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교구 청전동성당 희망의 모후 꾸리아 전 단장이었던 박행순 카타리나 자매님을 만났다. 반갑게 맞아 주시는 자매님께서는 수줍어 하시면서 40여 년을 레지오 마리애 행동단원으로 지낼 수 있게 도와주신 성모님께 감사하다고 하셨다.
어떻게 레지오 단원이 되었나
강원도 사북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결혼하면서 제천으로 오게 되었다. 시아버지께서 세례받는 사진을 보고 평소 천주교에 다니고 싶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의림동성당 예비자 초대의 날에 참여하여 6개월간 교리를 받고 1982년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는 기쁨을 받았다. 그 해 1982년 10월 22일 정의의 거울 Pr. 레지오 단원으로 입단하였고, 청전동으로 이사해 1988년 5월 로사리아의 모후 Pr.으로 이전했다. Pr. 여러 간부를 지내고 사랑하올 모후 꾸리아 서기를 하다가 희망의 모후 꾸리아가 설립되면서 단장을 지냈다. 현재는 위로자의 모후 Pr. 단장을 맡고 있다.
레지오 단원으로 오래 활동하며 특별한 성모님의 사랑을 체험하였다면서요
저는 오랜 시간 레지오 단원으로 활동해 오면서 성모님의 특별한 사랑을 체험하였다. 본당에서나 개인적인 레지오 단원으로서 환자나 교리 중단자, 쉬는 교우를 찾아 기도해 주었고, 입교 권면을 하면서 선교활동에 힘을 쏟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성모님의 은총 덕분이라 생각한다. 또 오늘날까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레지오 단원으로 함께 했던 많은 선종하신 단원들의 영혼이 늘 저를 기억해 주시고, 하늘나라에서 기도해 주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40여 년의 신앙생활을 하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롯이 성모님의 딸로서 기도하고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한 결과 우리 가족들과 이웃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인도할 수 있었다. 성모님께서 늘 함께해주셨기 때문이다.
레지오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1986년 11월 남편 안드레아가 교통사고로 제천에서 서울 백병원으로 구급차에 실려 가기 전 신부님께 병자성사를 받았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맬 때 명동성당 매일 미사에 참례하며 남편을 살려주신다면 하느님을 위한 일을 하겠다고 성모님께 약속하였다. 한 달 넘게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명동성당 로사리오의 모후 Pr.에 들어가 성모님의 군사로 열심히 기도에 참여하였다. 쁘레시디움 단원들이 매일 저녁 제 남편의 쾌유를 빌며 함께 고리 기도를 바친 결과 놀랍게도 중환자실에서 회복되어 일반 병실로 옮기게 되었다가 퇴원하였다. 그 후 남편은 주님과 성모님의 사랑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믿고 감사드리며 주일을 거르지 않는 열심한 주님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다. 1998년 남편은 청전동성당 사도 회장으로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께 순명하며 성전 건립을 위해 2년 동안 회사 일도 뒤로 미룬 채 아름다운 성당을 건축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성전 건립을 위해 많은 힘을 쏟으셨다는데
성당에서 맡겨 준 꾸리아 단장, 여성 구역장, 성모 회장을 역임하면서 성당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해 주방도 없는 가건물에서 700여 명의 순례객들과 김산 부대 군인들, 자매결연을 맺은 서초성당 교우들을 위한 식사 준비를 하고, 풍기 인견과 명란젓 등을 판매했다. 힘들었지만 이 모든 일을 신명 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길을 따르셨던 성모님의 모습을 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함께하였던 많은 형제자매의 사랑과 일치와 나눔은 성모님의 은혜였기에 감사드린다.
앞으로 활동하는데 힘을 얻게 청하는 것이 있다면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하시며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고 사셨던 성모님께 저를 봉헌하며 그동안 베풀어주신 사랑의 손길을 기억한다. 성모님의 도움과 주님의 은총에 힘입어 성가정을 이루었고, 지치지 않고 봉사직을 수행할 수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변하지 않고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사랑과 봉사로 주님의 빛을 밝힐 수 있게 인도해 주시길 간절히 청한다.