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
왜 마리아가 중요한가요?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 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마리아는 예수님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후 친척 엘리사벳을 방문합니다. 두 여인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적극 협조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마리아를 만난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의심하지 않았고, 본인의 경험에 근거해서 하느님이 개입하셨음을 추측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된 분이라는 축복의 말을 전합니다(루카 1,42).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 중에는 뱃속의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의 만남도 이루어집니다. 요한은 하느님께서 준비시킨 사람입니다. 그의 사명은 하느님 백성이 주님을 맞이하도록 준비시키는 선구자 역할입니다. 
두 여인의 만남을 통해 선구자와 메시아의 만남, 주님의 백성과 주님의 만남이 시작됩니다. 엘리사벳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구약의 옛 하느님 백성을 상징합니다. 엘리사벳과 요한을 통해 옛 하느님 백성이 새 하느님 백성과 연결됩니다. 마리아는 새 하느님 백성의 시작을 알립니다. 마리아의 잉태와 출산은 새로운 계약, 즉 신약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극적으로 이뤄지는 시점에 두 여인의 적극적인 응답과 협력은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신앙이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바라고 돕는 것이 신앙입니다. Non mea, sed Tua!(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수난 전날 밤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것처럼, 내가 이해할 수 없어도 하느님의 말씀과 뜻이 분명하다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이 신앙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리라는 천사의 말에 몹시 놀랐고, 두려워하였으며,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복음서는 전하고 있습니다(루카 1,29-30). 그래서 마음속에 “곰곰이 생각하였다”(루카 1,29)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도할 시간, 그리고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합니다. 신앙인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분명하다면, 하느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언제나 “예!”하고 받아들이는 모습이 중요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는 방법은 순종, 순명하는 것
사제서품식에서 서품 후보자들은 ‘정결’과 ‘순명’을 서원합니다. 수도자들은 이 두 가지에다가 ‘청빈’ 서원까지 합니다. 정결과 순명과 청빈, 이 세 가지 모두 실천하기 어려운데, 저 역시 사제로 살다 보니 세 가지 모두 쉽지 않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합니다. 특히, 처음에는 순명 서원이 비교적 지키기 쉽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순명은 겸손에서 출발합니다. ‘겸손’이라는 뜻의 라틴어 단어인 ‘후밀리타스(humilitas)’의 어원은 ‘흙’을 의미하는 ‘후무스(humus)’입니다. 즉 겸손이란 인간의 본질이 흙에서 왔다는 것을 기억하고, 흙처럼 가장 낮은 바닥에 위치해서 다른 모든 것을 우러러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즈카르야처럼, 엘리사벳처럼, 그리고 마리아처럼 하느님 말씀에 “예!”하고 신앙적으로 겸손하게 순종했을 때 하느님의 구원 은총이 우리 안에 자라게 됩니다.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주님 탄생 예고’(=성모영보, 개신교에서는 ‘수태고지’)를 들으셨을 때 성모님은 스스로 가난하고 비천한 종이라 고백하셨습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방법,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는 방법이 바로 이렇습니다. 하느님 말씀 앞에서 겸손하게 신앙적으로 순종, 순명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이 믿음을 통해 하느님의 선택과 약속을 받게 된 것처럼, 마리아도 믿음을 통해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 7,114). 구약의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주어진 구원 약속이 신약의 마리아를 통해 성취됩니다. 예언이 실현되고, 구원의 새 시대가 시작됩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는 이 말씀은 예수님 탄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혀 주는 것이고, 동시에 마리아의 미래, 그리고 믿는 이들의 미래가 어떠할지 알려줍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는’(임마누 Immanu) ‘하느님’(엘 El)이십니다. 인간과 함께하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은 구약에서도 하느님의 사명을 부여받은 이들에게 내려주신 말씀입니다(참조 판관 6,12; 1역대 22,11.16). 마리아를 통해서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확약하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이는 마리아의 응답이었고, 동시에 믿는 이들과 교회의 응답이어야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주님 탄생 예고 중 이루어진 마리아의 “예!”를 설명합니다. 구약의 하와와 신약의 마리아, 죄와 구원, 불순종과 순종, 죄와 자유의 관계를 비교하면서 인류 전체의 역사 안에서 마리아가 지닌 중요함과 탁월함을 이야기합니다(‘교회헌장’ 56항).

성모님의 모습 안에서 그리스도교 신학과 신앙의 핵심 발견
마리아를 통해 이루어진 구세주의 탄생 사건 전체의 주인공은 당연히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처녀를 선택하셔서 그 처녀를 어머니가 되게 하시고, 그 여종을 모든 이들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은총이란 무엇이고, 구원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대답에서 마리아는 우리에게 중요한 모범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의 구원계획과 은총 앞에서 우리는 마리아처럼 ‘신앙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구원의 시작은 하느님에게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혼자서도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으시지만, 인간의 순응하고 협력한다면 은총을 체험하고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과 신심은 대단합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 내에서 성모 마리아는 신앙적으로도, 특히 신학적으로도 중요합니다.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무엇하는 곳인가에 대한 대답을 가톨릭교회는 어머니이자 동정녀이신 마리아의 모습에서 찾습니다. 마리아가 신앙을 통해 그리스도를 품었던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그리스도인들을 신앙과 세례로 품습니다. 동정녀 마리아가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고 따른 것처럼, 교회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따라야 합니다.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고 기른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을 낳고 기릅니다. 이처럼 오직 그리스도만을 추종하는 동정녀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교회의 본질과 역할은 마리아의 모습에서 해답을 찾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몸에 품고, 평생 예수님과 함께하며 따르는 마리아의 모습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범이고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가톨릭교회는 성모님의 모습 안에서 그리스도교 신학과 신앙의 핵심을 발견하고 있고, 성모님을 통해 더 깊은 신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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