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기자로서 특별한 활동을 하는 분을 찾는다는 건 횡재한 느낌이다. 우리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많은 것을 잃기도 했지만 또한 얻은 것도 많다. 부산교구 평협회장을 역임한 도용희 토마스 아퀴나스 형제를 찾아서 하느님 안에 하나 되는 활동상을 알아보았다.
“저는 엄한 유교 집안에서 자랐고, 의과대학과 전공의 수련 시절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신앙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결혼 후 아내는 세례를 받았지만 저는 여전히 세속에서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서 누군가가 저를 성당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래서 집 근처 성당에 무작정 갔는데 그날이 마침 예비신자 환영식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다소곳한 성모님께서 저를 따뜻하게 맞아 주셨습니다. 곧바로 등록해 6개월간 빠짐없이 교리를 마쳤고 부활절에 세례받고, 병원 축복식도 함께했습니다. 저는 성령의 이끄심과 성모님의 전구라 확신합니다.”
그는 취미 겸 운동 삼아 달리기를 한다. 부산가톨릭마라톤동호회(가마동)에 가입하여 하프(21km), 풀코스(42km) 등 완주 메달만 해도 60여 개를 받았다. 그는 어느 날 가마동 담당사제의 권유로 울트라마라톤(100km)에 도전하게 되었다. 여름날 밤에 해운대를 출발해서 울산 진하해수욕장까지 돌아오는 코스였다. ‘달려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란 김수환 추기경의 친필 휘호가 새겨진 조끼를 입은 가마동 회원들과 한 무리를 이뤄 한 여름밤 무박 2일 철야기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준비해 간 묵주로 나에게 건강한 몸을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저의 완주를 위해 격려와 기도를 해주신다는 한 분 한 분을 기억하며 묵주를 돌렸습니다. 또한 주님께 지혜도 청했습니다. 텅 빈 내 안을 하느님께서 하나씩 채워주시리라 믿고, 힘을 얻어 달리리라 생각했지만 밤이 깊어 갈수록 잠이 쏟아지면서 거의 비몽사몽간에 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건 손에 쥔 묵주 알은 계속 돌고 있었어요. 머리로만 알던 신앙의 기쁨을 온몸으로 체득하며 환희와 빛, 고통과 영광으로 뒤범벅된 눈물을 흘리면서 끝까지 함께해주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와 찬미를 드렸습니다.”
‘우니따스’ 의료봉사단 조직해 음성나환자촌에서 진료 봉사
그가 신학원을 다닐 때 이찬우 요셉 원장 신부님과 무척산으로 등산을 가게 되었는데, 근처에 요셉 신부님이 삼랑진성당에서 사목했던 음성나환자 100여 명이 살고 있는 양지마을 루까공소가 있다고 했다. 전체가 신자는 아니지만 신부님을 그리워한다는 말을 듣고 의료봉사를 와도 되겠느냐고 물었더니 반신반의하면서도 승낙했다. 우연히도 신학원 동기 25명 중에 의사, 간호사, 약사, 임상병리사가 있었고, 뒤늦게 한의사도 합류하여 진료 봉사를 했다.
‘우니따스’라는 단체이름도 지었다. 우니따스는 라틴어로 ‘일치하다’라는 뜻으로 ‘하느님 안에 하나’라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다. 한 달에 한 번 7~8명이 가서 신부님이 드리는 미사, 진료 봉사, 이발 봉사, 교리 봉사, 나중에는 레크리에이션 봉사까지 꾸준하게 해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속되는 봉사에 가족처럼 믿고 마음을 열게 되었다. 제철 과일이며 유기농 채소로 식사 나눔도 했다. 2000년부터 시작한 봉사는 2020년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자연히 멈추었다. 코로나19 때 많은 분이 돌아가셔서 지금은 몇 분만 계시는데, 한 번씩 안부를 묻다가 병원에 그분들의 진료기록부가 있어 마을회장이 3~4개월에 한 번씩 약을 받아다 드리기도 했다. 지금은 한두 분밖에 없어 안타깝고, 사실 신부님 건강도 좋지 않아 모든 것은 기도로 대신한다.
온 가족, 지인들과 함께하는 복음 묵상 나누기
그는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매일 아침 ‘복음 쓰기’를 시작하였다. 미국에 있는 아들(니콜라오)과 며느리(크리스티나), 원주에 있는 딸(안나)과 사위(발렌티노), 손주들(노엘, 노아, 레아)까지 온 가족을 SNS 톡으로 초대하여 그날 복음으로 말씀 묵상과 기도 나눔을 일상화하게 되었다. 가족들이 비록 떨어져 지내지만 하루 일과를 말씀으로 시작하면서 일치된 사랑을 나눌 수 있어 너무 감사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노엘이 “할아버지, 그러면 성당미사는 어떻게 드려?”라고 물은 것을 계기로 복음 묵상 나누기를 시작하였다.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 모바일 복음 쓰기를 하고, 복음을 읽고 묵상하고, TV 미사의 강론 말씀을 들으며 6시 30분에 새벽미사를 드린다. 집에 오는 길에 라디오 강론을 듣고, 네다섯 분의 신부님 강론을 토대로 정리해 20여 명의 지인들에게 보낸다. 해외여행 중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보내다 보니 코로나19가 끝났는데도 계속하고 있다. 지금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된 노엘이 하루라도 빠지면 걱정한다. 할 수 있을 때까지 할 생각이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제가 영세 때 신앙 모토로 다짐했던 성구(聖句)입니다. 결혼 40주년을 맞는 아내 실비아가 요즘 저에게서 예전에 보지 못한 편안함과 여유가 느껴진다고 합니다. 굳이 얻은 것을 꼽으라면 성모님과 함께하는 우리 가정 안에 자연스레 자리한 ‘주님의 평화’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