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상황
기원전 760-750년 북이스라엘을 예로보암 2세가 다스리고, 남유다를 우찌야가 통치하던 시절에 근동 지역의 절대강자로 군림했던 아시리아는 내부의 혼란으로 주춤하며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이런 틈을 타 예로보암 2세는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에 맞닿아 있던 시리아(아람)를 몰아내고, 여호아스 임금 시대에 빼앗긴 땅을 되찾아 이스라엘의 영토를 거의 다윗 시대만큼 확장합니다. 또 인접 지역과 활발한 국제 무역을 통해 북이스라엘은 유례없는 국가적 안정과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선물로 주어진 평화의 시기를 맞아 국가 내부적으로도 하느님 뜻에 충실하며 모든 백성에게 평화와 안정이 고르게 분배되었으면 좋았으련만 안타깝게도 안정과 번영은 내부적 부패와 타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임금과 지도자들은 풍요와 향락에 빠져들었고, 지주들의 착취 때문에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의 사람은 억압과 학대 속에 살아야 했고, 부의 양극화 현상이 사회 구조적 악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성문 앞 광장에는 재판하는 관리들이 뇌물의 수준에 따라 판결을 달리했고, 고리대금업자들은 부채를 진 사람을 노예로 삼는가 하면 담보를 강제로 압류하기도 했습니다. 나아가 정성스러운 예배가 행해져야 할 성소는 사제 계급과 부르주아의 결탁으로 종교는 관료적 국가종교로 변모하였고, 예배는 껍데기뿐인 허례허식으로 채워졌습니다. 번영과 안정이 오히려 무서운 해악과 치명적 독이 되어버린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아모스를 부르심
북이스라엘이 이런 위기 속에서도 자신들의 안정과 번영이 지속되리라 믿고 있을 때, 남유다의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17km 정도 떨어진 작은 산악 마을 트코아에서 목양업에 종사하던 아모스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내립니다.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7,15) 마치 ‘사자가 포효’하는 것 같은 하느님의 명령에 사로잡힌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의 중앙 성소 베텔 한복판에서 하느님의 신탁을 전합니다.
마치 남한에서 양을 기르던 사람이 북한의 평양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잘못을 꾸짖고 멸망이 임박했다고 선포하는 것에 비길 만한 상황입니다. 그러니 이 말을 듣는 북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제도권 사제들은 미칠 노릇입니다. 그래서 베텔의 사제 아마츠야는 아모스를 공공질서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반역자로 몰며 남유다로 추방하려 합니다.
아모스의 신탁 : 질책과 심판의 경고
예언자가 고발한 이스라엘의 주된 잘못은 사회에 팽배했던 부정과 불의였습니다. 특히 강하게 비판하는 죄목 한 가지는 가난한 이들의 희생으로 누리는 상류층의 사치입니다.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들은 종으로 팔려 갔고(2,6 참조), 부유한 이들은 “상아 침상 위에 자리 잡고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6,4) 향유를 바르고 술을 퍼마시며 흥청거렸고, 사마리아의 부유층 여인들은 “우리가 마실 술을 가져와요.”(4,1)라며 사치와 향략을 즐겼습니다. 권세 있는 이들의 집에는 술과 음식이 넘쳐났고, “너희는 의인을 괴롭히고 뇌물을 받으며 빈곤한 이들을 성문에서 밀쳐 내었다.”(5,12ㄴ)라는 말씀처럼 세상의 정의를 세워야 할 재판마저 올바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모스 예언자는 아직도 이스라엘이 건재하다고 믿는 이들에게 겉으로는 평화롭게 보이지만 속은 모조리 썩어 있다며, 이스라엘의 죽음을 선고하는 애가(哀歌)를 부릅니다(5,2). 그러면서 불의한 재판을 일삼는 자들에게 “그들은 성문에서 올바로 시비를 가리는 이를 미워하고 바른말 하는 이를 역겨워한다.”(5,10)라는 말로 질책하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며 가난한 이를 착취하는 이들에게 “너희가 힘없는 이를 짓밟고 도조를 거두어 가니 너희가 다듬은 돌로 집을 지어도 그 안에서 살지 못하고 포도밭을 탐스럽게 가꾸어도 거기에서 난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5,11)라고 고발합니다. 결정적으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정녕 나는 너희의 죄가 얼마나 많고 너희의 죄악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다.”(5,12)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피할 수 없는 심판이 다가왔음이 두 개의 환시로 예고되자, 아모스는 “주 하느님, 제발 용서하여 주십시오.”(7,2) “주 하느님, 제발 멈추어 주십시오.”(7,5)라고 하며 이스라엘을 위해 전구하였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간청을 받아들이십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세 개의 심판 환시에는 아모스의 전구조차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이제 이스라엘에게 임박한 멸망만이 남아있음을 예고합니다.
현재 북이스라엘의 삶이 죽음과 멸망을 불러들이고 있음을 예언하며, 아모스는 하느님께 전구하여 심판을 막아보려 했지만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결국 파국과 멸망을 해야만 잘못을 깨닫고 구원으로 돌아설 수 있는 것이 인간임을 보여줍니다.
의덕(정의)의 거울이신 성모 마리아
아모스의 이야기를 들은 지금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바라봅니다. 사회 제도와 구조 속에서 불균등한 부의 분배, 아쉽기만 한 사법부의 판단, 더디고 편파적인 입법부의 결정은 아모스 시대의 북이스라엘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여전히 사회의 모순 부조리, 권력자들의 부정부패, 가진 자들의 사치와 향락은 끊이지 않고 있으며, 너나 할 것 없이 개인주의에 중독되어 “남이야 어찌 되든 간에 나만 잘 먹고 잘살면 된다.” “지구야 어떻게 되든지, 지금 당장 편한 게 좋다.” “다른 나라에서 사람이 굶어 죽든, 전쟁이 지속되든 나와는 상관없다.”라며 자신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 여러분! 우리는 “의덕(정의)의 거울이신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그분의 삶을 따르는 군단의 일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 내가 사회 지도자층이 되어 법을 바꾸고, 정책을 개선할 수는 없지만 지금 각자 삶의 자리에서 ‘너를 배려하고, 너를 먼저 돌보고, 너를 지지하는 것’으로 정의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모님이 바라시는 우리의 모습이자, 이 시대의 아모스로 살 수 있는 길이 아닐까요?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5,24)라고 하신 하느님의 말씀이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을 통해 이 땅에 실현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