우두머리라면 그 단체나 개인은 중대한 위기를 맞은 것이다.
교본에 “영신적 단체의 간부를 뽑는 선거라고 해서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선거는 엄격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실시해야 하며 투표지의 비밀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235쪽)라고 되어있다. 이는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한 장치이다. 하지만 봉사자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봉사할 의향이 있다고 무조건 지지하여 선출한다면 그것은 빤한 위험 속에 뛰어드는 꼴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단체 구성원 전체에게 미칠 것이고, 그 책임은 평의원 모두에게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미 우두머리가 어리석은 자라면 쉽지 않으나 그들을 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먼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그가 아닌 그의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우리 또한 완전한 인간이 아니니 다양한 관계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우리 안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들의 어리석음은 서로 보완해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회가 존재하는 오직 하나의 이유는 –중략-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나누어 주려는 것”(교본 470쪽)이니 그들 또한 구원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다. 단체에서 어리석은 자들을 제외하고 싶은가? 그것은 악이 좋아하는 분열을 조장할 뿐이다. 반대로 나의 어리석음이 이웃들에게 악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에 괴로운가? 그렇다면 성녀 소화데레사의 말을 기억하자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자신의 약점을 깨닫도록 만들어 주심으로써 훨씬 더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십니다. 이는 괴로워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할 일입니다.”(교본 427쪽)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도와주고 마음을 쓰며 기도하라’고 하신 바오로 성인의권고를 기억하라.’(교본 2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