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터전_대전교구 황무실 성지
박해에도 신앙 꽃피운
내포 교회 중심지
김명이 아녜스 대전 Re.명예기자
20241223142431_1528886329.jpg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아침이면 충남 당진의 신합덕성당(주임신부 박민균 요셉) 신자들은 성당에서 4.7km 거리를 걸어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황무실 성지에서 미사를 드린다. 
20241223142431_1581121190.jpg‘황무실’은 1791년 신해박해 이전부터 1868년 내포에서 2천 명 가까운 신자가 순교한 무진박해까지 공동체를 이룬 유서 깊은 곳으로, 인근의 신리 교우촌과 더불어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거주하며 사목한 내포 교회의 중심지로 고증되었다. 100여 명의 신자가 거주했던 황무실 교우촌은 박해 초기부터 끊임없이 순교자를 배출하였고, 박해 중에 활동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의 은신처가 되었다. 이 때문에 프랑스로부터 도입된 영해회(일명 성영회, 오늘날의 보육원) 사업이 일찍부터 시작되어 고아들을 입양하여 가족으로 삼았다. 
이곳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 중 메스트르(이요셉, 1808-1857) 신부와 랑드르(홍요한, 1828-1863) 신부가 전교 도중 1857년 12월 20일과 1863년 9월 16일에 각각 병사하여 뒷산에 나란히 안장되었다. 메스트르 사제가 선종하자 박해 시대에도 황무실 교우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한밤중에 300여 명이 모여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이후 두 신부의 유해는 1970년 합덕성당 구내로 옮겨졌다가 2003년 대전가톨릭대학교 성직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메스트르 신부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 신학생의 스승이었다.

황무실 교우촌은 박해 초기부터 끊임없이 순교자 배출
한편 황무실에는 서양 선교사들이 조선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던 이른 바 ‘유모집’이 있었다. 충청도 내포에 머물며 다블뤼 주교에게 한국말을 배운 뒤 황무실에 부임하여 전교하고 성사를 집전한 성 위앵(1836-1866) 신부는 1866년 3월 11일 다블뤼 주교가 체포되자 자수하여 다블뤼 주교, 오메트르(1837-1866) 신부와 함께 서울로 압송되었다. 갖은 고문을 겪은 뒤 3월 30일 갈매못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아 30세의 나이로 이 땅에 신앙의 씨앗을 뿌리고 주님의 품에 안겼다.
황무실의 첫 순교자로 기록된 이보현 프란치스코(1773-1800)는 1800년 1월 9일 해미에서 27세 나이에 장살로 순교했다. 뒤이어 유군명 시메온(82세)과 전 베드로가 1801년과 1839년 순교했는데, 초기 신자로 알려진 유군명 시메온은 입교 후 종들을 면천해 주며 일찍부터 하느님 안에서 평등을 실현했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이 홍주, 해미에서 순교하였다.
황무실 성지와 직선거리 약 2km의 응정리(현 성동리) 우물터는 1793년 1월 28일 61세에 홍주 옥에서 동사형으로 순교한 복자 원시장 베드로와 원시장의 사촌으로 1799년 3월 3일 순교한 복자 원시보 야고보의 생가터이다.

이보현 프란치스코 시복을 계기로 성지 조성 본격화
황무실은 1866년 병인박해 때 교우촌이 완전히 붕괴하고, 이웃한 면천과 합해 70여 명이 순교하면서 역사 속으로 묻혔다. 그러다가 신합덕성당 신자들이 메스트르 신부와 랑드르 신부의 묘소를 찾았고, 1970년 이전까지 합덕 교우들은 솔뫼 성지처럼 황무실을 신앙 선조들의 고향으로 생각해 자주 순례하며 선교 사제와 교우들의 묘지를 보살폈다. 
1970년 4월 30일 메스트르 신부와 랑드르 신부의 묘를 합덕성당으로 이장하면서 황무실은 교우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돌보지 않는 순교사적지가 되었다. 신합덕성당 관할로 지정은 되었으나 한동안 농지로 사용되면서 사람들에게서 잊혔다.

20241223142431_1109143251.jpg

황무실 순교사적지는 2008년 8월 15일 대전교구 청소년대회를 시작하며 실시한 도보 성지순례 출발지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2014년 신합덕성당은 해미에서 순교한 이보현 프란치스코가 살았던 옛 황무실 교우촌 부지 93평(충남 당진시 합덕읍 석우리 1013번지)을 매입했고, 이보현 프란치스코가 그해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품에 오르자 성지 조성이 본격화됐다. 그 당시 신합덕성당 정성용 세례자 요한 신부, 김문수 야고보 신부에 이어 현재 박민균 요셉 신부에 이르기까지 전 신자가 일심동체로 성지를 조성했다. 그 결과 같은 해 11월 29일 당시 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 주례로 황무실 성지 및 순교자 현양비 축복 미사를 봉헌했다.
당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얕은 구릉 지대에 있는 황무실 성지는 중앙 제대 뒤 4m 높이의 순교자 현양비를 중심으로 왼편에 예수 그리스도상, 오른편에 성모상이 두 팔 벌려 순례자들을 반긴다. 넓은 잔디광장은 물론 주변 곳곳이 정성 어린 손길로 잘 가꾸어져 있다. 성지 둘레에는 십자가의 길이 조성되어 있고, 현재 참나무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은 메스트르 이요셉, 랑드르 홍요한 두 사제의 묘가 있었던 장소이다. 
황무실 성지에서는 2014년부터 매월 첫째 주 토요일 11시에 미사를 드리며, 7~8월, 12~2월은 신합덕성당에서 11시 미사를 드린다. 넓은 주차장과 쉴 수 있는 정자가 있다.

--------------------------------------------
◇ 대전교구 황무실 성지(충남 당진시 합덕읍 석우리 1013)
▶찾아오시는 길
합덕 터미널에서 택시 이용(10분 거리, 5.2㎞)
▶미사 안내: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신합덕성당에서 9시 출발, 도보순례로 황무실 성지에 도착 후 11시 성지 미사(그 외 성지 미사 없음)
▶신합덕성당: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굴미2길 40(전화 041-362-5947)
<사진설명(위로부터)>
- 황무실 성지 전경, 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상, 순교자 현양비, 뤼드박 성모님상
- 신합덕성당에서 황무실 성지까지 도보순례하는 신자들
- 참나무 숲 앞에서 보이는 황무실 성지
- 순교자 현양비 축성(2014.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